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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5월 구인배수 0.37로 급락 中에 치여 성장 동력 잃은 韓 기간산업 '제조업계 중추' 핵심 기업들 줄줄이 美로

국내 취업전선에 한파가 몰아치고 있다. 국가 기간 산업의 경쟁력 상실, 제조업계의 '탈한국' 움직임 등 악재가 누적되며 시장 전반이 얼어붙는 양상이다.
고용 시장 '먹구름' 꼈다
9일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2025년 5월 고용행정 통계로 본 노동시장 동향’에 따르면, 지난달 취업 포털 ‘워크넷’에 등록된 신규 구인 인원은 14만1,000명이었다. 이는 지난해 같은 시기 대비 4만6,000명(-24.8%) 줄어든 수치다. 반면 신규 구직 인원은 37만6,000명으로 같은 기간 1만 명(2.6%) 증가했다. 이에 따라 구직자 1인당 일자리 개수를 뜻하는 ‘구인배수’는 0.37로 지난해 같은 달(0.51) 대비 크게 낮아졌다.
5월 고용보험 상시가입자 수는 1,558만 명으로, 지난해 같은 달보다 18만7,000명(1.2%) 늘어나는 데 그쳤다. 코로나19 팬데믹이 한창이던 2020년 5월 이후로 가장 낮은 증가율이다. 업종별로 살펴보면 건설업 가입자 수는 75만4,000명으로 전년 동월 대비 1만9000명(-2.5%) 줄며 22개월 연속 감소세를 유지했다. 제조업 가입자 수(외국인 당연가입 증가분 제외) 역시 같은 기간 1만6,000명 감소하며 20개월 연속 하락했다.
문제는 올해 하반기에 취업 시장 상황이 한층 악화할 가능성이 크다는 점이다. 천경기 고용부 미래고용분석과장은 “제조업은 불확실성이 지속되고 있어 앞으로도 단기 회복이 어렵고, 건설업 역시 지난달까지 발표된 건설수주, 건설기성액이 10% 이하로 하락했다”고 말했다. 이어 “연구 기관에서 대체로 ‘상고하저’로 전망하고 있다”며 “5~6월까지는 그나마 (기업들이) 지탱해도 하반기부터는 더 어려워질 것으로 보인다”고 전망했다.
韓 산업계에 닥친 위기
일각에서는 고용 시장 침체가 올해를 넘어 장기화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최근 들어 국가 기간 산업 전반의 경쟁력이 약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경제인협회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국가 3대 첨단 전략 산업인 반도체·디스플레이·이차전지 부문에서 부진을 면치 못하고 있다. 지난 2013년만 해도 2배 수준이었던 중국과 한국의 글로벌 시장 수출 점유율 격차가 적게는 3배에서 많게는 8배 수준까지 벌어진 것이다. 중국의 수출 점유율이 빠르게 성장하는 가운데, 한국은 오히려 뒷걸음질친 결과다.
조선·철강·자동차·석유화학 등 한국 경제를 지탱해 온 주력 산업군 역시 성장 동력을 잃어가고 있다. 한국이 우위였던 선박과 자동차 수출은 10년 새 중국에 추월당했고, 중국의 저가(低價) 공세에 시달리고 있는 철강은 중국과 점유율 격차가 10%p 이상 벌어지며 생존을 위협받고 있다. 한국의 주력 산업이 중국 앞에 줄줄이 무릎을 꿇은 셈이다.
시장은 정부 지원의 차이가 이 같은 결과를 낳았다고 평가한다. 중국 정부는 과감한 투자를 이어가며 첨단 산업 육성에 공을 들이고 있다. 지난 2023년 중국이 반도체와 디스플레이 등 자국 대표 기업에 쏟아부은 보조금은 각각 2억7,000만 달러(약 3,770억원), 4억2,000만달러(약 5,860억원)에 달한다. 이차전지 대표 기업인 CATL도 우리 돈으로 1조원이 넘는 보조금을 받았다. 반면 같은 기간 국내 대표 기업들이 수령한 정부 보조금은 0원이었다.

자동차·철강 투자 美로 쏠려
제조업계를 중심으로 나타난 '탈한국' 흐름 역시 고용 시장에 있어 악재다. 대표적으로 현대자동차의 경우, 수년 전부터 미국 내 투자를 빠르게 확대하며 현지 생산 기지 구축에 힘을 쏟고 있다. 지난 3월에는 오는 2028년까지 미국 내 자동차, 부품 및 물류, 철강, 미래 산업 등 주요 분야에 210억 달러(약 31조원)를 투자하겠다고 밝히기도 했다.
자동차 부문에는 미국 현지 생산 120만 대 체제 구축을 위해 86억 달러(약 12조6,400억원)가 투입된다. 이를 통해 현대차그룹 메타플랜트아메리카(HMGMA)의 생산 능력을 기존 30만 대에서 50만 대까지 강화하고, 앨라배마 공장·조지아 공장 등 기존 현지 공장들의 설비를 보완하겠다는 구상이다. 부품·물류·철강 부문에서는 현대차·기아와 미국 시장에 동반 진출한 관련 그룹사들이 61억 달러(약 8조9,600억원)를 집행할 예정이며, 미래 산업·에너지 부문에도 63억 달러(약 9조2,600억원)가 투입된다.
국내 철강기업들도 미국 진출에 속도를 내고 있다. 같은 달 현대제철은 2029년 상업 생산을 목표로 미국 루이지애나주에 전기로 제철소를 설립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투자 규모는 58억 달러(약 8조5,000억원)다. 루이지애나 제철소는 자동차 강판 특화 제철소로, 직접환원철을 생산하는 원료 생산 설비와 열연 및 냉연강판 생산 설비 등으로 구성된다. 생산 능력은 연 270만 톤(t) 수준으로 예상된다. 현대제철은 향후 루이지애나 제철소와 인접한 △현대차 앨라배마 공장 △기아 조지아 공장 △현대자동차그룹 HMGMA 등과 협력해 물류비를 절감하고, 안정적인 공급망을 구축하겠다는 계획이다.
국내 1위 철강업체 포스코 역시 현대제철의 루이지애나 제철소에 대한 지분 투자 방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전해진다. 포스코의 투자가 현실화하면 국내 1·2위 철강 업체가 나란히 미국 현지에서 손을 맞잡는 구도가 연출되는 셈이다. 다만 포스코그룹은 현대제철과 함께 미국 시장에 진출하는 방안에 대해 "미국 투자와 관련해 다양한 전략적 방안을 검토 중이지만, 현시점에서 확정된 바는 없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