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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원유 20% 호르무즈 의존, 봉쇄 시 전 세계 충격 일본·한국, 원유 수입 대부분을 중동에 기대는 구조적 취약성 동북아 공동 비축·운송망 협력 통한 연속성 확보 필요
본 기사는 The Economy 연구팀의 The Economy Research 기고를 번역한 기사입니다. 본 기고 시리즈는 글로벌 유수 연구 기관의 최근 연구 결과, 경제 분석, 정책 제안 등을 평범한 언어로 풀어내 일반 독자들에게 친근한 콘텐츠를 제공하는 데 목표를 두고 있습니다. 기고자의 해석과 논평이 추가된 만큼, 본 기사에 제시된 견해는 원문의 견해와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세계 하루 석유 소비량의 20%가 호르무즈 해협을 지난다. 2024년 하루 평균 약 2,000만 배럴이 이곳을 통과했고, 2025년 들어서도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만약 이 해협이 봉쇄되거나 심각한 차질이 생기면 가격 충격은 순식간에 전 세계로 확산된다.
특히 일본은 위험이 크다. 원유 수입의 95%를 중동에 의존하고, 그 중 약 75%가 호르무즈를 거친다. 한국도 마찬가지다. 최근 미주산 수입을 늘렸지만, 여전히 취약하다. 중국은 러시아산 원유와 파이프라인 덕분에 일부 완충 장치가 있지만 원유 의존 자체는 여전하다. 좁은 해역 하나가 세계 에너지 공급을 좌우하는 만큼, 전략 비축과 대체 수송망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적 대비책이다.

병목이 만든 연쇄 충격
호르무즈 해협은 전 세계 원유와 LNG의 약 20%를 처리한다. 카타르산 LNG가 특히 크게 노출돼 있다. 완전 차단이 아니더라도 위협만으로 보험 재산정과 운임 급등이 뒤따른다.
2023년 말 예멘 후티 반군이 촉발한 홍해 사태는 그 파급을 보여줬다. 2024년 중반까지 아덴만을 지나는 선박 용량은 76%, 수에즈 통과는 70% 줄었다. 희망봉 항로 우회가 강제되면서 같은 물량을 옮기기 위해 더 많은 선박이 필요했고, 세계 선박 수요는 약 3%, 컨테이너선 수요는 12% 늘었다. 아시아-유럽 항로는 10~14일 지연됐으며, 연료비와 재고 비용도 급등했다. 홍해 사태는 단순한 물류 차질이 아니라 정유와 석유화학, 제조업 전반으로 충격이 확산된 것이다.

주: 항목-아덴만 선박 수용량, 수에즈 운하 통과량, 세계 선박 톤-마일 수요, 컨테이너 수요, 희망봉 경유 도착 선박(X축), 변화율(Y축)
동아시아 전체의 위기로
일본은 동아시아에서 가장 높은 집중 리스크를 지닌다. 원유 수입의 95%가 중동에서 오며, 자국 생산은 사실상 없다. 원전 재가동은 더디고 LNG는 전력을 감당하지만, 운송 연료와 나프타를 대체하지 못한다. 여기에 엔화 약세까지 겹치며 충격은 한층 커진다.
한국도 크게 다르지 않다. 2023년 기준 원유 수입의 72%를 중동에 의존했고, 최근 미주산을 늘렸지만, 여전히 취약하다. 한국은 세계 4위 석유화학 생산국이자 아시아 최대 나프타 수입국으로 원재료 가격과 공급에 민감하다. 일부 LPG 대체가 가능하나 한계가 뚜렷하다. 세계 3위 LNG 수입국이라는 점도 해상 안정성에 절대적으로 의존하게 만든다.

주: 국가-일본, 한국, 중국(X축), 호르무즈 해협 경유 원유 수입 비중(Y축)
그러나 중동 불안을 일본과 한국만의 문제로 보는 것은 위험하다. 걸프에서 시작되는 병목 현상과 선박 보험·운임 급등은 동아시아 전역에 직격탄이 된다. 대만의 반도체, 한국의 석유화학, 중국·일본의 운송 연료가 모두 같은 유조선 항로에 묶여 있기 때문이다.
원자력·재생에너지의 한계
동아시아는 세계적으로 원전 규모가 크다. 중국 60기, 한국 26기, 일본 33기를 보유하고 있으나 가동률은 제한적이다. 대만은 2025년 원전을 전면 퇴출했다. 원전은 전력 생산에는 기여하지만, 액체 연료를 대신하지 못한다. 석유화학에는 나프타가 필요하고, 해운·항공은 여전히 석유에 의존한다.
재생에너지 역시 마찬가지다. 전력에는 효과적이지만 화학 원료를 대체하지 못한다. 바이오나프타, 합성연료, 수소가 대안으로 거론되지만, 아직 희소하고 비싸며 인프라도 미비하다. IEA 역시 공급이 풍부해 보여도 병목이 발생하면 잉여는 곧바로 부족으로 바뀔 수 있다고 경고한다.
산업 생산 위기 시나리오
걸프 지역에서 심각한 교란이 발생하면 동아시아 산업생산의 최대 40%가 줄 수 있다는 시뮬레이션도 있다. 호르무즈 통과량이 절반으로 줄면 하루 1,000만 배럴의 수출 능력이 사라진다. 전략 비축이나 장거리 우회 없이는 즉각적인 공급 부족이 불가피하다.
이 부족은 운송과 원재료 두 갈래로 제조업에 직격탄을 날린다. 연료가 모자라면 트럭과 연안 해운이 중간재를 제때 나르지 못하고, 나프타 공급 차질은 에틸렌·프로필렌 생산을 막아 전자·자동차·소비재 산업으로 파급된다. 특히 한국의 석유화학 단지가 세계 허브여서 충격은 곧장 세계 시장으로 확산될 수 있다.
동아시아 공동 리더십
일본은 한국, 그리고 가능하다면 중국과 대만과 함께 ‘동북아 에너지 연속성 협정’을 주도해야 한다. 협정의 핵심은 위기 시 에너지 흐름을 끊기지 않게 하는 것이다. 구체적으로는 ▲ 비축유 공동 비상 프로토콜, ▲ 미주·서아프리카산 원유 장거리 운송 계획, ▲ 위험 지역 유조선 호송 협력, ▲ 석유화학 원료 교환 라인을 통한 의료·식품 등 필수재 우선 공급이 포함된다.
이를 뒷받침하기 위해 일본은 걸프 지역과의 외교 채널을 활용해 충돌을 예방하고, G7·ASEAN·동아시아정상회의 같은 다자 무대에서 해상 안전을 제도적으로 강화해야 한다. 평상시에는 과잉 대응처럼 보일 수 있지만 위기 상황에서는 선견지명이 된다.
가격 안정과 위기 과소평가의 함정
일각에서는 “IEA가 공급 과잉을 전망하고, 유가도 2022년 고점보다 낮은데 위기를 과장하는 것 아니냐”라는 지적이 있다. 그러나 가격 안정과 해상 리스크는 별개의 문제다. 비축과 수요 둔화를 전제로 한 공급 전망과 달리, 해상 병목은 순간적으로 운송 자체를 가로막는다. 2023년 홍해 사태가 이를 보여줬다. 당시 공급은 충분했지만, 항로 차질만으로 운송비가 급등했다. 호르무즈에서 같은 상황이 벌어진다면 수치상 공급은 남아도 실제 수입국에는 즉시 부족이 발생한다. 공급 과잉 전망과 해상 리스크는 동시에 존재할 수 있다.
바다의 병목, 동아시아의 과제
세계 원유는 단일 해상 병목을 따라 움직인다. 흐름이 막히면 충격은 곧바로 거시 경제로 확산된다. 동아시아는 이 흐름의 최종 수혜자이자 동시에 최종 위험 부담자다. 일본은 집중도가 높아 가장 취약하고, 한국과 대만도 다르지 않다. 중국은 러시아와 파이프라인 덕분에 일부 완충 장치가 있지만, 원유 의존 자체는 여전하다.
선택지는 방심이나 단기적 공포가 아니다. 필요한 것은 준비와 체계적 대응이다. 지금 ‘동북아 연속성 협정’을 추진하고, 안정된 가격 환경을 활용해 물적·제도적 안전망을 구축해야 한다. 위기가 오지 않으면 비용은 보험료에 불과하지만, 실제 사태가 발생한다면 그 대비가 동아시아 경제의 회복력을 좌우하게 될 것이다.
본 연구 기사의 원문은 Fragile East Asian Artery: Why Middle East Instability Endangers 30-40% of Our Industrial Production | The Economy를 참고해 주시기 바랍니다. 2차 저작물의 저작권은 The Economy Research를 운영 중인 The Gordon Institute of Artificial Intelligence에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