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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14개국에 고율 관세 서한 발송 韓·日 서한은 제일 먼저 공개하며 압박 "양국 관계 불균형, 무역적자 시정해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대규모 무역 적자를 이유로, 다음달 1일부터 모든 한국산 제품에 25%의 상호관세를 부과하겠다고 통보했다. 다만, 한국이 폐쇄된 시장을 개방하고 관세·비관세 장벽을 철폐할 경우, 관세율 조정이 가능하는 입장을 밝히며 향후 협상 가능성을 시사했다. 또 한국 기업이 미국 내에서 제품을 생산할 경우에는 이번 고율 관세의 적용 대상에서 제외하겠다는 방침도 밝혔다.
8월 1일부터 한국산 제품에 25% 관세 부과
7일 오후 12시20분(현지 시각) 트럼프 대통령은 소셜미디어 트루스소셜에 이재명 대통령에게 보낸 서한을 공개했다. 그는 “오랜 시간 지속돼 온 무역 적자에서 벗어나야 할 시점"이라며 "현재의 적자 구조는 한국의 관세·비관세 정책과 무역 장벽에서 비롯된 것으로 양국 관계는 상호적이지 못했다”고 주장했다. 이어 “8월 1일부터 한국산 제품에 25%의 관세를 부과할 예정이며, 이는 모든 품목별 관세와는 별개로 적용된다”며 “관세 회피를 목적으로 우회 수출되는 제품도 고율 관세의 대상이 된다”고 덧붙였다.
트럼프 대통령은 "관세율 25%는 한국과의 무역 적자를 해소하기에는 여전히 부족한 수치"라며 "미국은 감당할 수 없는 무역 적자에 시달리고 있으며 이로 인해 경제뿐 아니라 국가 안보도 위협받고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만약 한국 또는 한국 기업이 미국에서 제품을 생산할 경우 관세가 부과되지 않을 것”이라며 "그러나 한국이 보복 관세를 부과한다면, 우리는 그 인상분을 25%에 추가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러면서 “이러한 과정을 신속하고, 전문적이며, 일상적으로 처리할 수 있도록 모든 노력을 다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다만, 향후 협상 가능성을 열어뒀다. 트럼프 대통령은 “만약 한국이 폐쇄된 시장을 미국에 개방하고 관세 및 비관세 정책과 무역 장벽을 철폐한다면 우리는 관세 재조정을 고려할 수 있다"며 "관세는 양국 관계에 따라 상향 또는 하향 조정될 수 있으며 결코 미국에 실망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이날 트럼프 대통령은 이 대통령을 수신자로 한 서한을 올리기 직전 일본 이시바 시게루 총리를 수신자로 한 서한도 공개하면서 ‘일본에 25%의 상호관세를 부과하겠다’고 밝혔다. 이는 지난 4월 2일 발표한 24%보다 1%포인트 올라간 수치다.

아시아 국가들에 경각심 주려는 의도로 해석
트럼프 대통령이 7일 서한을 보낸 나라 중 한국과 일본을 특별히 지목해 SNS에 공개하자, 그 배경에도 관심이 쏠리고 있다. 캐럴라인 레빗 백악관 대변인은 이날 브리핑에서 ‘왜 한국과 일본부터 시작하기로 했느냐’는 질문에 “이는 트럼프 대통령이 선택한 사안으로 대통령의 고유 권한”이라고 밝혔다. 이어 그는 브리핑 도중 한·일 양국에 보낸 트럼프 대통령의 공식 서한을 직접 들고 나와 카메라에 들어 보이기도 했다. 이번 조치가 단순한 경고가 아닌 미국 대통령 명의의 공식 통보임을 분명히 하려는 의도로 풀이된다.
전문가들은 한국과 일본을 먼저 공개함으로써 국제 여론과 시장에 더 큰 충격을 주려 했다고 분석한다. 아시아 지역에서 중국을 제외한 경제 대국인 두 나라와의 협상 과정을 보여줌으로써, 다른 아시아 국가들에게 경각심을 주려는 의도가 깔려 있다는 평가다. 실제로 트럼트 대통령은 서한을 보낸 14개국 중 10개국(한국·일본·말레이시아·카자흐스탄·미얀마·라오스·인도네시아·방글라데시·캄보디아·태국)이 아시아권 국가다. 여기에 향후 협상 과정에서 한국과 일본을 경쟁시키는 효과도 고려했을 것으로 보인다.
한국과 일본이 트럼프 대통령이 중요하게 여기는 자동차 산업의 핵심 경쟁국이라는 점도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트럼프 대통령의 주요 지지 기반인 러스트 벨트의 백인 노동자들은 현대자동차, 도요타 등의 한·일 자동차 제조사의 약진으로 미국 자동차 산업이 쇠퇘했고 그 여파로 자신들이 피해를 봤다는 인식이 강하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대선에서 이런 심리를 파고들어 경합주에서 집중적인 캠페인을 펼쳤고, 당시 한국을 ‘머니 머신(money machine)’이라 부르며 수차례 이를 바로잡겠다고 예고한 바 있다.
EU·중국·인도 등 주요국, 보복 관세 등 검토
트럼프 대통령이 무역 합의에 이르지 못한 국가들을 상대로 관세 서한 발송을 본격화한 가운데, 관세율을 통보받거나 예정된 국가들의 반응도 엇갈리고 있다. 산업통상자원부는 "관세로 인한 불확실성을 조속히 해소하기 위해 남은 기간에 상호 호혜적인 협상 결과 도출에 박차를 가하겠다"며 "이번 조치가 8월 1일까지 관세 부과 유예가 연장된 것으로 보고, 미국과의 협상에 총력을 기울이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하야시 요시마사 일본 관방장관은 정례 브리핑을 통해 트럼프 대통령의 관세 서한에 대해 공식적으로 유감을 표명하며, 미국과의 무역협상에서 자국 이익을 적극적으로 지키겠다는 입장을 내놨다.
한국, 일본과 함께 관세 서한을 받은 12개국(말레이시아, 카자흐스탄, 남아프리카공화국, 미얀마, 라오스, 튀니지,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 인도네시아, 방글라데시, 세르비아, 캄보디아, 태국)도 각각 자국 산업 보호와 미국과의 협상 필요성을 강조했다. 관세율이 기존보다 1%포인트 오른 25%의 관세율을 통보받은 말레이시아는 일방적인 관세율 상향 조정에 유감을 표하면서 "미국과의 협상이 적시에 타결하기 위한 방안을 모색하겠다"고 밝혔다. 30%의 관세율을 적용받는 남아공은 트럼프 행정부의 일방적 조치에 비판적 입장을 내놓으면서 자국 산업 보호를 미국과의 무역 협상에서 최우선 과제로 삼겠다고 밝혔다.
여전히 협상을 진행 중인 유럽연합(EU)과 중국, 영국, 캐나다 등 주요국들은 강경 대응을 예고했다. EU는 미국이 예고한 50%의 고율 관세에 대응해 이미 철강·알루미늄 등 미국산 제품에 280억 달러 규모의 보복 관세를 예고했고 추가로 농산물·기계·가전 등 다양한 품목에 2차 보복 조치도 검토 중이다. 125%의 보복 관세와 희토류 수출 제한 등 이미 맞대응에 나선 중국은 '미국과의 협상은 가능하나 일방적 양보는 없다'는 입장을 고수하면서 주요국의 공동 대응을 촉구하고 있다. 이외에 영국, 캐나다, 멕시코, 브라질 인도 등도 미국의 관세에 맞서 자국 산업 보호 대책을 마련하고 협상 결과에 따라 보복 관세 등의 조치를 검토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