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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선도 국가” 외치며 GPU 쌓는 정부, “인재 없는 정책은 화려한 껍데기” 비판 직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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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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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드웨어 확보에 집중된 정부 정책
국내 AI 기술력 미국 대비 47% 수준
‘뒷북 투자’ 반복, ‘속 빈 강정’ 재현 우려

정부가 국내 인공지능(AI) 인프라 확대에 추가경정예산(추경) 약 1조5,000억원을 투입한다. 글로벌 AI 경쟁이 갈수록 심화하는 가운데 우리나라의 AI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해 연내 그래픽처리장치(GPU) 1만 장을 확보한다는 청사진이다. 이를 두고 업계 안팎에선 인재 확보 등 추가 대책 없이 GPU 대량 확보만으로는 효과적인 산업 육성책이 될 수 없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주를 이룬다.

막대한 하드웨어 투자에도 인력 양성·활용 계획은 전무

22일 정치권에 따르면 18일 국무회의에서 의결한 1조8,000억원 규모 AI 분야 추경 정부안 가운데 80%가량이 GPU 확보 목적으로 편성됐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오는 11월 문을 여는 ‘국가 AI 컴퓨팅 센터’에 첨단 GPU 1만 장을 도입하는 데 약 1조4,600억원을 투입할 계획”이라면서 “GPU 모델은 향후 참여 기업이 최종적으로 결정하겠지만, 추경 예산안은 엔비디아의 H200과 블랙웰 제품 기준으로 편성했다”고 설명했다.

국가 AI 컴퓨팅 센터가 11월 정식 서비스를 시작하기 전 클라우드 업체 등 민간 기업들이 보유한 GPU 2,600장을 AI 모델·서비스 개발사들이 빌려 쓰는 예산으로는 1,723억원이 편성됐다. 특히 이 가운데 2,000장은 우리나라를 대표할 AI 모델·서비스 개발사를 선정하는 ‘월드 베스트 거대언어모델(WBL)’ 프로젝트에 선정되는 5개 기업이 활용하게 된다.

WBL 투입 예산은 1,936억원으로 최대 3년간 GPU, 데이터, 인재 등 필요한 자원을 집중적으로 지원한다. 프로젝트에 선정된 개발사들은 국가 AI 컴퓨팅 센터가 구축한 GPU 자원 활용에서도 우선권을 갖는다. WBL 기업 선발은 다음 달 공모를 시작해 8월께 윤곽이 드러날 전망이다.

정부는 이와 함께 GPU 구매분 일부를 국내 AI 반도체 스타트업이 개발한 신경망처리장치(NPU)로 활용하는 것 또한 검토하기로 했다. 이를 위해 올해 본 예산에서 298억원에 NPU 등 국산 AI 반도체 조기 상용화를 위한 실증 사업 규모를 752억원으로 확대했다. 과기부는 “이번 추경을 통해 높은 잠재력을 가진 국내 AI 반도체 기업이 최적 시간 안에 NPU 제품을 상용화할 수 있도록 설계 소프트웨어 개발, 제품 제작, 검증 등을 직접 지원하고 유망 스타트업의 사업화를 적시에 지원하겠다”고 강조했다.

실전형 인재 없인 하드웨어도 무용

업계에서는 이 같은 청사진이 AI 반도체 자체 개발이나 중장기적 자립 전략이 아닌, 단기 수입 중심의 GPU 조달에 그쳤다는 점에서 회의적인 시각이 팽배하다. 인프라만 갖추면 기술력이 자연스럽게 따라올 것이라는 발상 자체가 현실을 너무 낙관적으로 본 것이라는 평가다. GPU 1만 장이 아무리 고성능이라 해도, 이를 효율적으로 운용할 실전형 인재가 없다면 ‘전시용’에 그칠 것이란 게 현장의 목소리다.

실제로 국내 AI 기술력은 미국 대비 약 47% 수준에 머물고 있으며, 핵심 기술 개발이나 고도화된 모델 구현 역량은 아직도 해외에 크게 의존하고 있다. 알고리즘 최적화, 자체 모델 설계, 대규모 데이터셋 활용 등 AI 연구의 핵심 역량을 갖춘 인력은 매우 드물고, 그나마 있는 고급 인재들도 대부분 해외로 빠져나가거나 민간 대기업에 편중돼 있다. GPU를 쌓아도 이를 전방위로 활용할 수 있는 연구 조직이나 스타트업의 기반은 빈약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문제는 학계와 산업계 모두 실전형 AI 교육에 소극적이라는 점이다. 단순한 프로그래밍 교육이나 딥러닝 입문 수준에 그치는 과정이 대부분인 탓에 대규모 연산 자원을 직접 다뤄보며 문제를 해결하는 훈련은 찾아보기 힘든 실정이다. 이런 상황에서 고성능 GPU 공급을 위한 대규모 투자는 낭비로 전락할 공산이 크다.

정치권에서 이번 추경 예산안을 둘러싼 공방이 뜨거운 것도 이 때문이다. 이해민 조국혁신당 의원은 “국내에선 광주에 있는 국가AI데이터센터가 그나마 GPU를 많이 가지고 있는 편인데, 여기 가동률이 50% 정도”라며 “하드웨어만 갖다 놓은 채 운용을 못하면, 해를 거듭할 때마다 옛날 장비를 확보하는 것밖에 되지 않는다”고 꼬집었다. 이 의원은 구글에서 시니어 프로덕트 매니저를 역임한 IT 전문가 출신이다. 그는 “공장에 사람 없이 장비만 사다 놓고 끝나는 비효율을 반복하지 않으려면 인재 확보가 선행돼야 한다”며 “결국엔 사람이 가장 중요하다”고 거듭 강조했다.

거듭된 경고에도 단기 성과에 급급한 정부

이 같은 인재 부족 문제는 비단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이미 수년 전부터 학계와 언론 “장비보다 사람”이라는 경고를 반복해 왔다. 여러 연구 기관이 앞다퉈 AI 인재 육성의 시급성을 강조하는 보고서를 쏟아냈고, 그때마다 정부는 관련 예산을 확대하는 식으로 대응했다. 하지만 실질적인 변화는 찾아볼 수 없는 실정이다. 보여주기식 정책이 반복되면서 문제의 본질이 방치된 탓이다.

이는 각종 지표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영국의 데이터분석업체 토터스인텔리전스 조사에서 한국의 AI 수준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7위에 달했지만, 인재 순위와 작동 환경은 각각 28위, 32위에 그쳤다. 또 캐나다 AI 스타트업 엘리먼트AI의 2020년 조사에서는 우리나라 AI 전문 인재가 2,551명으로 집계되며 세계 22위에 그쳤다. 1위인 미국(18만8,300명)과 비교하면 70분의 1에 가까운 수준이다.

이를 두고 전문가들은 정책의 일관성 없이 단발성 투자만 반복해 온 구조적 한계가 드러난 사례라고 입을 모았다. 박동 한국직업능력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정부가 GPU 인프라 구축, 데이터센터 건립, AI 연구소 개소 등 겉으로 보기에 성과가 드러나는 분야에 집중하다 보니 인재 양성처럼 시간이 오래 걸리고 성과가 즉각 드러나지 않는 분야는 뒷전으로 미뤄두고 있다”며 “고도로 숙련된 AI 전문가의 두뇌유출을 막을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게 무엇보다 시급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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