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韓·美 무역협상 교착 상태, 빠른 타결보다는 '전략적 지연' 필요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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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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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정하고 객관적인 시각으로 세상의 이야기를 전하겠습니다. 국내외 이슈에 대한 정확한 이해와 분석을 토대로 독자 여러분께 깊이 있는 통찰을 제공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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韓·美, 대미 펀드 투자 방식 두고 이견
美 입장 수용 시에는 제조업 붕괴 우려
中, 지연 전략으로 11월까지 관세 유예

한·미 무역협상이 교착 상태에 빠진 가운데, 우리 정부는 3,500억 달러(약 486조원) 규모 대미 투자 패키지의 세부 이행 방식을 두고 미국과 이견을 보이고 있다. 미국은 투자 구조와 수익 배분 등에서 '일본식' 방식을 요구하는 반면, 우리 정부는 환율 방어와 제조업 붕괴 가능성을 제기하며 수용이 어렵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빠른 합의가 반드시 국익을 보장하지 않는 만큼, 충분한 검토와 전략적 판단이 필요한 상황이다.

韓·美 무역협상, 최종 타결 이뤄지지 않아

16일(이하 현지시각) 여한구 산업통상자원부 통상교섭본부장은 이날 워싱턴DC에서 카운터 파트너인 제이미슨 그리어 미 무역대표부(USTR) 대표와 회동했다. 지난 11~14일 김정관 산업부 장관이 하워드 러트닉 상무장관과 만난 데 이어 연달아 고위급 협상을 이어간 것이다. 양국은 지난 7월 30일 새로운 무역협정을 체결하기로 큰 틀에서 합의했으며, 지난달 25일 이재명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백악관 한미 정상회담을 통해 이를 확인한 바 있다. 그러나 세부 이행 사항을 두고 양측이 이견을 보이면서 최종 타결은 이뤄지지 않은 상태다.

특히 양국은 한국의 3,500억 달러 규모 대미 투자 패키지와 관련해 이를 구체적으로 어떻게 구성하고 이행하느냐를 놓고 이견을 보이는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은 달러 현금을 한국에서 받아 미국이 투자처를 결정하고, 투자금 회수 이후에는 투자 이익의 90%를 가져가는 일본식 합의를 요구 중이다. 그러나 우리 정부 이러한 방식이 국가 경제에 심각한 악영향을 줄 수 있다는 이유로 수용하기 어렵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이에 대해 여 본부장은 "악마는 디테일에 있다"며 "디테일을 갖고 치열하게 협상 중"이라고 밝혔다.

전문가들은 정부가 약속한 대미 투자 펀드 3,500억 달러 외에 국내 기업들이 미국에 투자하는 1,500억 달러(약 210조원)를 합해 총 5,000억 달러(약 690조원)를 미국에 투자할 경우 외환위기는 물론 국내 산업 공동화까지 가져올 수 있다고 우려한다. 정부가 환율 방어를 위한 카드로 미국 측에 무제한 통화스와프를 제한했지만, 이것이 설사 현실화하더라도 외환위기의 가능성을 낮출 수는 있어도 국내 제조업의 붕괴는 막지 못할 것이란 전망이다. 실제로 대미 해외직접투자(FDI)가 급증한 2015~2024년에 국내 제조업 고용 비중과 부가가치 비중이 동시에 감소했다.

조지아 주 韓 근로자 구금 등 압박 수위 높여

이런 가운데 양국 간 긴장도 고조되고 있다. 지난 4일 미 이민세관단속국(ICE)은 현대자동차와 LG에너지솔루션의 조지아 주 합작 공장을 급습해 300여 명의 한국인 근로자를 체포·구금했다. 이에 한국 정부는 강한 유감을 표명했고, 구금된 이들은 8일 만에 석방됐다. 트럼프 대통령은 'ICE가 할 일을 했을 뿐'이라고 했지만, 시점과 맥락을 고려할 때 관세 협상에 대한 의도적인 압박이라는 해석이 지배적이다. 지난 11일에는 러트닉 장관이 "한국은 협정을 수용하든지, 아니면 25%의 관세를 내야 한다"며 "더 이상의 유연성은 없다"며 압박의 수위를 높였다.

이를 두고 일각에서는 미국과의 협상에 성급하게 대응해선 안 된다는 의견이 나온다. 빠른 타결이 반드시 국익을 보장하는 것이 아닌 만큼 전략적 지연이 필요하다는 조언이다. 과거 미국은 전통적 우방인 일본에도 자국 우선주의를 관철시킨 바 있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1985년 플라자 합의다. 당시 미국은 대일 무역 적자가 급증하자 엔화 가치를 강제로 끌어올리는 조치를 취했다. 이후 엔화 가치는 달러 대비 50% 가까이 상승해 일본의 수출 경쟁력은 급격히 약화됐다. 일본 정부가 저금리 정책으로 대응했지만, 이는 과도한 유동성을 유발해 주식·부동산 가격을 폭등시키는 '버블 경제'로 이어졌다.

1986년과 1991년의 미·일 반도체 협정도 치명적이었다. 일본 반도체업계는 외국 업체에 시장 점유율 20%를 보장하고, 미국이 정한 가격 규제를 따르는 조건을 수용해야 했다. 그 결과 1980년대 세계 시장 절반을 점유했던 일본 반도체 산업은 한국과 대만에 밀려 주도권을 상실했다. 지난 4일 타결된 미·일 무역협상 결과를 두고도 일본 내에서는 실패했다는 비판이 나온다. 5,500억 달러(약 760조원)에 이르는 대미 투자의 운용 권한을 미국이 가지고 있는 데다 미·일 펀드가 상환하지 못하면 일본 국책 금융기관이 대신 상환해야 한다는 점에서 실질적인 손실이 불가피하다는 지적이다.

블룸버그 "美·中 협상, 장기간 휴전에 돌입"

대미 협상에서 손해를 본 일본과 달리 중국은 지연 전략을 활용해 유리한 위치를 확보했다. 자국의 소비시장과 공급망 경쟁력, 희토류 수출 통제 등 강경한 비관세 장벽을 협상 카드로 사용하며 협상력면에서 사실상 미국을 앞섰다는 평가다. 트럼프 행정부가 정치적·안보적 문제를 카드로 내세워 포괄적 합의를 요구하고 있지만, 중국은 일부 사안과 관련해 단기적 조치에만 합의하면서 자신의 페이스대로 협상을 이끌고 있다. 더욱이 협상 기간 동안 미국이 관세 조치를 11월까지 유예하면서 실질적으로는 기존의 관세가 유지되는 상황이다.

이에 대해 블룸버그는 "전 세계가 주목하는 미국과 중국의 무역 전쟁이 장기간 휴전 국면에 접어들었다"며 "트럼프 대통령이 시 주석과 합의를 이뤄내고 싶다는 뜻을 분명히 하며 무역협정 타결을 위해 적극적으로 손을 내밀고 있지만, 논의가 진전되지 않고 있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중국은 트럼프 대통령 집권 1기와 달리 미국과의 무역 합의를 서두르는 데 총력을 기울이지 않고 있다"며 "그보다는 자국의 협상 능력을 효과적으로 활용해 협상을 지연시키는 전략을 구사하고 있어 양국이 장기간 지속 가능한 합의에 도달할 수 있을지 불분명하다"고 전했다.

특히 중국은 미국 기업이 중국 소비시장과 핵심 산업 공급망에 대한 의존도를 낮추기 어렵다는 점을 충분히 인식하고 있다. 최근 중국 규제당국은 미국 반도체 기업을 상대로 반덤핑 조사를 시작하면서 이러한 의지를 더욱 분명히 했다. 엔비디아 반도체에 보안 문제를 이유로 들어 자국 기업들에 구매를 자제하도록 촉구한 데 이어진 조치다. 미국산 반도체를 수입하지 못할 경우 중국 제조산업 및 인공지능(AI) 기업도 타격이 불가피하나, 자국의 기술 및 생산 능력으로 이를 충분히 대체할 수 있음을 강조하기 위해 이러한 전략을 펼치고 있다는 분석이다.

정치적 상황도 미국이 불리하다. 지난달 미국의 고용 및 투자 지표가 악화하면서 트럼프 정부 정책의 악영향이 점차 뚜렷해지고 있다. 블룸버그는 "최근 미국 여론조사도 트럼프 대통령에 점차 불리한 방향으로 흐르고 있다"며 "이는 내년 중간선거를 앞두고 불안감을 더하는 요소일 수밖에 없다"고 바라봤다. 미국 대법원이 항소법원의 판결을 인용해 상호관세 정책에 대한 위법 판결을 내놓을 가능성도 충분하다는 분석도 내놨다. 트럼프 대통령이 중국과 무역 합의를 긍정적 방향으로 이끌어내는 일이 시진핑 주석보다 더 다급한 처지에 놓여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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