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내 연이은 ‘Woke’ 반대 물결, 브랜드도 제품 가치로 회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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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양성 가치에 대한 피로감 확산
‘깨어 있는 자본주의’가 드러낸 한계
콘텐츠 분야 다양성 실험 연이은 실패

미국 테네시주에 본사를 둔 외식업체 크래커배럴이 창립 50주년을 맞아 그간 지나치게 전통적이라는 평가를 받아 온 브랜드 로고를 수정하고 나섰다. 그러나 브랜드의 상징과도 같았던 이미지가 크게 훼손됐다는 비판에 직면하자, 계획을 전면 백지화했다. 이는 인종·성·성정체성 이슈에 대한 ‘Woke’ 반대 정서와 맞물린 것으로, 기업이 다양성에 대한 상징적 메시지보다는 핵심 소비자 반응 및 평판 리스크를 우선하는 식으로 의사결정을 재정렬한 사례로 평가된다.
공격적 프레임에 거부 반응 잇따라
크래커배럴은 지난 26일(이하 현지시각) 성명을 내고 “새로운 로고가 가고 ‘올드타이머’가 돌아왔다”며 50주년 기념 로고 변경 계획을 철회했다. 브랜드 로고 개편 소식을 알린 지 불과 일주일 만에 나온 소식이다. 올드타이머는 기존 크래커배럴 로고에 그려진 남성으로, 해당 남성은 의자에 앉아 나무통(배럴)에 비스듬히 기댄 모습으로 표현돼 있다. 크래커배럴은 작업복 차림의 남성이 “지나치게 전통적”이라는 일각의 비판에 이를 삭제하려 했지만, 더 큰 반대에 직면하며 애초 계획을 모두 취소했다.
이 같은 사례는 지난 2~3년간 미국 사회에서 뚜렷하게 감지된 반(反) Woke 흐름과 맞물린다. 과거 민주당은 2016년과 2020년 대선에서 Woke 담론을 적극 활용했으나, 지난해 대선 캠페인에서는 카멀라 해리스 후보조차 해당 용어를 거의 언급하지 않았다. Woke라는 단어가 세상을 희생자와 억압자로 단순 구분하는 공격적 프레임과 연결되며 정치적 부담으로 변했다는 판단에서다.
이와 함께 최근에는 기업과 대학, 지방정부 등에서도 다양성 관련 프로그램을 축소하거나 폐지하는 조치가 잇따르는 추세다. 대형 유통업체 타깃은 성소수자를 겨냥한 제품군인 ‘프라이드 컬렉션’을 대폭 축소했고, 맥주 브랜드 버드라이트는 트랜스젠더 협업 이후 불매운동으로 시장 점유율을 잃자 이미지 회복을 위해 새로운 모델을 기용했다. 텍사스대와 MIT 등 주요 대학들도 다양성 전담 조직이나 제도를 줄이며 ‘포용 과잉’에 따른 역풍을 수습하는 데 한창이다. 이러한 변화는 사회적 가치 확산에 기여했던 Woke 문화가 이제는 기업과 정치, 학계 전반에서 피로 요인으로 전환했음을 보여준다.
그 배경에는 Woke라는 표현 자체가 사회·정치적 블랙홀로 변질된 과정이 자리한다. 흑인 사회에서 인권운동의 상징으로 출발한 이 표현은 2020년 BLM(Black Lives Matter, ‘흑인 목숨도 소중하다’는 의미) 시위를 계기로 본격 대중에 확산했다. 하지만 이를 반어적으로 차용해 진보적 의제를 모두 부정적 프레임에 가두려는 시도가 이어졌다. 대표적 보수 언론으로 꼽히는 폭스뉴스가 대표적 예다. 폭스뉴스는 Woke가 지향하는 ‘비판적 인종이론’을 침투적 위협으로 묘사하며 공교육과 직장을 장악했다는 서사를 확산시켰고, “백인이 역차별당한다”는 여론을 형성했다.
이는 다시 보수 지지층을 결집시키는 정치적 무기로 활용됐다. 월스트리트저널이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공화당 지지자의 59%가 ‘백인이 차별받는다’고 답한 반면, 민주당 지지자 중에서는 21%만이 같은 대답을 내놨다는 사실이 이 같은 정서를 뒷받침한다. 많은 미국인이 “모든 문제는 Woke 때문”이라는 단순 구도를 내세워 복잡한 불만을 흡수했고, 그 결과 Woke는 본래의 의미를 벗어나 광범위한 사회적 맥락에서 활용되는 상징적 코드로 자리 잡았다.

지나친 “다양성” 구호에 평판 훼손
이와 같은 흐름 속에서 기업들도 한때 “깨어 있는 자본주의”를 주창했다. 일례로 2022년 미국 연방대법원이 연방 차원의 임신 중단권 보장을 폐기하자, 애플과 아마존 등 다수의 기업은 직원들의 낙태 원정 시술 비용을 지원하겠다고 나섰다. 또 나이키는 BLM 이슈에 대해 대대적인 광고 및 캠페인을 진행하며 인종차별 반대를 외쳤고, 청바지 브랜드 리바이스는 퇴직한 전 임원으로부터 “사회 정의에 깨어 있는 척하며 다른 시각을 용납하지 않는 좌파의 눈치를 살피는 경영진”이란 비난에 직면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는 숱한 이중성 논란을 낳았다. 특히 나이키는 미국의 100대 기업(S&P100) 중 71%가 자국 평등고용기회위원회(EEOC)에 임직원 인종 다양성 자료를 (EEO-1 form) 제출하는 가운데서도 이를 이행하지 않아 빈축을 샀다. 심지어 이후 주주총회에서 해당 자료 제출을 결의했다는 소식이 알려지자, 증권거래위원회(SEC)에 결의안 무효 요청을 신청하기도 했다. 소비자들은 신뢰 공백을 지적하고 나섰고, 이후 산업계에선 광고와 후원, 채용, 공급망 전반에서 Woke 자본주의의 비용 대비 효과와 리스크가 촘촘히 재측정되는 국면이 형성됐다.
검증이 강화된 이후 기업의 대응은 보다 실무적 방향으로 정렬됐다. 다양성·형평·포용 관련 데이터를 정기 공개하고 외부 평가를 수용해 진정성을 수치로 입증하려는 시도가 늘고, 캠페인 메시지를 제품 가치나 가격, 편익 같은 핵심 효용으로 환원해 논쟁적 해석의 여지를 줄이는 식이다. 또 주주제안·규제·소송 리스크를 감안해 사전 법률 검토와 공보·마케팅의 동시 진행 체계를 만들고, 광고 집행 시점과 노출 강도를 조정해 불매와 역불매의 연쇄를 차단하려는 노력도 이어졌다.
이 과정에서 한때 ‘깨어 있음’의 볼륨을 키운 기업일수록 검증과 반발의 교차 압박이 커졌음은 물론이다. 데이터 공개 요구와 주주제안 대응, 법률·브랜드 안전 점검이 상시화되며 예산과 의사결정 시간이 늘어난 것이다. 이처럼 필요 이상의 다양성 구호는 제품 가치와 무관한 논쟁을 키워 기업의 비용과 경영 피로를 확대했고, 결국 기업들은 선언보다 지표와 실행으로 무게중심을 옮길 수밖에 없었다.

극장가도 Woke 자본주의 역풍
영화나 드라마 등 콘텐츠 산업은 Woke 자본주의의 역풍을 가장 선명히 확인할 수 있는 분야다. 일례로 지난 3월 개봉한 디즈니의 실사 영화 ‘백설공주’는 제작비만 3억1,000만 달러(약 4,300억원)이 투입된 대작이지만, 라틴계 배우 레이첼 지글러를 주연으로 세운 캐스팅을 두고 “원작의 정체성과 어긋난다”는 반발이 확산했다. 홍보 기간 내내 논란은 가라앉지 않았고, 결국 배급사는 일부 프리미어 시사회와 레드카펫 일정을 전격 취소하기에 이르렀다. 이는 대형 스튜디오가 정체성 이슈를 둘러싼 해석 충돌 앞에서 주연 배우 캐스팅과 프로모션 전략을 기민하게 다시 짜는 결정적 계기가 됐다.
디즈니는 이에 앞선 2023년에도 뮤지컬 영화 ‘인어공주’로 한차례 홍역을 치른 바 있다. 당시 아프리카계 미국인 배우 할리 베일리의 캐스팅을 두고 일부 관객은 해시태그 “NotMyAriel(내 에리얼이 아니야)”을 적극 공유하는 등 강하게 반발했고, 원작과 다른 헤어스타일 등 다양한 요소가 논쟁의 불씨가 됐다. 할리 베일리는 머리카락이 캐릭터의 정체성을 보여주는 중요한 특징이라면서 당위성을 강조했지만, 원작 이미지와의 거리감을 좁히지 못한 해당 작품은 손익 분기점(7억 달러) 근처에도 가지 못한 채 흥행의 꿈을 접었다.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플랫폼에서도 유사한 역풍이 포착됐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다큐멘터리 ‘퀸 클레오파트라’는 예고편을 선보인 직후 역사 왜곡 논란에 휘말렸다. 클레오파트라 7세 역에 흑인 배우 아델 제임스가 등장한 데다, 책임 프로듀서를 맡은 제이다 핀켓 스미스가 해당 작품이 ‘흑인 여왕’에 대한 다큐멘터리임을 강조한 탓이다. 이후 학계를 중심으로 “흑인 문명은 이집트 문명과 아무런 연관이 없다”는 지적이 쏟아졌고, 국제 청원사이트 ‘체인지’에는 이집트의 소중한 역사를 왜곡하는 플랫폼에 적절한 제재를 가해 달라는 청원이 게시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