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FCC, 중국 해저케이블 ‘사실상 퇴출’ 통보, 韓 전선업계 ‘반사익’ 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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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해저케이블 견제 나선 美, 데이터 수요 늘며 해저케이블도 ‘안보자산’ 중국산 전선 퇴출 본격화로 공급망 재편 속도

미국 정부가 중국산 해저 데이터 케이블을 안보상 이유로 사실상 퇴출했다. 중국 기업의 해저케이블 기술이 글로벌 네트워크 취약점을 악용할 수 있다는 우려에서다. 국내 전선업계는 이 같은 대중 제재 기조가 전력망 케이블로도 확장될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반사이익을 기대하는 분위기다.
미 행정부 “적국으로부터 해저케이블 보호”
25일 닛케이아시아는 미국이 20년 만에 처음으로 해저케이블에 대한 규정을 대폭 개정한 데는 미국 통신망 보안을 강화하고, 해저케이블의 전략적 중요성을 확보하려는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의 강경한 의지가 반영됐다고 보도했다. 앞서 지난 7일(현지시간) 미국 연방통신위원회(FCC)는 “중국과 같은 전략적 경쟁국의 해저케이블 사업 참여를 원칙적으로 차단하는 규제를 채택했다”고 밝혔다. FCC는 이어 “중국 등 전략적 경쟁국들의 사이버·물리 보안 위협을 이유로 해저케이블을 수리·유지할 때 미국산 선박이나 신뢰받는 해외 기술의 사용을 장려한다”고 덧붙였다.
새로운 규정은 중국, 러시아, 이란과 같은 외국 적대국에 기반을 둔 기업이 미국 소유의 해저케이블과 관련된 사업에 관여할 수 있는 자격을 박탈한다. 미국은 이로써 자재 및 전송 장비를 포함한 전체 해저케이블 공급망의 보안을 보장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반면 한국, 유럽 등 동맹국 및 파트너 기업에 대한 승인 절차는 간소화될 예정이다. 이는 비용이 많이 드는 이 부문에 대한 공공 및 민간 투자를 장려하고, 중국 기업이 배제된 시장에서 동맹국 기업들에게 새로운 기회를 제공하려는 의도다.
미국은 이미 해저케이블 보안의 중요성을 역사적으로 인식해 왔다. 해저케이블은 현재 국제 데이터 통신의 95% 이상을 전달하며, 하루에 10조 달러(약 1경3,800조원) 규모의 금융 거래를 촉진한다. 현재 전 세계 해저케이블의 약 90%는 한국 LS전선, 미국 서브콤(SubCom), 프랑스 알카텔 서브마린 네트워크(Alcatel Submarine Networks)가 제조한다. 하지만 최근 중국의 HMN 테크놀로지스(HMN Technologies)가 아프리카와 태평양 섬에서 입지를 확보하며 시장 점유율을 늘리고 있다.
중국 소행 의심 '해저케이블 절단' 공격 다수
미 하원 국토안보위원회(CHS)에 따르면 이번 규제는 마이크로소프트(MS)가 중국에 기반을 둔 엔지니어들에게 미 국방부 컴퓨터 시스템 유지 관리를 맡기고 있으며, 미 정부 인력이 이에 대해 제한적인 감독만 하고 있다는 지적에 따른 후속 조치다. 앞서 미 비영리 매체 프로퍼블리카(ProPublica)는 해당 구조가 중국발 사이버 위협에 민감한 국가안보 데이터를 노출시킬 수 있다고 경고한 바 있다.
최근 잇따른 해저케이블 사고도 글로벌 해저망 보안에 대한 경각심을 높이고 있다.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올해 1월 중국 소유의 순신-39호는 대만 신베이시 예류 인근의 곶에서 케이블 코어 4개를 손상시킨 것으로 알려졌다. 해당 선박은 카메룬과 탄자니아에 등록된 화물선으로, 전원 중국인 선원으로 구성돼 있다.
대만 당국은 중국을 사건의 주요 용의자로 보고 있다. 해당 선박은 본래 중국 국기를 달고 있었으나, 지난해에 등록이 변경된 것으로 파악됐다. 게다가 순신-39호는 두 개의 등록번호로 운항하며 두 세트의 자동식별시스템(Automatic Identification System, AIS)은 장비를 탑재하고 있었지만, 문제의 활동 직전에 해당 장비가 꺼졌다.
중국 소행으로 의심되는 손상은 이뿐만이 아니다. 유럽연합(EU) 당국은 지난해 11월 중국 국적의 선박 이펑 3호(Yi Peng 3)가 발트해에서 리투아니아와 스웨덴, 독일과 핀란드를 연결하는 두 개의 교차 해저케이블을 손상시킨 것으로 의심하고 있다. 2023년 10월에는 홍콩 선적의 뉴뉴폴라베어(Newnew Polar Bear)가 에스토니아와 핀란드 사이의 가스 파이프라인을 닻으로 손상시킨 바도 있다. 약 1년 후 핀란드의 조사를 통해 중국은 자국의 컨테이너선이 해당 사건에 대한 책임이 있음을 인정했다.

K-전선, 저가 경쟁 리스크 사라져
이런 가운데 국내 전선업계에서는 미국 정부의 이번 조치는 ‘통신용 해저케이블’을 대상으로 하지만, 앞으로 초고압직류송전(HVDC)용 해저케이블 등 전력망 케이블로 확대될 수 있다는 점에서 국내 업체들의 수혜를 기대하는 목소리가 크다. 실제 두 케이블 모두 국가 핵심 인프라로 군사·경제·에너지 안보에 직결되는 만큼 동일한 규제 논리가 적용될 수 있다.
HVDC 전력용 해저케이블은 해상풍력 단지에서 육상으로 전력을 이송하는 핵심 설비로, 통신용 케이블보다 기술·설치 난도가 높고 가격도 수배 이상 비싼 고부가 제품이다. 글로벌 HVDC 해저 및 지중 케이블 시장은 프리스미안(이탈리아), 넥상스(프랑스), NKT(덴마크), LS전선 등 빅4가 85% 이상을 점유하고 있다. 일본과 중국 업체도 일부 생산 역량을 갖추긴 했지만 대부분 내수 중심이다.
한 업계 관계자는 “현재 한국 기업이 미국 시장에서 중국과 경쟁하는 구조는 아니어서 가까운 미래에 수혜를 보긴 어렵다”면서도 “이 조치로 인해 값싼 중국산이 미국 내로 흘러가는 것은 차단하는 효과가 있다. 장기적으로 이익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미국은 2030년까지 전력망 투자에 총 1조 달러(약 1,400조원) 이상을 투입할 계획인데, 강력한 경쟁 상대가 줄어들 수 있다는 의미다.
국내 기업 중에서는 LS전선과 대한전선이 국내외에서 HVDC 해저케이블 시장을 두고 경쟁하고 있다. LS전선 자회사 LS그린링크는 지난 4월 미국 버지니아주 체서피크시에 약 6억8,100만 달러(약 1조원)를 투자하는 해저케이블 제조 공장 착공식을 열었다. 이 공장은 2027년 3분기 완공, 2028년 1분기 양산을 목표로 하고 있다. 미국에 생산법인이 없는 대한전선도 향후 해저케이블 공장 설립에 나설 가능성이 점쳐진다. 업계는 미국 현지화를 통해 정책 리스크를 줄이는 동시에 유럽까지 공급망을 확장하는 ‘투트랙 전략’을 실현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