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시아포럼] 중국의 말라카 해협 딜레마, 해법은 무력 아닌 아세안 협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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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원유와 물류의 핵심 통로인 말라카 해협 강압 전술이 불러온 보험료 상승·운송 지연·외국 해군 개입 아세안과의 제도적 협력만이 안정적 항로와 비용 절감 보장
본 기사는 The Economy 연구팀의 The Economy Research 기고를 번역한 기사입니다. 본 기고 시리즈는 글로벌 유수 연구 기관의 최근 연구 결과, 경제 분석, 정책 제안 등을 평범한 언어로 풀어내 일반 독자들에게 친근한 콘텐츠를 제공하는 데 목표를 두고 있습니다. 기고자의 해석과 논평이 추가된 만큼, 본 기사에 제시된 견해는 원문의 견해와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2023년 전 세계 해상 무역의 38%가 말라카 해협을 통과했다. 인도양과 태평양을 잇는 이 좁은 수로는 국제 물류의 핵심 관문이다. 2024년 말라카·싱가포르 해협을 지나간 선박은 9만4,301척으로 사상 최대를 기록했고, 중국은 원유 수입의 80%를 이 항로에 의존하고 있다. 최근 지정학적 갈등으로 운임이 급등하고 보험사들이 위험 할증을 부과하면서 해협의 전략적 중요성은 더 커졌다. 중국은 이 관문을 어떻게 관리할 것인지라는 과제에 직면해 있다.

권위보다 접근을 선택해야
중국의 선택은 단순히 강경 노선과 유화책 중 하나를 고르는 문제가 아니다. 위기 상황에서도 말라카·싱가포르·루손·대만 해협을 안정적으로 이용할 수 있느냐가 진짜 쟁점이다. 아세안 항구에서 접안·급유·환적이 예측 가능하게 이뤄지는지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무력 과시는 항로 안정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실질적 접근권을 보장할 제도와 협력 체계가 필요하다.
홍해 사태는 이를 잘 보여준다. 2024년 예멘 후티 반군의 공격으로 주요 선사들이 항로를 포기하고 우회로를 택하자, 컨테이너 운임은 두 배로 뛰었다. 해상로가 흔들릴 때 비용이 얼마나 빠르게 불어나는지 드러난 사례다. 중국이 항로 안정성을 확보하려면 실제로 이를 관리하는 아세안 국가들과의 협력이 불가피하다.
말라카 해협에 집중된 무역량
유엔무역개발회의(UNCTAD)에 따르면 2023년 전 세계 해상 무역량은 122억9,200만 톤이며, 이 중 38%가 말라카 해협을 거쳤다. 하루 평균 1,280만 톤이 통과한 셈이다. 말라카와 싱가포르는 아시아 무역의 핵심 연결 구간으로 자리 잡았다. 하지만 해협 일부는 인도네시아와 말레이시아 영해에 속하고, 교통 분리 제도도 싱가포르와 주변국이 공동 관리한다. 중국이 독자적으로 항로를 통제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협력은 이미 경제적 토대 위에 있다. 아세안은 최근 수년간 중국의 최대 교역 파트너였으며, 2025년 1분기 교역액은 2,340억 달러(약 314조원)에 이르렀다. 아세안으로 유입된 외국인 직접투자(FDI)는 2023년 2,300억 달러(약 309조원)로 사상 최대를 기록했고, 녹색 산업과 디지털 경제 프로젝트가 성장세를 이끌었다.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Regional Comprehensive Economic Partnership·RCEP)의 효과까지 더해지면서, 중국이 아세안과 협력을 강화해 안정적 항로 이용을 확보하려는 유인은 더 커지고 있다.

주: 해상 경로-말라카 해협, 수에즈 운하, 파나마 운하, 기타 경로, 동남아 지역, 메콩델타(X축), 물동량(Y축)
강압의 비용
남중국해에서 중국이 취해온 차단 항해, 물대포 사용, 근접 기동 같은 전술은 항로 안정성을 담보하지 못했다. 오히려 보험료 인상, 우회 항해, 환적 항구 혼잡 등 새로운 비용을 낳았다. 2024년 해상 충돌이 이어지면서 상하이컨테이너운임지수(Shanghai Containerized Freight Index·SCFI)는 2023년 말 대비 두 배 이상 상승했고, 아시아-유럽 항로는 희망봉 우회로 인해 최대 12일이 더 소요됐다. 위험 등급이 한 단계만 올라가도 보험료가 20% 이상 뛸 수 있다는 경고도 나왔다. 이런 비용은 수천 건의 항해에 누적돼 사실상의 보이지 않는 세금으로 작용한다.
현장 상황도 긴장을 고조시켰다. 2024~2025년 세컨드 토머스 암초(Second Thomas Shoal)와 스카버러 암초(Scarborough Shoal) 인근에서 중국 선박이 필리핀 보급선에 50m 이내까지 접근했고, 물대포 공격 장면은 국제적으로 확산됐다. 이 여파로 호주와 필리핀은 방위 협력을 강화했고, 역내 다자 훈련도 늘어났다.
또한 2016년 남중국해 중재재판은 중국의 광범위한 영유권 주장을 국제법적으로 인정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규제 강화와 무력시위가 이어진다면 결과는 분명하다. 역내 군사 협력은 확대되고, 외국 해군의 개입은 늘어나며, 연합 방어망은 더 강화될 수밖에 없다.
아세안의 다른 계산법
아세안은 단일한 목소리를 내지 않는다. 태국은 2024년 중국인 관광객 670만 명이 돌아오면서 관광 회복을 주도했고, 인도네시아는 니켈 가공 산업으로 글로벌 전기차 공급망의 핵심으로 부상했다. 베트남은 ‘차이나 플러스 원’ 전략 속에서 수출이 사상 최대를 기록하며 제조·물류 파트너로 자리 잡았다. 이런 사례들은 중국과의 단순한 교류를 넘어 해상로 안정의 간접적 안전판 역할을 한다.
그러나 중국의 압박이 거세지면 반작용도 따른다. 아세안은 과잉생산 규제를 강화하거나 외부 안보 협력을 확대하고, 연결 프로젝트를 늦추기도 한다. 분쟁이 격화되면 필리핀과 베트남은 국내 정치가 경직되고, 말레이시아와 인도네시아는 외교적 여지가 좁아진다. 결과적으로 방위 협정, 합동훈련, 선박 운항 보수화 같은 정책 고착으로 이어진다. 말라카처럼 연간 9만 척 이상이 오가는 병목 구간에서는 작은 충돌도 비용을 크게 키운다.

주: 연도(X축), 금액(Y축)/분기 기준 중국–아세안 교역 (진한 파랑), 연간 기준 아세안 외국인직접투자 유입(연한 파랑)
규칙으로 지키는 항로
말라카와 싱가포르 해협에는 이미 항로 안전을 관리하는 제도가 있다. 연안국과 이용국이 함께 운영하는 협력 메커니즘이 대표적이다. 아세안의 인도·태평양 전망(ASEAN Outlook on the Indo-Pacific·AOIP)도 법적 기준에 따른 협력을 지향한다. 중국이 협력 전략을 택한다면 이런 틀을 강화하는 것이 효과적이다. 항행 안전과 환경 프로젝트에 투명한 자금을 지원하고, 아시아 해적퇴치 협정(Regional Cooperation Agreement on Combating Piracy and Armed Robbery against Ships in Asia·ReCAAP)에 맞춘 정보 공유를 확대하며, 민감 해역에는 거리 규정과 제3자 검증을 도입하는 방식이다. 절차는 양보가 아니라 항로를 안정적으로 보장받기 위한 비용이다.
문제는 중국의 국내법이 역내에서 정반대로 해석된다는 점이다. 2021년 해경법과 2024년 시행령 3호는 ‘관할 수역’에서 강제력을 정당화할 수 있다는 우려를 낳았다. 만약 중국이 이 조항을 분쟁 해역에서는 적용하지 않거나 AOIP에 부합하는 절차를 명문화한다면, 협력은 선언이 아니라 행동으로 입증될 수 있다. 그 결과 보험료는 낮아지고, 운항은 안정되며, 역내 국가들이 외부 해군을 불러들일 유인도 줄어들 것이다.
반론에 대한 답
중국의 강압이 억지력을 만든다는 주장은 현실에서 설득력을 잃었다. 근접 항해와 물리적 압박은 필리핀과 호주의 협력 강화, 다자 훈련 확대, 외국 해군의 개입으로 이어졌다. 이는 억지가 아니라 군사 협력의 가속화였다.
협력은 불안정하고 힘만이 보장한다는 시각도 한계를 드러낸다. 해협은 정복 대상이 아니라 관리 대상이다. 인도네시아·말레이시아·싱가포르는 각기 다른 제도와 법체계를 갖고 있으며, 무력으로 이를 바꿀 수는 없다. 절차와 투명한 지원만이 중국을 신뢰할 수 있는 공동 관리자로 만들 수 있다.
협력이 약함으로 보일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그러나 이는 관리 방식의 문제다. 완화 조치를 명확한 기준과 지표에 연동하면 된다. 사고율이 낮아지고 보험료가 줄며 운항 속도가 빨라지면 절감된 비용은 곧 전략적 여유로 이어진다. 반대로 제도가 위반되면 금융·비자·인프라 프로젝트를 중단하는 방식으로 대응할 수 있다. 이는 양보가 아니라 관리 가능한 선택이다.
강압의 비용, 협력의 선택
말라카 해협을 비롯한 주요 항로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예측 가능성이다. 중국의 원유와 화물뿐 아니라 외교적 신뢰와 평판도 이 길에 실린다. 그러나 강압은 성과 없이 비용만 키웠다. 협력이야말로 안정적이고 경제적이며 안전한 항로를 보장한다.
중국이 연안국과 아세안의 협조를 얻지 못한다면, 항로는 통과할 때마다 정치적·전략적·재정적 부담을 안기게 될 것이다. 힘에 의존한 제국식 접근은 한계에 부딪히고, 네트워크를 바탕으로 한 협력만이 앞으로 나아갈 길이다. 정치적·전략적·재정적 비용이 커질 수밖에 없다. 힘에 의존한 방식은 한계에 부딪히고, 네트워크 방식만이 앞으로 나아간다.
본 연구 기사의 원문은 Exit the Empire, Enter the Network: Why Friendship—not Force—Secures China's Lifelines through Malacca and the Pacific | The Economy를 참고해 주시기 바랍니다. 2차 저작물의 저작권은 The Economy Research를 운영 중인 The Gordon Institute of Artificial Intelligence에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