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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 가짜뉴스 근절 위한 제재 강조 정청래 의원 띄운 징벌적 손배제에 힘 실은 격 표현의 자유 위축, 언론 길들이기 우려도

이재명 대통령이 왜곡 보도에 대한 징벌적 손해배상제 도입 필요성을 언급하면서 정청래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드라이브를 걸고 있는 언론개혁 논의도 탄력을 받을 전망이다. 정 대표가 가동한 민주당 언론개혁특별위원회는 징벌적 손해배상 청구 대상을 일부 제한키로 했던 기존 논의도 원점에서 재검토하기로 했다. 언론중재법 대상에 유튜브를 추가하는 방안도 추진한다. 사실상 ‘더 강력한 언론중재법’에 무게가 실리는 분위기다.
李 대통령 “허위·조작 뉴스, 반드시 해결할 문제”
18일 이재명 대통령은 이날 오전 용산 대통령실에서 주재한 국무회의에서 “언론이 정부를 감시·견제하는 역할도 중요하지만 고의적 왜곡 및 허위 정보는 신속하게 수정해야 하며 그에 따른 책임을 물어야 하는 게 마땅하다”고 말했다. 언론의 고의적 왜곡과 허위 보도는 국민 혼란을 초래하는 만큼 책임 강화 방안이 필요하다는 뜻을 재차 내비친 것이다.
강유정 대통령실 대변인에 따르면 조현 외교부 장관은 이날 국무회의에서 캐나다, 영국의 경우 정부 광고의 65%가 온라인 플랫폼 광고 등 디지털화 돼 있고, 제3의 기관이 투명하게 검증하고 있다고 보고했다. 특히 “허위나 조작 뉴스에 대해 엄히 단속하는 것 같다”고 전했다. 그러자 이 대통령은 “좋은 보고 내용”이라고 평가하면서 “허위·조작 뉴스는 플랫폼 변화, 혹은 미디어 변화 흐름에 따라 가더라도 반드시 해결해야 할 문제”라고 강조했다.
이 대통령은 평소에도 가짜뉴스에 제재가 필요하다는 입장을 내비쳐 왔다. 행정안전부에 따르면 이 대통령은 지난 6월 19일 국무회의에서도 “돈을 벌기 위해 가짜뉴스를 뿌리는 유튜버들 어떻게 할지 법무부에서 좀 검토하라”고 지시하면서 “형사처벌을 하게 되면 검찰권 남용 문제가 있기 때문에 제일 좋은 것은 징벌 배상”이라고 말했다. 이날 발언은 유튜브 채널이나 온라인 포털 댓글 등을 통한 허위사실 유포로 피해가 반복적으로 발생하고 있다는 지적이 제기되자, 이를 근절할 고강도 대응의 필요성을 거듭 강조한 것으로 풀이된다.
실제 악의적 왜곡 보도로 피해를 입더라도 언론사를 상대로는 소송에서 이기기도 어렵고, 이에 따른 손해배상액도 적다. 일부 법안은 언론중재위원회의 ‘언론판결분석보고서’를 인용해 언론 관련 법원의 손해배상 인용액(원고 승소시)이 500만원 안팎에 머물러 있기도 하다. 즉 ‘허위·조작정보 또는 가짜뉴스’ 범람에 따른 폐해를 심각하게 여기는 국민은 점점 많아지는데, 법원의 소극적 손해배상액 산정으로 제대로 된 피해 구제가 이뤄지지 못하는 만큼 징벌적 손배제 법안의 입법 필요성이 높아졌다는 것이다.

與 언론개혁특위 기존 논의 재검토
이 대통령의 이번 '언론 제재' 발언은 최근 민주당의 언론개혁 드라이브와도 궤를 같이한다. 민주당은 지난 14일 당내 언론개혁특위를 출범시키고, 추석 전까지 징벌적 손배 제도를 도입하겠다고 엄포를 놓은 상태다. 징벌적 손배는 언론이 허위·조작 보도 피해자에게 손해액의 3~5배 배상을 의무화하는 내용으로, 정 대표의 숙원 사업이기도 하다. 정 대표는 21대, 22대 국회에서 연달아 징벌적 손배제가 포함된 언론중재법 개정안을 '1호 법안'으로 발의한 바 있다.
특위는 21대 국회 때 논의했던 정치인과 법조인, 대기업 임원 등 이른바 ‘권력자 예외조항’도 원점에서 논의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당시 민주당은 언론중재법 개정안이 유력 정치인 등을 대상으로 한 권력 감시형 보도를 위축시킨다는 비판을 받자 안전 장치로 단서 조항을 추가했었다. 특위 간사인 노종면 의원은 “징벌적 손해배상 청구 남발의 부작용을 억제할 수 있는 선을 고민하는 게 본질”이라며 “다양한 방안을 논의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민주당은 유튜브의 허위조작 정보를 차단하기 위해 법적인 모니터링을 강화하는 방안과 언론중재법상 징벌적 손배 청구 대상에 유튜브 채널을 추가하는 방안도 논의했다. 현재 특위는 보도 내용의 허위·고의적·중대 과실 여부 등의 입증 책임을 유튜브를 포함한 언론에 두는 방안을 유력하게 검토 중이다. 노 의원은 “보도가 허위가 아님을 입증할 책임은 언론에 부여하는 게 합리적이겠다는 일부 의견이 나왔다”고 말했다. 징벌적 손배 대상으로 기자 개인를 지목하진 못하도록 하되 정정보도에 따른 손해배상 청구 대상에는 기자를 포함시키도록 하는 방안도 논의하고 있다.
“악의적 보도 책임 물어야” vs “표현의 자유 크게 위축”
다만 일각에서는 허위조작 정보에 대한 구체적인 정의를 사회적으로 합의할 필요가 있으며, 해당 제도가 자칫 과하게 적용돼 표현의 자유를 위축시킬 수 있다는 비판도 나온다. 앞서도 민주당은 문재인 정부 때인 2021년 징벌적 손배제 도입을 포함한 언론중재법 개정을 시도했지만 ‘언론 자유 침해’라는 여론의 반발에 부닥쳐 결국 무산된 전례가 있다.
언론개혁을 반대하는 측은 악의를 제3자가 판단하는 순간 언론의 자유는 침해된다고 주장한다. 사실상 언론에 재갈을 물리는 법이란 지적이다. 일부 법조계에서는 민주주의의 핵심인 언론의 자유는 가급적 제한하지 않는 게 원칙인 만큼 언론사가 징벌적 손배를 두려워하게 되면 보도 기능이 위축될 뿐만 아니라 심각한 '자기검열'을 하게 될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한 변호사는 "허위라는 개념은 모호할 뿐만 아니라 기준에 따라 애매한 경우가 대부분이어서 자칫 법을 잘못 적용하면 언론 위축 효과가 상당할 것"이라며 "허위성 판단을 정부가 하게 될 텐데, 정부의 여론시장 왜곡도 가능하게 하는 것이어서 적절치 않은 입법"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악의성이나 인격권 침해 여부를 느슨하게 판단하거나 폭넓게 적용한다면 언론의 자유를 심각하게 침해할 우려가 있고, 반대로 엄격히 적용한다면 지금과 별다른 차이가 없기 때문에 굳이 법을 개정할 필요가 없다"며 "불필요하거나 해서는 안 되는 입법 시도"라고 강조했다.
반면 찬성 측은 경제적 페널티를 통해 언론이 자정할 수 있도록 하는 기능을 할 것이라는 기대가 크다. 지금도 잘못된 언론보도에 대한 손해배상제도를 규정하고 있지만, 명예훼손 등에 대한 손해배상액이 얼마되지 않다 보니 고의적이거나 현저히 경솔한 기사·보도를 막을 정도의 불이익은 되지 못한다는 설명이다. 한 로스쿨 교수는 "인터넷 언론사를 포함해 언론매체 숫자가 엄청나게 늘어 예전처럼 언론사를 믿고 자체적인 통제에 맡기기는 어려워진 상황"이라며 "징벌적 손배제 도입 필요성 자체를 부인하긴 어렵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