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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기 수분양자들 대규모 손실 떠안아
교통망 실현 이전 단기 기대감만 작동
미분양 리스크·실망 매물 확산 우려

수도권광역급행철도(GTX) B노선 착공이 지연되면서 한때 기대감에 치솟았던 송도 집값이 반토막 수준으로 급락하고 있다. 초기 분양가가 고평가됐던 단지들이 착공 지연에 실망한 투자자 이탈로 가격 하락을 겪는 가운데, 급매가 쏟아지면서 실거주 수요마저 위축되는 모습이다. 이러한 흐름은 송도만의 문제가 아니다. GTX 노선 전역에서 공사 지연과 신뢰도 저하로 비슷한 패턴이 반복되고 있다.
“‘여의도 20분 컷’ 믿었는데” 투자자들 패닉
26일 한국부동산원 주간 아파트 가격 동향에 따르면 송도국제도시가 속한 인천 연수구 집값은 5월 셋째 주 0.06% 내리면서 35주 연속 하락세를 보였다. 올해 누적으로는 1.81% 내리면서 인천 평균(-0.74%)을 훌쩍 넘어선 낙폭을 기록했다. 불과 2년 전까지만 해도 활황이던 지역 부동산 업계에선 “바닥을 찍은 줄 알았더니, 끝없는 지하가 이어지고 있다”는 자조 섞인 푸념이 나온다.
개별 단지에서도 최고가 대비 절반 수준의 거래가 속속 포착된다. 국토교통부 실거래가 공개시스템에 의하면 연수구 송도동 더샵송도마리나베이(전용 84㎡)는 이달 12일 6억2,500만원(4층)에 거래됐다. 같은 층 매물이 올해 1월 7억3,000만원에 손바뀜했다는 점을 고려하면, 불과 넉 달 만에 1억원 가까이 떨어진 셈이다. 동일 면적 최고가인 12억4,500만원(13층)과 비교하면 49%의 하락 폭이다.
부동산업계에선 이 같은 폭락장의 원인으로 GTX B노선 착공 지연을 꼽았다. 앞서 송도 일대는 서울 여의도까지 20분대에 도달하는 급행 노선이 예정되면서 교통 인프라에 대한 선제적 투자 기대가 분양가와 전셋값을 끌어올렸다. “지금 사두면 대박 난다”는 말이 공공연히 돌았고, 분양가 상한제가 적용되지 않는 단지에서는 10억 원을 훌쩍 넘는 고분양가도 심심찮게 등장했다.
하지만 현실은 정반대로 흘렀다. GTX B노선 착공 일정이 지연되면서 실수요가 급감했고, 그 결과 준신축 아파트마저 집값 보전에 실패한 것이다. 지난해 3월 착공식을 연 GTX B노선 민자 구간은 1년 넘게 연기되다 이달 초 인천시 남동구 구월동에서 겨우 첫 삽을 떴다. 공사가 계획대로 진행된다면, GTX B노선은 2030년 하반기 개통할 전망이다.

투기 수요 썰물처럼 빠지며 가격 붕괴
GTX 개통 기대감에 올라탄 투기 수요도 한꺼번에 빠져나가며 하락장에 힘을 보탰다. 지난해 초까지만 해도 “곧 시작된다”는 낙관론이 송도 일대를 뒤덮었고, 이를 기반으로 단기 시세차익을 노리는 투자 수요가 대거 유입됐다. 그러나 공사 일정이 반복적으로 연기되면서 이른바 ‘영끌 매수’ 세력은 손절에 나섰고, 그 여파는 현재 지역 전반의 실거래가 하락으로 이어지고 있다.
이 같은 투기 세력 이탈은 고금리 장기화 국면에서 속도를 한층 높였다. 가뜩이나 대출이자 부담이 큰 상황에서 수익 기대까지 사라지면 버틸 이유가 없다는 게 시장 참여자들의 일관된 견해였다. 특히 송도는 실수요 기반이 탄탄히 갖춰지지 않은 상황에서 교통 호재 등 기대 심리에 의존한 부분이 컸기 때문에 하락장이 본격화한 상황에서 버팀목 역할을 해줄 매수세도 받쳐주지 않았다. 결과적으로 투자 수요 이탈-매물 증가-가격 하락이라는 전형적 붕괴 사이클이 작동한 셈이다.
심지어 이미 입주를 마친 주민들 사이에서는 GTX 사업 추진 주체와 정부에 대한 불신도 커지는 양상이다. 정부가 ‘미래 교통 인프라’라는 이름으로 희망만 부풀리고, 정작 구체적 이행 계획은 공유하지 않은 채 민간 분양을 허용하면서 고점 매수를 양산했다는 비판이다. 이 때문에 일각에선 수분양 계약 해지, 전매 제한 완화 등의 요구까지 나오는 실정이다.
송도는 예고편, 부동산 시장 전반 타격 불가피
송도 집값 하락은 GTX B 노선 착공 지연이 직접적 원인으로 작용했지만, 문제의 본질은 훨씬 광범위하다. GTX A·B·C 전 노선에서 착공 지연과 행정 혼선이 이어지면서 이들 노선이 포함된 지역 전반에 대한 시장 신뢰도 역시 동반 하락한 것이다. 한때 수도권 부동산 시장에 통용되던 “GTX 노선 따라 오른다”는 공식도 더 이상 통하지 않게 됐다.
이러한 불신은 주택시장 전반에도 악영향을 미친다. 시장 위축을 대변하는 미분양 증가가 그 대표적 예다. 파주 운정, 남양주 왕숙, 수원 호매실 등 신규 택지개발지구에서 “GTX가 오면 교통 문제가 해소될 것”이라는 전제를 믿고 청약한 실수요자들이 착공 지연에 실망하며 계약을 포기하거나 전매를 시도하는 사례가 속출한 것이다. 이는 미분양 물량 증가로 이어지면서 수도권 전체 공급 과잉에 대한 우려로까지 확산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정부 정책의 일관성 부족이 지금과 같은 사태를 불러왔다고 입을 모은다. GTX는 사실상 국책사업임에도 불구하고 노선마다 민자 유치, 설계 변경, 승인 지연 등 다양한 이슈로 착공 시기가 제각각이란 지적이다. 한 부동산업계 관계자는 “분양 시장에서 ‘GTX 개통 예정’이라는 말 한마디가 주요 마케팅 포인트로 활용되는 동안, 실현 가능성에 대한 정밀 검토는 전혀 이뤄지지 않았다”며 “이처럼 수요자들의 기대만 부풀리는 구조가 반복되면서 시장은 정보의 비대칭성과 정책의 불확실성이라는 이중 리스크에 노출됐다”고 꼬집었다. 그러면서 “지금 필요한 것은 GTX에 대한 장밋빛 미래가 아니라, 현실적인 일정 공유를 통한 시장과의 신뢰 회복”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