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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극, 유럽-동북아 최단 루트로 급부상 전략적 요충지로 그린란드 중요도↑ 글로벌 물류 전략 재편 시급한 동북아

기후변화로 북극 해빙이 가속하는 가운데, 수에즈 운하를 우회하는 북극항로가 본격적인 글로벌 해상 물류 루트로 주목받고 있다. 이에 따라 미국과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NATO)는 러시아의 북극 해로 독점을 견제하고, 그린란드 등 전략 요충지에 대한 군사·외교적 관심을 높이고 있다. 한국과 일본 등 동아시아 국가들 역시 북극항로 활용 가능성에 따라 물류 전략 재편이 시급한 상황이다.
러시아, 서방의 북극 전방 거점화에 민감 반응
25일(이하 현지시각) CNBC 등 외신에 따르면 최근 미국과 NATO가 지정학적, 안보적 이유로 북극의 중요성을 강조함에 따라 러시아가 민감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러시아는 자국이 북극해 연안의 약 53%를 차지하며, 250만여 명에 달하는 러시아인이 북극 지역에 거주한다는 점을 들어 북극에 대한 영유권을 꾸준히 주장하고 있다.
북극을 둘러싼 긴장감이 높아지는 배경에는 기후변화가 자리하고 있다. 기후변화로 북극의 빙하가 빠르게 녹으면서 그간 상상 속의 루트였던 ‘북극 항로’가 현실로 다가온 것이다. 전문가들은 오는 2030년에는 연중 8개월 이상 쇄빙선 없이도 항해가 가능한 구간이 형성될 것으로 보고 있다. 러시아 북부 해안을 따라 유럽과 동아시아를 직선으로 잇는 이 루트를 통해 한국과 일본 등 아시아 국가들은 수에즈 운하를 거치지 않고도 네덜란드, 발트 3국 등 유럽 주요 국가로 직항이 가능해질 전망이다.
이 같은 변화는 해로 개방을 넘어 새로운 글로벌 패권의 판을 바꾸는 신호탄이 되고 있다. 기존 해상 물류 중심지였던 수에즈 운하나 말라카 해협의 중요성이 상대적으로 감소하고, 북극 주변 국가들의 전략적 위상이 빠르게 부상한 것이다. 특히 러시아는 자국 북부를 따라 흐르는 북극항로를 통해 제2의 에너지 수출 통로이자 해상 패권 공간으로 적극 활용하려는 의지를 드러내고 있다. 이 항로를 통제하면 에너지, 광물, 화물 운송 등 다층적 이득을 확보할 수 있다는 계산에서다.
반면 미국과 NATO는 러시아의 북극 해로 독점을 경계하며 해상·항공 감시를 점차 강화하는 추세다. 이는 군사적 갈등과도 연결된다. 북극은 민감한 미사일 방어체계와 핵잠수함 이동 경로와도 겹치는 지역이기 때문에 전략적 전방 공간으로 간주된다. 지난 3월에는 나토가 노르웨이 해역에서 9개국 병력 1만 명을 동원한 극한지 전투 대비 훈련을 진행하기도 했다.
러시아는 즉각 경계 태세를 보였다. 당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해당 훈련을 “극한지 작전 능력과 협력 강화를 위한 움직임”이라고 정의하며 “NATO 국가들은 전반적으로 북극 지역을 잠재적 분쟁의 발판으로 삼고 있다”고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다. 이후 러시아 역시 북방함대 함정 20척과 병력 1,500여 명을 동원해 북극에서 훈련을 진행했다. 북극이 얼음 바다를 넘어 ‘전략 자산’으로 재해석되는 배경이다.

그린란드 향해 소유욕 드러낸 미국
북극 항로가 열리며 지리적 요충지로 급부상한 지역 중 하나는 바로 그린란드다. 덴마크령 자치 지역인 그린란드는 북극점에 가까운 동시에 대서양과 북극해를 연결하는 전략적 관문에 위치해 있다. 북극 항로를 따라 이동하는 선박이나 군사 자산은 이 지역을 핵심 거점으로 활용할 가능성이 농후하다는 관측이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을 위시한 미국 정부가 북극 전략에서 그린란드를 주목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북극 상공은 미사일이 북미로 접근하는 최단 경로이기 때문에 그린란드는 러시아 및 중국을 감시하고 대응할 수 있는 최적지로 평가된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해 대선 승리 직후 “안보 및 세계 자유를 위해 미국이 그린란드를 소유·통제해야 한다”고 말했으며, 올해 1월 취임 직후엔 “(그린란드에 대해) 군사적 옵션도 불사하겠다”고 강조했다. 현재 그린란드에 운영 중인 툴레 공군기지의 확대를 시사하는 발언이다.
이러한 미국의 행보는 러시아 입장에서 심각한 안보 위협으로 읽힌다. 특히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러시아는 서방의 영토 확장 행보를 민감하게 받아들이고 있으며, 그린란드를 포함한 북극권 내 서방 진영의 군사 활동 확대를 강하게 견제하고 있다. 북극을 둘러싼 팽팽한 신경전이 유럽과 북미 외교 지형 전반에 영향을 줄 수 있는 만큼, 안보 최전선으로써 그린란드의 중요도 또한 갈수록 커지는 모습이다.
“북극 전략 없는 동북아는 글로벌 물류에서 낙오” 우려
북극항로 개방이 현실화하면서 동아시아 국가들도 물류와 산업 전략 전반을 다시 고민해야 할 시점에 놓였다. 한국의 경우, 현재 글로벌 해운망에서 부산항을 중심으로 한 환적 물류체계에 상당 부분 의존하고 있다. 향후 북극항로가 본격 가동되면 아시아~유럽 간 항로의 축이 수에즈 운하에서 러시아 북부 해상으로 이동하면서 부산항의 전략적 위치 또한 상대적으로 약화하는 구조다.
문제는 러시아와의 협력이 불가피한 북극항로 이용 특성상 한국과 일본 등 미국과 안보 동맹을 맺은 국가들은 정치적·외교적 부담을 안고 물류 전략을 짜야 한다는 점이다. 전문가들은 북극항로 시대에 대비한 ‘한국형 해로 전략’이 시급하다고 입을 모았다. 항로 다변화와 물류 효율화라는 측면에서 북극항로는 거부할 수 없는 흐름이지만, 이를 체계적으로 수용하기 위한 제도·기술·외교적 기반이 부족하다는 지적이다.
조은정 국가안보전략연구원 연구위원은 지난달 발간한 ‘패권 경쟁의 요충지로서 북극: 트럼프 2기 미국의 북극 전략’ 보고서에서 “국내 해운 기업들은 북극항로에 최적화된 선박 설계와 운항 안전성 확보, 보험·기상 데이터 시스템 확보 등의 과제를 안고 있다”면서 “작금의 북극 지역 지정학적 중요성 증대를 기회로 포착해 국가 차원의 ‘북극 전략’ 종합계획안을 서둘러 마련해야 한다”고 제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