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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대미 직접 수출 43% 급감, 전체 수출은 4.8%↑ 베트남·아세안·인도 경유 재수출 늘어난 영향 미, 베트남 무역협상서 중국 겨냥, '환적'에 2배 관세

중국의 대미 수출이 폭락하는 가운데 동남아시아국가연합(아세안·ASEAN)과 유럽연합(EU)로의 수출이 크게 늘었으며, 특히 베트남과 인도네시아를 거쳐 가는 우회 수출 규모가 사상 최대를 기록했다. 대미 직접 수출을 줄이면서 제3국 경유 재수출과 유럽·신흥국 시장 공략 등 수출 경로를 다변화한 영향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관세 정책이 중국의 무역 패턴을 뿌리부터 바꿔놓고 있는 모양새다.
중국, ASEAN 무역블록으로 보내는 물량 15% 증가
6일(이하 현지시간)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는 미국 상무부와 중국 해관총서 데이터를 인용해 중국의 지난 5월 대미 수출액이 전년 동월보다 43%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고 보도했다. 상품 가치로 환산하면 150억 달러(약 20조4,900억원) 규모다. 하지만 같은 기간 중국의 전체 수출은 4.8% 늘었다.
이는 ASEAN 무역블록으로 보내는 물량이 15% 늘고 EU 수출이 12% 증가해서 미국 수출 감소분을 메웠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이와 관련해 캐피털 이코노믹스(Capital Economics)의 마크 윌리엄스(Mark Williams) 수석 아시아 경제학자는 "이번 데이터는 정말 놀라운 패턴을 보여준다"고 말했다.
실제 베트남과 인도네시아를 거쳐 가는 중국의 우회 수출은 최근 들어 크게 늘고 있다. 캐피털 이코노믹스의 조사를 보면 지난 5월 한 달 동안 베트남을 거쳐 간 중국 수출품은 34억 달러(약 4조6,400억원)로 전년 동월보다 30% 늘었다. 인도네시아를 통한 간접 무역도 8억 달러(약 1조원)로 전년 동기 대비 25% 늘었다. 중국 데이터에서도 인쇄 회로, 스마트폰 부품, 평판 디스플레이 모듈 등 전자부품의 베트남 수출이 전년 대비 54%, 26억 달러(약 3조5,000억원) 증가했다.

美 정부, 베트남 환적 40% 관세 적용
이에 트럼프 행정부는 베트남과의 무역협상에서 중국산 환적(換積·trans-shipment)품에 고율 관세를 도입하며 우회 수출 차단에 나섰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2일 소셜미디어(SNS) 트루스소셜을 통해 베트남과 무역 협상을 체결했다고 발표했다. 상호 관세는 기존 46%에서 20%로 대폭 낮추고, 환적품엔 40%를 과세하기로 했다. 중국의 ‘원산지 세탁’ 관행을 원천 차단하겠다는 의도다. 미국은 중국이 관세 회피를 위해 베트남 등 동남아시아 국가를 경유해 수출하고 있다며 지속적으로 문제를 제기해 왔다.
구체적 합의 내용은 공개되지 않았지만 협상 초안을 입수한 미 정치전문매체 폴리티코는 "향후 몇 주 내 확정돼 베트남의 대미 수출품에 대한 관세의 상당한 인하를 가져올 최종 합의를 위해 계속 작업할 예정"이라고 보도했다. 초안엔 관세 인하는 베트남 신발, 농산품, 장난감 등 다양한 제품에 적용된다는 내용이 담겼지만 최종 관세 수준에 대한 언급은 없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어 폴리티코는 베트남이 중국 제품 환적을 줄이기 위한 '유리한 원산지 규정'을 수립하고 지적재산권(IP) 등 관련 비관세 장벽 또한 해소할 예정이라고 짚었다. 또 미국에 가금류, 돼지고기, 쇠고기, 농산물, 불특정 공산품에 대한 우선적 시장 접근권을 제공하기로 했다고 전했다.
환적 조항 변수에 베트남 난처
미국이 베트남과의 무역 협상에서 ‘환적품 40% 관세’ 조항으로 중국의 우회 수출을 정면 겨냥하자 중국은 강하게 반발하고 나섰다. 3일 중국 상무부는 오후 정례브리핑에서 “(미국의) 상호관세는 전형적이고 일방적인 괴롭힘 행위”라며 “관세 인하를 명분 삼아 중국의 이익을 희생시키는 합의에 강하게 반대한다”고 밝혔다. 이어 “중국은 정당한 권익을 지키기 위해 단호히 대응하겠다”고 경고했다. 중국 외교부도 가세했다. 마오닝(毛寧) 외교부 대변인은 “모든 당사자는 대등한 입장에서 대화와 협의를 통해 무역 차이를 해결해야 한다”면서 “협상이 제3자 이익을 겨냥하거나 피해를 줘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중국과 밀접한 경제적 연관성을 맺고 있는 베트남도 환적 상품에 대한 40% 관세 부과 조항은 큰 부담이다. 2018년 트럼프 행정부 1기 당시 중국은 미·중 무역전쟁이 발발하자 관세 부과를 피하려고 국경을 맞대고 있는 베트남에 투자해 왔다. 상당수 가전제품의 경우 중국 자본으로 운영되는 베트남 공장에서 중국산 시스템과 부품을 수입해 미국으로 수출됐다. 그러나 최근 ‘트럼프의 관세 책사’ 피터 나바로(Peter Navarro) 백악관 무역 고문을 포함한 트럼프 행정부 관계자들은 이를 환적으로 간주하겠다고 밝혔다.
환적 상품에 대한 정의가 내려지지 않은 것도 문제다. 호주 싱크탱크 로위 연구소의 롤랜드 라자(Roland Rajah) 수석경제학자는 “베트남 제품에 중국산 성분이 소량 포함되기만 해도 환적 조항이 적용된다면 훨씬 더 큰 문제가 된다”고 전망했다.
그간 중국은 자국에 해가 되는 미국과의 거래를 하지 말라고 각국 정부에 경고해 왔다. 허융첸 중국 상무부 대변인은 3일 성명을 통해 “모든 당사국이 평등한 협의를 통해 미국과의 무역 및 경제적 차이를 해결하려는 노력을 환영하지만, 중국의 이익을 희생하면서 합의를 이루려는 어떠한 시도에도 단호히 반대한다”며 “그러한 상황이 발생한다면 중국은 단호하게 대응 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게다가 중국은 미국의 관세를 피하고자 베트남이 아닌 다른 인접 국가를 택할 수도 있다. 국제 정치·경제 분석기관 이코노미스트 인텔리전스 유닛(EIU)의 쉬톈천(徐天辰) 수석경제학자는 “더 큰 구조적 문제는 중국이 세계 최대 생산국이고 미국이 세계 최대 소비국이라는 것”이라며 “베트남을 막으면 다른 국가들이 나타난다. 마치 두더지 잡기 게임과 같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인도네시아와 모로코를 잠재적인 대체 국가로 언급했다. 실제로 최근 중국 무역 통계에 따르면 베트남 이외에도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태국으로의 수출이 급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