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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 비자 취소 4만 건, 바이든 때의 2.5배 트럼프 反이민정책 대학가까지 확산 “美 인재 파이프라인 끊는 것” 우려

미국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가 올해 6,000건이 넘는 유학생 비자를 취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트럼프 대통령의 반(反)이민정책과 맞물린 행보로, 최근 미국 정부는 학생 비자에 대해 강경한 접근 방식을 채택하고, 소셜미디어(SNS) 심사를 강화하는 등 사실상 미국 고등교육에 대한 빗장을 걸어 잠그는 분위기다. 다만 해외 유학생이 미국 대학의 주요 재원이라는 점에서 유학생 검열 강화는 결국 대학의 교육 경쟁력을 약화시킬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외국인에 대한 트럼프 행정부의 미국 교육 기회 축소가 그간 혁신의 바탕이 됐던 인재 파이프라인을 무너뜨리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는 분석이다.
국무부 “美 체류 중 위법·테러 지지 이유”
19일(이하 현지시간) 미 폭스뉴스, 영국 BBC 방송 등에 따르면 미 국무부는 올해 미 법률 위반과 체류 기간 초과로 인해 총 6,000여 건의 유학생 비자를 취소했다고 밝혔다. 국무부는 위반 사항 대부분이 폭행, 음주운전, 강도, 테러 지원이라고 설명했다. 국무부 고위 당국자는 폭스뉴스에 "방문객들이 미국을 방문하는 동안 폭행, 음주운전 기록 등 법률 위반 이유만으로 약 4,000건의 비자가 취소됐다"고 말했다. 그는 폭행으로 비자가 취소된 학생은 약 800명으로, 이들은 미 당국에 체포되거나 폭행과 관련한 혐의로 기소될 상황에 처했다고 전했다.
시위와 테러 지원을 이유로 비자가 취소된 경우는 200∼300명으로, 미 국무부가 테러 조직으로 지정한 팔레스타인 무장단체 하마스를 위한 자금 모집과 같은 행위에 가담한 이들로 알려졌다. 미국이민및국적법(INA 212조) 3B 조항은 ‘테러 활동’의 범위를 미국법상 불법 행위이면서 생명·재산을 위협하는 다양한 행위로까지 광범위하게 해석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다만 이 과정에서 이민세관단속국(ICE) 연방 요원들의 무리한 체포가 논란을 빚기도 했다. 보스턴 명문 대학인 터프츠대학교 박사 과정을 밟고 있는 뤼메이사 외즈투르크(Rümeysa Öztürk)의 사례가 대표적이다. BBC는 "지난 3월 25일 자택 인근에서 수많은 요원들이 외즈투르크를 포위하자 그녀는 공포에 질려 비명을 질렀고 이 모습이 체포 영상에 담겼다"며 "이 사건은 전국적인 공분을 일으켰다"고 짚었다.
비자 인터뷰 중단 및 SNS 심사 강화
이번 비자 취소는 트럼프 행정부가 외국인 입국 경로를 좁히는 조치 중 하나로, 유학생 비자 신청에 대한 심사를 대폭 강화하는 가운데 나왔다. 앞서 지난 4월 미 이민귀화국(USCIS)은 유학생을 포함한 비자 신청자들의 SNS에서 반유대주의 게시물을 심사하겠다고 발표했다. 지원자에게는 SNS 계정을 공개할 것을 요구했고, 미국 정부나 제도, 문화 등을 적대해 왔는지 확인하겠다고도 했다. 트럼프 행정부의 기조와 다른 정치적 발언을 빌미로 비자 발급을 거부하겠다는 것이다.
USCIS는 이에 대한 후속 조치로 19일 심사관들이 영주권, 취업 허가 및 각종 비자 신청 등을 심사할 때 신청자가 ‘반미 또는 테러 조직과 어떤 형태로든 연관돼 있다는 증거’에 상당한 비중을 둬야 한다는 내용의 지침도 마련한 상태다. 이번 지침은 1952년 제정된 이민·국적법을 근거로 한다. 해당 법은 공산주의자나 아나키스트 단체 가입자가 미국 시민권을 취득하지 못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를 두고 일각에서는 트럼프 행정부가 단순히 이민 규모를 축소하는 데 그치지 않고, 미국에 입국할 수 있는 이민자의 성향까지 걸러내려 한다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 트럼프 행정부는 최근 팔레스타인 지지 시위에 참여한 유학생들을 겨냥해 강경 조치를 취하고 있다. 국무부에 따르면 전체적으로 올해 취소된 비자는 4만 건에 달해, 조 바이든 행정부 시절 같은 기간(1만6,000건)보다 두 배 이상 많다. 비자 취소는 유학생에만 국한된 일이 아니다. 한 한국인 교수 역시 비자가 갑작스럽게 취소돼 강의를 중단하고 한국으로 귀국하는 일이 벌어지기도 했다.
뿐만 아니라 트럼프 행정부는 지난 6월 F(유학·어학연수), M(직업훈련), J(교육·예술·과학 분야의 교환 연구자·학생) 비자 등 비(非)이민 비자를 통해 하버드대학교 학업 과정을 이수하려는 모든 외국인의 비자 발급을 6개월간 중단했다. 이에 따라 하버드대의 학생 및 교환 방문자 프로그램(Student and Exchange Visitor Program·SEVP)을 통한 유학이 전면 중단됐다. 트럼프 대통령은 아울러 F, M, J 비자를 통해 체류 중인 하버드대 유학생의 경우에도 국무장관이 재량에 따라 기존에 발급된 비자 취소 여부를 검토할 수 있도록 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취임 직후부터 하버드와 컬럼비아 대학교 등 여러 명문 대학들과 연방정부 지원금 박탈을 무기로 반복적인 갈등을 빚어오고 있다. 대학 당국이 학생들의 반이스라엘 시위에 제대로 대응하지 않았다는 게 표면적인 이유지만 자신이 내세우는 미국 우선주의 이념에 반하는 진보적 색채를 최고 교육기관에서 지우려는 큰 그림이 자리하고 있다는 평가가 우세하다.

영국 유학 관심 급증, 美 인재 경쟁력 우려 확대
유학생들에 대한 미국 정부의 압박이 지속되자, 미국 유학생들 사이에서는 영국 유학에 대한 관심이 급증하고 있다. 글로벌 유학 검색 플랫폼 스터디포털스에 따르면 지난 3월 미국 학생들의 영국 학위 프로그램 검색량은 전년 동월 대비 25% 증가했다. 같은 기간 미국 내 대학 과정에 대한 해외 수요는 15% 감소한 데 반해, 영국 대학은 13% 증가했다.
미국의 유학 수요 이탈은 상대적으로 안정적인 정책을 유지하고 있는 영국에 수혜로 작용하고 있다. 유학업체인 키스톤에듀케이션그룹의 마크 베넷 디렉터는 “캐나다, 호주 등 경쟁 국가들이 비자 발급을 제한하면서 영국이 더 강력한 대체지로 부상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영국 정부가 유학생을 환영하는 메시지를 분명히 보내고 있는 점이 트럼프 미국과 가장 큰 차이”라고 덧붙였다.
실제 키스톤 석사과정 검색 플랫폼에서도 올해 1~3월 미국 유학 관심은 전년 동기 대비 27% 줄어든 반면, 영국 유학 관심은 23%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영국 고등교육기관이 해외 유학생 등록금 수익에 상당 부분 의존하고 있는 상황에서 긍정적인 신호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영국 고등교육통계청(HESA) 자료를 보면 2023~2024년 영국 내 미국 유학생 수는 2만3,250명으로, 전체 유학생 중 다섯 번째로 큰 규모를 차지하고 있다.
이에 미국 경제계와 학계에서는 트럼프 행정부의 유학생 배척이 미국 대학의 경쟁력을 저하할 것이라는 비판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실제로 유학생 입국에 대한 제한을 강화할수록 각 대학의 재정은 타격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하버드대 국제 오피스 통계(2024∼2025학년도 기준)에 따르면 하버드대에 재학 중인 외국인 유학생은 약 6,800명으로 전체 학생의 27% 규모다. 미 국가교육통계센터(NCES)의 통계를 보면 하버드대보다 유학생의 비중이 더 높은 대학은 43개교에 달한다. 비영리국제교육자협회(NAFSA)에 의하면 2023∼2024학년도에 110만여 명의 유학생이 미 경제에 기여한 경제적 규모는 430억 달러(약 59조원)에 이르는 것으로 분석된다. 대부분 수업료와 주택 자금이었다.
장기적으로 미국의 인재 확보 경쟁력을 떨어뜨릴 수 있다는 우려도 크다. 사이먼 마진슨(Simon Marginson) 옥스퍼드대 교수는 “트럼프 대통령의 하버드대에 대한 공격은 끔찍한 정책적 실수”라며 “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이 연구개발(R&D) 분야에서 차지해 온 선도적 역할을 훼손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미국 대학의 인재 파이프라인에 영향을 미치는 반면 중국이나 서유럽 등 해외 경쟁 대학에는 유리한 조치”라고 우려했다. 캘리포니아대 버클리 고등교육연구센터의 존 오브리 더글러스 선임 연구원 역시 “학문적 인재를 미국으로 끌어오는 게 점점 더 위축되는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진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