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딥폴리시] 국경 분열의 비용, 통합이 여는 성장의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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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경 분열은 교역 축소와 투자 위축으로 경제 손실 초래 지역 통합은 교역 확대와 신뢰 구축으로 성장 기반 강화 미·중 디커플링은 인재·기술 교류 위축으로 성장 잠재력 제한
본 기사는 스위스 인공지능연구소(SIAI)의 SIAI Business Review 시리즈 기고문을 한국 시장 상황에 맞춰 재구성한 글입니다. 본 시리즈는 최신 기술·경제·정책 이슈에 대해 연구자의 시각을 담아, 일반 독자들에게도 이해하기 쉽게 전달하는 것을 목표로 합니다. 기사에 담긴 견해는 집필자의 개인적 의견이며, SIAI 또는 그 소속 기관의 공식 입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국경 갈등, 민족주의, 전쟁의 후유증으로 국가가 세계와 거리를 두면 경제는 즉각 위축된다. 교역은 줄고 투자는 이탈하며 성장 동력은 약화된다. 국제통화기금(IMF)은 극심한 분열이 세계 국내총생산(GDP)을 최대 7% 감소시킬 수 있다고 경고한다. 이는 단기 충격이 아니라 수조 달러 규모의 장기 손실로, 각국의 성장 잠재력을 근본적으로 제약한다. 부채 부담까지 겹치면서 인프라와 공공서비스에 필요한 투자 여력도 줄어들고 있다. 결국 국경이 장벽으로 굳어질 때 시장의 기회와 자원은 함께 사라진다.

통합이 가져오는 효과
지역 통합은 교역과 소득 증가로 이어진다. 아프리카 대륙자유무역지대(AfCFTA)가 완전히 실현될 경우 2035년까지 3,000만~5,000만 명이 극빈에서 벗어나고, 실질소득은 7~9% 증가하며 전체 수출은 약 29% 확대될 것으로 전망된다. 조건에 따라 수치는 달라질 수 있지만, 장벽을 낮추고 제도를 정비하면 통합 효과가 뚜렷하게 나타난다.

주: 연도(X축), 무역 규모(Y축)/대세계 무역(진한 빨간색), 역내 무역(연한 빨간색)
반대로 통합이 약화될 경우 경제 손실은 곧바로 나타난다. 브렉시트 이후 영국이 그 사례다. 영국 예산책임청(OBR)은 무역 규모가 브렉시트 이전 예상치보다 장기적으로 약 15% 낮게 유지될 것으로 전망했으며, GDP는 4~5% 줄어들 것으로 분석했다. 현재까지 이미 2~3%의 손실이 발생했으며, 2030년대 중반에는 더 커질 가능성이 있다. 새로운 세관 절차, 규제 차이, 공급망 단절이 교역과 투자를 위축시킨 결과다.
그리스와 튀르키예의 사례는 또 다른 방향을 보여준다. 두 나라는 오랜 갈등을 완화하며 교역 확대에 나섰다. 양국은 교역 규모를 100억 달러(약 13조5,000억원)까지 늘리겠다는 목표를 세웠고, 2023년 교역액은 약 58억 달러(약 7조8,000억원), 2024년 튀르키예의 대그리스 수출은 약 48억 달러(약 6조5,000억원)에 달했다. 비록 양국 GDP 대비 규모는 크지 않지만, 에너지·운송·대학 협력으로 이어지며 갈등 재점화를 막는 역할을 하고 있다.
국경 분쟁의 역사적 뿌리
인접국 간 협력이 경제적으로 유리하더라도 실제로는 자주 무산된다. 가장 큰 원인은 역사적 배경이다. 아프리카의 갈등 다수는 오래된 것이 아니라 근현대에 형성된 문제다. 식민지 시기 강제로 그어진 국경선은 공동체를 분단시켰고, 그 결과 국경으로 갈라진 집단은 차별을 더 자주 경험하고 갈등 위험도 높았다. 이러한 구조는 지역 성장과 인적자원 축적을 제약하는 요인으로 작용해 왔다.
이 문제는 현재도 진행 중이다. 2023년은 2017년 이후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은 전쟁이 발생한 해였으며, 상당수가 아프리카에서 집중됐다. 수단 내전은 대표적 사례다. 국제평화연구소(PRIO)는 2021년 이후 군사 사상자가 증가했다고 보고했고, 아워 월드 인 데이터(Our World in Data, WOID)에 따르면 1989년 이후 분쟁 관련 사망자의 절반 이상이 아프리카에서 발생했다. 지역별 차이는 있지만, 폭력이 국경 인근에서 반복되고 있다는 점은 분명하다.
협력으로의 전환
이 같은 현실은 범 지역 차원의 협력이 필요하다는 점을 보여준다. 아프리카 지도자들은 오래전부터 국경이 증오의 원인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강조해 왔다. 인적 교류 확대, 공동 현안에 대한 협력, 자격 기준 표준화는 실질적 효과를 낼 수 있다. 예컨대 한 나라에서 훈련받은 전문가가 불필요한 절차 없이 인접국에서 일할 수 있다면 곧바로 신뢰 강화와 협력 확대로 이어진다.
심리학 연구도 이를 뒷받침한다. 집단 간 직접적 접촉은 적대감을 줄이고 협력을 촉진한다는 결과가 반복적으로 확인됐다. 따라서 정치적 긴장이 높을 때에도 인적 교류 채널을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 반대로 온라인에서의 부정적 상호작용은 편견을 강화하므로, 대면 협력의 필요성은 여전히 크다.

주: 아프리카 시장(인구 12억 6천만 명, GDP 2.1조 달러), GDP 1~3% 증가, 후생 161억 달러 증가, 역내 수출 33% 증가, 무역적자 50% 감소, 고용 1.2% 증가
강대국 갈등의 파급효과
국경 갈등이 지역 경제를 약화시키듯, 강대국 간 갈등도 비슷한 위험을 낳는다. 최근 미·중 관계에서 자주 언급되는 것이 ‘전략적 디커플링(Decoupling)’이다. 이는 안보와 정치적 이유로 무역·투자·기술 협력을 줄이고 경제 관계를 의도적으로 끊어내려는 전략을 의미한다. 국제통화기금(IMF)은 이런 무역 분절이 세계 GDP를 0.2%에서 최대 7%까지 줄일 수 있다고 추정한다. 이는 다수 국가에서 연간 인프라 투자와 고용 창출 여력이 사라지는 수준이다. 극단적 상황이 아니더라도 공급망을 ‘우방 중심’으로 재편하는 과정에서 공동 연구, 기술 협력, 인재 교류가 위축돼 성장 잠재력이 약화될 수 있다.
통합을 위한 과제
분열의 파급효과를 줄이려면 이동성과 교류를 안정적으로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 유럽의 경험은 규칙에 기반한 교류가 장기간에 걸쳐 긍정적 효과를 누적시킨다는 점을 보여준다. 인력 교류는 업무 품질을 높이고 기관 간 협력을 촉진하며 기술 확산을 가속한다.
또한 분열이 초래하는 비용을 수치로 제시해 대중에게 알릴 필요가 있다. 영국의 소비자 조사에서도 민족주의적 정책이 물가와 임금에 실제로 타격을 준다는 사실이 확인되자 공적 논의가 달라졌다. 이는 오늘의 선택이 내일의 생활 수준과 직결된다는 점을 명확히 보여준다.
지역 차원의 협력 사업도 중요하다. 공동 프로젝트, 장기 교류 프로그램, 인력 부족 분야의 공동 자격제도는 주민이 직접 체감할 수 있는 성과를 낸다. 핵심은 현장 관리자가 협력할 권한과 예산을 갖는 것이다. 작은 협력이 반복되면서 신뢰와 회복력이 쌓인다.
마지막으로 통합은 이상적으로만 볼 수 없다. 권력자가 이를 정치적으로 이용하거나 이익이 불균등하게 분배되면 반발을 불러올 수 있다. 유엔무역개발회의(UNCTAD)는 무역장벽 완화와 함께 연결성 투자, 사회안전망 확충, 불평등 관리가 병행돼야 지속 가능한 통합이 가능하다고 지적한다. 이런 제도가 마련돼야 협력이 분열을 자극하는 정치적 요인을 견딜 수 있다.
협력의 방향
세계가 극단적 분열로 치닫는다면 경제적 손실은 막대하다. 반대로 이웃 국가들이 규칙을 마련해 상품과 인재, 아이디어가 자유롭게 이동한다면 갈등 위험은 줄고 투자 여력은 확대된다. 아프리카 대륙 시장은 그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으며, 그리스와 튀르키예의 점진적 화해는 어려운 역사적 배경 속에서도 실질적 진전을 이룰 수 있음을 입증한다. 유럽의 이동성 프로그램은 수십 년간의 교류가 경력과 신뢰를 함께 키울 수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
목표는 국경을 없애는 데 있지 않다. 국경이 분열의 요인이 되지 않도록 관리하는 것이 핵심이다. 협력을 위한 제도적 장치 마련, 정치 주기에 흔들리지 않는 교류 채널 보호, 분열의 비용을 시민에게 투명하게 알리는 노력이 필요하다. 이런 노력이 뿌리내릴 때 다음 세대는 갈등을 줄이고 삶의 기회를 넓히는 국경을 물려받게 될 것이다.
본 연구 기사의 원문은 The High Price of Distance: How Borders Become a Tax on Learning를 참고해 주시기 바랍니다. 본 기사의 저작권은 스위스 인공지능연구소(SIAI)에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