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정부, 공공 주도로 주택공급 새판짜기, 향후 5년간 135만 호 공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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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H 직접 시행, 개발 이익 환수·공급 안정화 추진 연 27만 가구 신규 착공, 순증량 56만 가구 추정 지방 악성 미분양과 건설사 수익성 악화는 과제

정부가 향후 5년 동안 수도권에 135만 가구 규모의 신규 주택을 공급하기로 했다. 공급량을 기존 계획보다 연 11만 호씩 늘려 총 56만 호를 순증한다는 계획이다. 또 부동산 경기 변동의 영향 없이 안정적으로 주택을 공급할 수 있도록 한국토지주택공사(LH)가 공공택지 사업을 직접 시행해 개발이익을 공공에 환수하기로 했다. 다만, 이번 계획이 수도권 공급 확대에 방점을 찍으면서 일각에서는 지방에 누적된 악성 미분양 물량과 건설사 수익성 악화, 분양가 상승 등의 문제를 완전히 해소하기에는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재명 정부의 첫 주택공급 대책 발표
7일 정부는 공공부문의 주택 공급 역할 확대 등을 골자로 하는 ‘주택 공급 확대 방안’을 발표했다. 김윤덕 국토교통부 장관은 “주택시장의 근본적인 안정을 위해서는 충분하고 신속한 주택 공급이 필요하다"며 "수도권에 5년간 총 135만 가구, 연간 27만 가구 규모의 신규 착공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지난 6월 27일 발표한 고강도 대출 규제에도 불구하고 2022년부터 이어진 착공 부진의 영향으로 수도권 집값 상승세가 꺾이지 않자, 특단의 공급 활성화 조치를 내놓은 것이다.
주택수요 등을 감안한 수도권의 적정 주택 공급량은 연 25만 가구로 추산된다. 최근 3년 간의 부진한 추세(연 15만8,000가구)를 가정하면 매년 9만2,000가구가 부족한 상황이다. 이번 대책에서 정부가 예상한 수도권 주택 공급 순증량은 56만 가구다. 구체적으로는 △공공택지 공급 확대·조기화 5만4,000가구 △노후시설·유휴부지 재정비 7,000가구 △도심지 주택 공급 3만8,000가구 △민간 공급 여건 개선 1만3,000가구 등 연평균 11만2,000가구를 추가 공급할 계획이다.
이번 대책의 핵심은 LH의 공공택지 매각 중단과 직접 시행이다. 그간 토지 수용 등을 통해 조성한 공공택지를 민간에 매각해 왔던 LH가 설계와 시공만 민간 건설사에 맡기고 직접 주택을 공급하는 방식이다. 정부는 LH 소유의 비주택용지도 정례적으로 용도를 재조정해 공공택지로 전환하기로 했다. 이렇게 수도권 공공택지를 활용해 5년간 확보한 주택 물량은 7만5,000호 이상으로 예상된다. 정부는 LH개혁위원회 논의를 거쳐 연내 구체적인 공급 계획과 유형을 발표할 예정이다.

지방 분양시장 침체, 수도권 확산 조짐
이처럼 정부가 수도권 주택시장 안정에 초점을 두고 공공 주도의 대규모 주택 공급 확대 방안을 내놨지만, 일각에서는 지방 미분양 주택 해소 방안은 마련하지 못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실제 전국의 미분양 주택 가운데 79%가 지방에 몰려 있다. ‘악성 미분양’으로 분류되는 준공 후 미분양은 지방의 비중이 84%를 차지할 정도로 부동산 경기가 침체됐다. 악성 미분양의 증가세도 가파르다. 준공 후 미분양은 2023년 8월부터 올해 5월까지 22개월 연속 증가하다 6월 처음으로 감소했으나, 한 달 만에 다시 증가세로 돌아섰다.
일각에서는 정부가 이미 지방 부동산 부양책을 마련한 만큼 정책 효과를 지켜봐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지난달 28일 행정안전부가 ‘2025년 지방세제 개편안’에 따르면 지방의 준공 후 미분양 아파트를 매수할 경우, 취득세의 50%를 감면해 준다. 기존에 보유 주택 수에서 제외해 준 것에 더해 중과세 대상에서도 제외하기로 했다. 또 2024년 1월 10일부터 2026년 12월 31일까지 준공된 지방 아파트 중 전용 85㎡ 이하, 취득가액 3억원 미만인 아파트를 2년 이상 임대할 경우, 신축 취득세 50%를 감면하는 조치도 1년 더 연장했다.
문제는 지방 부동산 시장의 침체가 수도권으로 확산되는 조짐을 보인다는 점이다. 국토교통부와 서울시 자료에 따르면 7월 말 기준 서울시의 미분양 주택은 4개월 연속 증가한 1,033가구를 기록했다. 올해 1월 1,352가구에서 3월 942가구까지 줄었다가 이후 꾸준히 증가하고 있는 것이다. 저점을 찍은 3월과 비교하면 4개월 새 91가구가 증가했다. 자치구별로는 강동구가 99가구 늘면서 미분양 확대를 주도했고, 은평구도 20가구의 미분양이 발생했다.
이들 지역의 미분양 원인으로는 높은 분양가가 꼽힌다. 강동구 길동 디아테온은 전용 59㎡로만 구성됐는데 분양가는 10억9,050만원으로 책정됐다. 인근 아파트와 비슷하거나 약간 저렴한 수준이지만, 총 64가구인 단지 규모 등을 고려하면 비싸다는 평가다. 은평구 힐스테이트 메디알레는 전용 59㎡ 분양가가 11억1,000만~11억5,000만원으로 책정됐다. 인근 북한산힐스테이트 7차의 경우, 같은 면적이 9억5,000만 원 안팎에서 실거래가 이뤄지고 있다.
분양 한파에 건설사 자진폐업도 늘어
역대급 분양 한파로 건설사의 경영 상황도 악화되고 있다. 현대건설은 지난해 1조2,209억원의 영업손실을 내며 적자 전환했다. 전년도 영업이익이 7,854억원이었던 점을 감안하면 2조원 이상 줄어든 대규모 어닝 쇼크였다. 삼성물산 건설부문 역시 매출과 영업이익이 전년 대비 각각 3.4%, 3.2% 감소했다. 한 건설업계 관계자는 "수년 전 수주한 공사를 현재의 높은 공사비에 맞추다 보니 손실이 발생한다"며 "조합과 공사비를 협상하더라도 상승분을 모두 반영할 수 없어 손실이 더 커지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건설경기 침체가 장기화하면서 올해는 상반기에만 건설사 10곳 중 7곳이 스스로 문을 닫았다. 건설산업정보원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종합건설사와 전문건설사를 모두 포함한 말소·폐업신고는 총 1,531건으로 파악됐다. 이 중 자진폐업은 1,032건으로 67.4%를 차지했다. 업종별로 보면 종합건설업체의 말소·폐업은 465건으로 이 중 자진 페업은 58건(55.4%)으로 집계됐다. 같은 기간 전문건설업체는 1,066곳이 문을 닫았고, 이 중 자진폐업은 774건으로 그 비율이 무려 72.6%에 달했다.
건설업계 위축으로 가뜩이나 부족한 주택 공급 물량이 더욱 줄어들었다. 올해 1월부터 5월까지 서울에서 착공된 주택은 1만787가구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1.1% 감소했다. 같은 기간 분양 승인 물량도 8.37% 줄었다. 주택 공급의 초기 단계인 착공과 분양 모두 감소세를 보이면서 2~3년 뒤 입주 물량에도 공급 부족 현상이 나타날 것으로 예상된다. 당장 내년 입주 예정 물량도 크게 줄어든다. 부동산R114에 따르면 내년 서울 아파트 입주 예정 물량은 1만7,757가구로, 올해(3만5,808가구)의 절반 수준에 불과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