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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우크라 회담 앞두고 유럽 동맹국 사전 협의 전장 경험 활용해 美와 드론 생산 협정도 추진 나토의 유럽 회원국들, 우크라 안보 지원 확대

우크라이나가 전후 안보 보장을 위해 미국 측에 유럽 자금을 활용한 대규모 미국산 무기 구매안을 제시했다. 구체적인 무기 목록은 공개되지 않았지만, 우크라이나가 줄곧 요구해 온 미국산 패트리어트 방공 미사일 시스템이 포함될 가능성이 있다. 한편, 구매비용을 부담하는 유럽 동맹국들은 우크라이나에 대한 안보 부담이 집중되는 상황에 대해 불만을 드러내며 미국의 역할 분담을 촉구하고 있다.
"지속적인 평화 위해선 푸틴에게 양보하면 안 돼"
19일(현지 시각)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는 우크라이나가 전후 미국의 안전 보장을 확보하기 위해 유럽 자금을 바탕으로 1,000억 달러(약 139조원) 규모의 미국산 무기 구매를 제안했다고 보도했다. 우크라이나는 이 같은 내용을 담은 안보 협력안을 유럽 동맹국들과 사전에 공유했으며, 지난 18일 백악관에서 열린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간의 정상회담에 앞서 핵심 의제로 제시했다고 FT는 전했다.
해당 문건을 두고 전문가들은 트럼프 대통령이 젤렌스키 대통령과의 회동에 앞서 진행된 미·러 정상회담에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입장을 수용하는 쪽으로 기울었다는 우려 속에 우크라이나와 유럽 측이 대안을 제시한 성격이 있다고 분석한다. 실제로 협력안에는 "지속적인 평화는 푸틴 대통령에게 양보나 공짜 선물을 주는 것으로 달성되는 것이 아니라 미래 침략을 억지할 강력한 안보 체제에 기초해야 한다"는 문구가 포함됐다.
이번 안보 협력안에는 구체적으로 어떤 무기를 구매할지에 대해 명시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젤렌스키 대통령은 미사일 요격에 쓰이는 미국산 패트리어트 방공 미사일 무기체계에 대한 구매 의사를 꾸준히 밝혀왔다. 패트리어트 시스템은 고고도에서 접근하는 발사체를 요격하는 첨단 방공 무기로 한 포대 기준 최대 요격 사거리가 70~80km에 달하고, 탄도미사일·순항미사일·고속 항공기 등을 정밀하게 격추할 수 있다.
우크라이나는 이와 별개로 미국과 500억 달러(약 69조원) 규모의 드론 공동생산 협정도 추진한다. 해당 협정은 우크라이나가 전장에서 축적한 드론 운용 경험과 현장 기술력을 제공하고, 미국이 생산·기술·자본을 지원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드론은 우크라이나군 전술의 핵심 무기로, 실전 경험을 통해 기술을 발전시켜 온 우크라이나 현지 업체들이 참여할 예정이다. 다만, 드론 협정 역시 조달·투자 비율 등 구체적인 조건은 공개되지 않았다.

미국산 무기 구매 비용 상당 부분을 유럽이 책임져
주목할 점은 우크라이나 안보를 위한 미국산 무기 구매 비용을 유럽 동맹국들이 상당 부분 부담한다는 점이다. 이와 관련해 최근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NATO)는 "유럽 회원국들이 미국산 혹은 미국이 공급하는 무기를 구매하기 위해 100억 달러(약 14조원)의 기금을 조성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이 무기들은 전장에서의 우크라이나 수요와 미군의 필요를 조율한 후 우크라이나 측에 전달될 예정으로, 나토 연합군 최고사령관인 미국의 알렉서스 그린케비치 장군이 우크라이나의 무기 수요를 심사하는 책임을 맡는다.
나토와 유럽 회원국 주도로 운영되는 '우크라이나 우선 요구 목록(PURL)' 프로젝트도 이미 가동 중이다. 나토 회원국이 우크라이나가 필요로 하는 무기 목록에 따라 미국산 무기를 공동 구매하고, 미국이 이를 우크라이나에 직접 전달하는 방식으로 추진되는데, 현재 덴마크와 네덜란드가 적극 참여하고 있다. 네덜란드는 패트리어트 미사일 부품과 요격 미사일 등을 포함해 5억 유로(약 8,000억원) 규모의 미국산 무기 패키지를 우크라이나에 제공하기로 했으며, 덴마크 역시 이를 위해 9,000만 달러 규모의 지원 자금을 마련했다.
유럽 동맹국도 자체적으로 미국산 무기를 구입해 우크라이나를 지원에 나서고 있다. 대표적으로 독일은 우크라이나에 대한 방공 지원을 위해 미국산 패트리어트 미사일 시스템 도입과 지원 계획을 적극 추진하고 있다. 최근에는 트럼프 행정부와 패트리어트 시스템 2기를 추가 배치하는 데 합의했다. 이에 따라 독일은 기존 보유 중인 패트리어트 시스템 2기를 우크라이나에 송출할 수 있게 됐다. 이에 대해 미국은 앞으로도 패트리어트 미사일을 우크라이나에 보내는 국가에게 우선적으로 신형 패트리어트 미사일을 공급할 것이라고 밝혔다.
"유럽이 구매한 무기로 생색내서는 안 돼" 비판도
이처럼 우크라이나에 대한 서방의 안보 지원 논의가 사실상 유럽이 전담하는 방향으로 흐르자, 일각에서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카야 칼라스 EU 외교·안보 고위대표는 지난 15일 벨기에 브뤼셀에서 열린 EU 외교장관회의 기자회견에서 “우크라이나에 더 많은 무기를 제공하겠다는 트럼프 대통령의 발표를 환영한다”면서도 “모든 국가가 똑같이 지원하기를 바란다는 것이 우리의 요청"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유럽뿐 아니라 미국도 공동의 책임을 분담하는 모습을 보고 싶다”고 강조했다.
칼라스 고위대표는 이 발언의 의미를 묻는 질문에 "유럽은 2차 세계대전 이후 군축과 평화주의 기조 속에 무기 생산 인프라가 축소돼 단기간 내 생산량을 늘리는 데 한계가 있다"며 "그럼에도 우리는 우크라이나를 돕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답했다. 이어 트럼프 대통령을 겨냥해 “우리가 미국산 무기 구매 대금을 부담한다면 그건 유럽의 지원”이라며 “당신이 무기를 주겠다고 약속해 놓고 정작 비용은 다른 누군가 낸다면 그것을 당신이 줬다고 할 수는 없지 않나”라고 꼬집었다.
실제 수치도 이를 뒷받침한다. 독일 킬세계경제연구소(IfW) 집계에 따르면 2022년 1월부터 올해 4월까지 미국의 우크라이나 지원액은 1,146억 유로(약 184조원), 유럽은 1,561억유로(약 251조원)으로 유럽이 더 많다. 미국의 지원액은 조 바이든 전 대통령이 퇴임하기 직전인 지난해 4분기 268억 유로(약 43조원)였으나 트럼프 대통령이 취임한 올해 1분기 5억 유로(약 8,000억원)로 급감했다. 반면 유럽 지원액은 지난해 4분기 95억 유로(약 15조원)에서 올해 1분기 191억 유로(약 31조원)로 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