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관세 카드’ 결국 대법원행, 절차·물가 논쟁 본격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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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속 상고로 불확실성 차단 움직임
절차적 정당성 결여 쟁점으로 부상
물가 경로·경제 영향에 이목 집중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관세를 둘러싼 행정명령의 효력을 부정한 항소법원의 판결에 불복하며 대법원 신속 심리 요청에 나섰다. 그는 관세가 사라지면 미국의 정체성도 흔들릴 것이라고 주장하며 정치적 정당성 확보에 열을 올렸다. 이번 소송은 대통령의 독단적인 행정명령이 의회 권한을 침해했는지가 핵심 쟁점으로, 절차 준수 여부가 대법원 판단을 가를 전망이다. 다만 최종 판결이 내년 초로 예상되는 만큼 관세 지속이 미국 내 물가와 경제 전반에 미칠 파급효과 또한 법원의 판결에 적잖은 영향을 미칠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시장 불안 확대 가능성 경계
3일(이하 현지시각) 외신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은 전날 백악관에서 기자들과 만나 “연방대법원에 상호관세의 적법성에 관한 판단을 신속하게 하도록 요청할 방침”이라며 “관세를 없애면 우리는 제삼 세계 국가로 전락하고 말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항소법원이 국제비상경제권한법(IEEPA)을 근거로 한 상호관세 부과가 대통령 권한을 넘어선다고 판단한 데 불복해 조속히 대법원 심리를 열어달라고 요구하며 “잘못된 결정은 재앙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 같은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은 법적 방어를 넘어 정치적 정당성 확보를 노린 시도로도 읽힌다. 그는 “우리는 수조 달러를 관세로 벌어들였고, 모든 국가가 협정에 동의했다”고 주장하며 “관세는 미국 산업과 투자 유치의 원동력”이라고 힘줘 말했다. 나아가 “주식시장이 항소법원의 판결 때문에 하락했다”며 금융시장 불안을 이유로 대법원의 조기 개입을 압박했다. 이는 관세 정책이 자국 경제와 안보 전반을 지탱하는 축이라는 인식을 부각시키려는 의도로 해석된다.
앞서 지난달 29일 미 항소법원은 7대 4로 IEEPA에 따른 상호관세 부과는 위법이라는 판결을 내렸다. 다만 혼란을 최소화하기 위해 오는 10월 14일까지 관세 효력을 유예했다. 이에 따라 현행 관세는 유지되지만, 시장에서는 불확실성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주를 이룬다. 미 세관국경보호청(CBP)에 의하면 지난달 25일 기준 IEEPA에 따라 부과된 관세는 총 658억 달러(약 91조원)에 달한다. 관세 무효가 확정되면 대규모 환급 문제가 현실화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는 만큼 정부와 시장 모두 촉각을 곤두세우는 모양새다.
한편, 트럼프 대통령의 신속 상고 요청 배경에는 대법원의 정치적 지형도 자리한다. 현재 대법관 9명 중 6명이 공화당 성향으로 분류되며, 트럼프 대통령이 첫 임기 당시 직접 임명한 인사도 포함돼 있다. 그러나 법조계에선 아무리 보수 성향이라 해도 대통령의 권한과 그 범위를 해석하는 데는 신중할 수밖에 없다는 평이 우세하다. 결국 이번 상고는 트럼프 대통령이 강조하는 정치적·경제적 상징성과 대법원이 중시하는 법적 절차 원칙이 맞부딪히는 시험대가 될 것이란 게 법조계 전반의 평가다.
행정명령 남용 논란 ‘활활’
트럼프 대통령이 상호 관세를 강행한 근거로 제시한 IEEPA는 국가안보 위기 상황에서 대통령에게 긴급 규제 권한을 부여하기 위한 법률이다. 그러나 연방항소법원은 IEEPA 어디에도 ‘관세’에 관한 언급이 없고, 세율 부과 권한은 헌법상 의회에 귀속된다고 지적했다. 따라서 트럼프 대통령이 단일 행정명령으로 최대 50%에 달하는 관세율을 임의로 정한 것은 권한 남용에 해당한다는 것이 판결의 핵심이다. 법원은 절차적 안전장치가 없는 상태에서 대통령이 무제한적 권한을 행사한다면 입법권을 침해하는 중대한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자유무역협정(FTA) 실제 국제 통상 규범과 비교하면 문제는 더 명확해진다. FTA 수년간의 국제 협상과 각국 의회의 비준, 대통령의 공포 과정을 거친 후 최소 6개월이 지나야 효력이 발생한다. 만약 이 과정에서 분쟁이 발생할 경우, 세계무역기구(WTO)에 제소하고 판정이 나오기까지 다시 수년이 소요된다. 국제 무역 질서에서 관세는 이처럼 복잡하고 다층적인 절차를 통해 관리되는 제도다. 이 때문에 법원은 이번 사안을 단순한 정책 문제를 넘어 입법 절차를 무력화한 중대한 위헌적 조치로 규정했다.
법리적 쟁점은 ‘중대한 질문(Major Questions) 원칙’과도 맞닿아 있다. 그간 미 연방 대법원은 사회·경제 전반에 광범위한 영향을 미치는 정책을 행정부가 독자적으로 시행할 경우, 반드시 의회의 명시적 승인 근거가 필요하다고 판시해 왔다. 온실가스 배출 규제나 학생 대출 탕감 조치 등을 무효화한 판례가 대표적이다. 이번 사안 역시 수조 달러 규모의 무역 흐름과 글로벌 공급망 전반에 영향을 주는 만큼 행정명령으로만 추진하는 것은 허용되지 않는다는 논리가 힘을 얻는 형국이다.

물가 흐름이 정책·시장 판단 좌우 전망
이처럼 상고 추진과 법리 다툼이 이어지는 가운데, 법원 판단의 분수령은 관세의 실제 경제적 파장으로 모아지는 양상이다. 당초 시장에서는 대규모 관세 인상이 미국 소비자물가를 빠르게 자극할 것이라 예상했지만, 실제로는 기업들의 재고 축적과 마진 흡수, 수입처 다변화 등이 초기 충격을 완충하며 상승 압력을 늦추고 있다. 많은 기업이 관세 시행 전 대량의 중간재를 확보해 가격 전가를 미뤘고, 해외 수출기업들도 가격을 낮춰 부담을 일부 떠안았다. 이로 인해 가구·가전 같은 일부 품목에서 국지적 인상은 나타났으나 전체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안정적으로 유지됐다.
그러나 이러한 완충 장치가 장기적으로 지속될 가능성은 희박하다. 창고에 쌓아둔 재고는 점차 소진되고 있으며, 기업의 마진 흡수에도 한계가 분명하기 때문이다. 여기에 최근에는 중국을 대체해 베트남, 멕시코 등으로 수입처를 다변화하는 방식 역시 뚜렷한 비용 절감 효과를 기대할 수 없는 실정이다. 이런 상황에서 관세 대상국마저 계속 확대되면, 향후 물가 전가는 피할 수 없는 흐름이다.
전문가들도 관세의 중장기적 파급을 예의주시했다. 블룸버그가 집계한 8월 말 전문가 설문에서는 “관세 효과로 내년 상반기 CPI가 0.3~0.5%p 추가 상승할 수 있다”는 응답이 과반을 차지했다. 자동차와 전자제품, 가구 등 생활 밀접 품목들이 단기 방어에 힘을 쏟고 있지만, 기업의 영업이익 감소가 누적되면 이 같은 전략은 힘을 잃을 수밖에 없단 지적이다. 이 같은 분석은 단순 인플레이션 우려를 넘어 관세 자체의 경제적 효용성에 대한 의문으로 이어진다.
시장에선 내년 초로 예상되는 대법원 최종 판결에 해당 시점의 물가 흐름이 핵심 참고 지표로 작용할 가능성을 점치는 분위기다. 물가가 현재의 완만한 상승세를 유지한다면 트럼프 행정부 측 논리가 상대적으로 힘을 얻을 수 있지만, 반대로 관세 효과가 누적돼 인플레이션이 본격화하면 시장 불안을 잠재우기 위해서라도 관세 조치에 제동을 걸 수밖에 없다는 관측이다. 미 연방대법원의 심리에 미국 경제는 물론 글로벌 무역 질서 전반의 향배가 달려 있단 평가가 나오는 배경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