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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비와 부패” 공화-민주 싸잡아 비판 상하원 의석 확보, 캐스팅보트 노려 美 언론 “양당제 벽 허물 순 없을 것”

한때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최측근으로 불렸던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가 신당 창당을 선언했다. 그는 의회에서 트럼프가 주도한 감세 법안이 통과되면 ‘제3당’을 만들어 공화당과 민주당이 양분하고 있는 미 정치에 변화를 가져오겠다고 해 왔다. 다만 미 정치사에서 제3당이 성공한 역사를 사실상 찾아보기 어렵다는 점에서 그의 의도대로 될 가능성이 크지는 않다는 전망이 나온다.
트럼프 감세법안 통과에 등 돌려
5일(이하 현지시간) 머스크 CEO는 자신의 소셜미디어(SNS) X(옛 트위터)를 통해 “2대 1의 비율로, 여러분은 새로운 정당을 원했고, 여러분은 그것을 갖게 될 것”이라며 “오늘, 여러분의 자유를 되찾아주기 위해 아메리카당(America Party)을 창당한다”고 했다. 이어 “국가가 낭비와 부패로 파산할 수 있는 문제에서 우리는 민주주의가 아닌 단일 정당 체제 속에 살고 있다”는 설명도 덧붙였다.
또 머스크는 미국 독립기념일이었던 지난 4일 “독립기념일은 양당 체제로부터 독립을 원하는지 물어볼 완벽한 순간”이라며 창당에 대한 찬반을 묻는 온라인 투표 창구를 올렸다. ‘2대 1의 비율’은 찬성과 반대 비율이 2대 1이었다는 점을 의미하는 것으로 해석된다. 실제 투표는 총 124만여 명이 했고 65.4%가 찬성을 누른 것으로 나타났다.
머스크는 트럼프의 감세 법안인 ‘크고 아름다운 법안(One Big Beautiful Bill Act·OBBBA)’을 비판해 왔다. 그는 “(법안은) 미국에서 수백만 개의 일자리를 파괴하고 막대한 전략적 피해를 줄 것”이라며“완전히 말도 안 되고 파괴적이다. 과거 산업에는 혜택을 주는 반면 미래 산업에는 심각한 피해를 준다”고 했다. 이에 트럼프가 “그는 완전히 미쳤다”면서 공개적으로 머스크와 충돌했고, 이후 머스크는 공개적으로 사과하며 화해 분위기가 조성됐지만 법안이 통과되자 결국 창당을 선언한 것이다.
머스크는 자신의 전략도 일부 밝혔다. 현재 양당이 근소한 차이의 의석수를 유지하고 있으므로 소수 의석을 차지해 캐스팅보트를 거머쥐겠다는 것이다. 현재 상원은 공화당(53석)이 민주당(47석·무소속 포함)을 앞서고 있다. 하원에서도 공화당은 220석으로 민주당(212석·3석은 공석)과 크게 차이 나지는 않는다. 머스크는 “상원 의석 2∼3석과 하원 선거구 8∼10곳에 집중하는 것이 한 방법”이라며 “논쟁적인 법안에 결정적인 표가 되기에 충분하다”고 했다. 머스크는 이날 별도 게시물에서 내년 중간 선거에서 후보를 내겠다고 역설하기도 했다.
'反트럼프' 선봉으로 테슬라 반감 잠재우나
전문가들은 현재로선 머스크의 신당 창당 선언이 '캐스팅보트 세력' 형성으로 연결될지, '찻잔 속의 태풍'에 그칠지 속단하긴 어렵다고 입을 모은다. 특히 머스크는 1월부터 5월까지 정부효율부(DOGE)의 실질적 수장으로서 무자비한 정부 구조조정과 인원 감축을 이끌 당시, 진보 진영으로부터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것에 버금가는 반감을 산 바 있어 그가 반트럼프 유권자들의 마음을 살 수 있을지 불투명해 보이는 측면도 있다.
그럼에도 그는 작년 대선 때 트럼프 대통령을 돕는 과정에서 자신이 가진 재력과 X를 통한 영향력을 경합주에서 '표'로 바꾸는 능력을 보여준 바 있다. 이는 결코 무시할 수 없는 변수다. 실제 일부 진보 미디어는 머스크의 신당 창당을 “반민주주의적 포퓰리즘에 대한 내부 저항”으로 묘사하며, 일정 부분 긍정적 톤으로 접근하기 시작했다.
이는 다분히 전략적 접근으로 해석되지만, 테슬라와 스페이스X의 지속가능성을 둘러싼 비판이 일시적으로 완화될 여지를 제공한다는 게 정계 중평이다. 더욱이 기후위기 대응이나 친환경차 보급과 같은 정책 아젠다에서 민주당과 머스크의 이해관계가 일정 부분 일치하는 지점도 존재한다. 이 경우 좌파 진영 내 일부 파벌은 실용적 협업 가능성을 모색할 수도 있다.

美 언론 및 정치권 "제3정당 어려워"
다만 미 언론들은 미국 정치 지형상 제3당이 사실상 성공하기는 힘들다고 보고 있다. 5일 워싱턴포스트(WP)는 승자 독식 선거제, 까다로운 주 법률 등 양당제를 정착시킨 제도적 장벽을 들어 “머스크가 세계에서 가장 부자지만, 제3당을 의미 있는 운동으로 발전시키는 건 쉽지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미국은 건국 초기부터 양당제가 뿌리내린 나라다. 초대 대통령 조지 워싱턴은 정당정치를 경계했지만, 정치권은 연방당과 민주공화당으로 갈라졌다. 1800년 민주공화당 토머스 제퍼슨이 연방당의 현직 대통령 존 애덤스를 누르고 대권을 쥐면서 처음으로 정권교체가 이뤄졌다. 그 후 200년간 공화·민주 양당은 서로 견제하며 미국 정치를 주도해 왔다. 남북전쟁과 대공황, 베트남전쟁, 9·11테러 등 격동의 순간들을 거치며 양당은 정치노선을 수정하기도 했지만, 기본 틀은 유지했다.
그렇다고 제3당이 없었던 건 아니다. 1912년 시어도어 루스벨트는 전직 대통령이었지만, 공화당과 결별하고 진보당을 창당해 대선에 뛰어들었다. 결과는 득표율 27.4%로, 제3당 후보가 2위에 오른 유일한 사례다. 1968년 조지 월리스는 미국독립당 후보로 대선에 출마해 남부 백인의 표심을 업고 5개 주를 휩쓸었다. 1992년 대선에선 무소속으로 나온 텍사스 억만장자 로스 페로가 선풍을 일으켰다. 전국 득표율 18.9%. 민주당 빌 클린턴 후보의 당선에 결정적 영향을 미쳤다. 그러나 거기까지였다. 그 누구도 대통령이 되지 못했고, 정당도 명멸했다.
제3당의 실패 원인은 다수대표제(소선거구 단순다수제)라는 정치제도에 있다. 패자는 존재감조차 없다. 공화·민주 양당은 각 주의 선거법을 자신들에 유리하도록 만들었다. 후보등록 요건, 정당 인증 기준, 방송토론 참여 기준도 양당 중심으로 설계돼 있다. 이런 상황에 머스크가 택한 전략은 '소수 정밀타격'이다. 상원 2∼3석, 하원 8∼10곳에 선별적으로 후보를 내겠다는 구상이다. 하지만 조직이 없다. 선거는 지역조직이 핵심이며, 각 주의 선거법은 신당과 무소속 후보에게 불리하다. 유권자들에게 '제3의 선택'을 제공해 양당 독점을 깨겠다며 무소속으로 대선에 출마했던 페로가 실패를 맛본 것도 이 때문이었다. 그는 여세를 몰아 1995년 개혁당(Reform Party)을 창당했지만, 제3당으로 안착시키는 데 결국 실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