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수정
머스크 CEO “감세안은 미친 짓, 찬성 의원 낙선시킬 것” 감세안 美 상원 ‘51대 50’ 통과, 하원서 2일 표결 예정 우려 쏟아지는 트럼프 감세법안 “美 부채폭탄 불 지핀다”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중점 추진하는 법안을 수위 높게 비난하는가 하면, 관여한 의원들에게는 협박성 발언도 서슴지 않고 있다. 그간 감세법안에 대해 강한 반대 입장을 표명해 온 머스크가 나름의 초강수를 던진 셈이다. 머스크가 비난하는 법안은 트럼프 대통령의 핵심 정책을 포괄적으로 담은 법안으로, 머스크는 이 법안이 정부 비용을 절감하고 재정을 효율화한다는 기조에 어긋난다며 강력히 반대해 왔고 이는 트럼프와의 갈등과 결별의 계기가 됐다.
머스크, 감세안 주도 공화당 의원들 낙선운동 시사
지난달 30일(이하 현지시간) 머스크는 자신이 운영하는 소셜미디어 X(옛 트위터)에 다수의 게시글을 올리며 트럼프 대통령의 대규모 감세안을 거듭 저격했다. 그는 “감세안에 찬성한 모든 의원들은 수치심을 느껴야 한다”며 “그들은 다음 예비선거에서 낙선할 것이다. 내가 이 세상에서 마지막으로 하는 일이 될지라도 (그렇게 만들 것)”이라고 밝혔다. 머스크 CEO는 또 ‘거짓말쟁이’라는 제목과 피노키오가 앉아 있는 모습이 담긴 영화 포스터를 게재하며 찬성표를 던진 의원들이 내년 예비선거를 치를 때 “이 포스터에 자신의 얼굴이 나오게 될 것”이라고 예고했다.
머스크 CEO는 몇 시간 뒤 또 다른 게시물에서 “미친 법안이 통과되면 다음 날 ‘아메리카 당(America Party)’이 창당될 것”이라며 “우리나라는 국민들이 진정한 목소리를 낼 수 있도록 민주-공화 양당의 대안이 필요하다”고 제3당 창당 가능성을 시사했다. 앞서 머스크는 지난달 초 X에 "중도 80%를 대변할 정당을 만들어야 할 때가 아닐까"라는 글을 게시하며 당명까지 거론한 바 있는데, 구체적인 창당 시점을 언급한 것은 처음이다.
이어 그는 X에서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새로운 정당이 필요하다’는 응답이 80%를 차지했다면서 “80%의 중도층을 대표하는 정당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우리는 사실상 돼지 정당(Porky Pig Party)이라는 하나의 정당 국가에 살고 있다”며 민주-공화 양당 체제를 조롱했다. 머스크 CEO는 “이 법안은 낡은 산업에 보조금을 주면서 미래 산업을 심각하게 훼손한다”며 “수백만 개의 일자리를 파괴하고 나라에 막대한 전략적 피해를 줄 것”이라고 거듭 비판했다. 특히 그는 풍력·태양광 프로젝트에 대한 과세 강화 조항을 문제 삼으며 “아직 착공되지 않은 모든 신재생에너지 프로젝트에 고율 과세를 부과한다”고 지적했다. 이는 테슬라 등 그의 전기자동차 사업과도 직접적으로 관련되는 이해관계기도 하다.
미 언론들은 “머스크 CEO는 지난해 미 대선에서 트럼프 대통령을 지원하는 데 2억5,000만 달러(약 3,398억원) 이상을 투입했으며, 자신의 정치행동위원회(PAC)를 통해 전국 각지 예비선거에 대규모 자금을 투입할 수 있는 재정력을 보유하고 있다”며 “그의 위협이 현실화하면 공화당 내부에 상당한 파장이 예상된다”고 내다봤다.

美 상원 통과, 부통령 찬성표로 ‘51대 50’ 가결
머스크가 공개적으로 저격한 규모 감세안은 1일 미 의회 상원을 통과한 상태다. 로이터통신 등 외신에 따르면 상원은 이날 본회의에서 이른바 '하나의 크고 아름다운 법안(One Big Beautiful Bill Act)'을 찬성 51표, 반대 50표로 가결했다. 표결에서는 공화당에서 3명의 이탈표가 나오며 찬반이 50대 50으로 팽팽히 맞섰지만, 상원의장을 겸직하는 J.D. 밴스 부통령이 캐스팅보트를 행사해 가까스로 통과됐다. 상원 전체 의석 100석 중 공화당은 53석을 보유했지만 톰 틸리스 의원(노스캐롤라이나), 랜드 폴 의원(켄터키), 수전 콜린스 의원(메인)이 예고한 대로 반대표를 던졌다. 민주당과 무소속 의원 47명은 모두 반대했다.
이번 법안은 트럼프 대통령이 집권 1기 시절인 2017년 도입했던 개인소득세율 인하, 법인세 최고세율 인하, 표준소득공제 및 자녀세액 공제 확대 등 주요 감세 조치 연장을 골자로 한다. 이외에도 팁 및 초과근무수당 면세, 신생아 대상 1,000달러(약 136만원) 예금계좌 제공 등이 내용이 들어 있다. 재정 지출 측면에선 불법이민 차단을 위한 국경보안 예산 확대가 담겼다. 전임 조 바이든 행정부 시절 도입된 청정에너지 세액공제와 전기차 구매 세액공제는 폐지 또는 종료된다. 또한 연방정부 부채 한도를 5조 달러(약 6,793조원) 증액해 8월 디폴트(채무불이행)를 피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도 포함됐다.
법안은 지난달 하원을 1표 차이로 가까스로 통과한 뒤, 상원으로 넘어와 우여곡절 끝에 처리됐다. 지난달 28일 절차 개시 표결 이후 민주당이 940쪽에 달하는 법안 전문 낭독을 요구하며 장시간 축조심사에 나섰고, 이어진 '보트-어-라마(vote-a-rama)' 절차에서는 총 45건의 수정안 표결이 이어지며 27시간에 걸친 마라톤 심의가 진행됐다. 당시 공화당 지도부는 내부 이탈을 막기 위해 집중적인 설득 작업을 벌였고, 트럼프 대통령도 법안 저지에 나선 의원들을 향해 낙선을 거론하는 등 강도 높은 압박에 나서며 전방위적으로 개입했다. 이후 법안은 상원에서 일부 조항이 수정된 상태로 다시 하원으로 넘어갔으며, 2일 하원 본회의에서 최종 표결이 예정돼 있다. 공화당 지도부는는 미국 독립기념일인 다음 달 4일까지 상원에서 통과시킨 뒤 트럼프 대통령의 서명까지 마쳐 입법을 완료한다는 계획이다.
트럼프 감세안, 美 경제 뇌관 될 수도
다만 하원 통과를 장담하긴 어렵다는 게 중평이다. 법안이 통과하면 미국 경제에 이미 부담을 주고 있는 정부 재정 적자가 크게 악화할 것이라는 우려가 쏟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미 의회예산국(CBO)은 지난달 28일 감세법안이 10년 동안 미국 정부 부채에 3조3,000억 달러(약 4,484조원)를 추가할 것이란 분석을 내놨다. CBO는 지난달 초 공개한 보고서에서 감세안이 향후 10년간 연방정부 재정적자를 2조4,000억 달러(약 3,260조원) 이상 증가시킬 것으로 추산했는데, 상원 수정안은 하원 통과안에 비해 재정적자를 약 9,000억 달러(약 1,223조원) 더 늘리는 구조여서 수정한 것이다. 현재 미국 국가 부채 규모는 36조2,000억 달러(약 4경9,000조원)로, 이번 법안이 통과되면 이미 심각한 재정이 더욱 악화될 공산이 크다. 뉴욕타임스(NYT)는 이 수치에는 추가 차입 비용이 포함되지 않아 전채 부채 증가 규모는 4조 달러(약 5,435조원)에 가까울 수 있다고 추산했다.
이에 시장에서는 미국의 재정 적자 수준이 임계점을 넘어서고 있으며, 그간 재정 여력을 떠받쳐온 미 국채의 신뢰도가 추가로 흔들릴 수 있다는 위기감도 커지고 있다. 투자은행(IB) 라자드의 피터 오재그(Peter Orszag) CEO는 "그동안 미 국채는 전 세계 투자자들에게 가장 신뢰받는 자산이었기 때문에, 미국의 적자 문제를 걱정하는 목소리를 굳이 귀담아들을 필요가 없었다. 이에 연방 부채한도 논쟁이 가끔 벌어져도 시장은 무덤덤하게 반응했다"며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올해는 국가가 부담해야 할 이자 비용이 국방비, 메디케이드(저소득층 의료보험) 및 메디케어(노인 건강보험)보다 더 커질 전망이다. 즉 이자 갚는 데만 주요 필수 예산보다 더 많은 돈을 써야 하는 것"이라고 우려했다.
이어 오재그 CEO는 외국 투자자들이 미국 재정의 구조적 문제를 알고는 있지만 다른 대안이 마땅치 않아 어쩔 수 없이 미 국채에 투자했던 그간의 상황이 이제부터 바뀔 수 있다고 경고했다. 그는 "미 국채를 많이 보유한 국가와 외교 관계가 급변할 수 있고, 독일 등 유럽의 일부 국가가 국방·인프라에 추가 투자를 하기 위해 국채를 더 발행한다면 미 국채에 대한 수요는 줄어들 수 있다"며 "신용평가사 무디스가 최근 미 국채 등급을 최고 등급에서 한 단계 내린 것도 이런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최근 시장에서는 일부 주요 기관투자자가 미 국채를 줄이고 다른 국가의 국채로 갈아타는 모습이 나타나고 있다.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그간 미 국채를 집중적으로 매입했던 대만과 일본의 보험사, 호주의 연금 펀드 등이 미 국채를 팔고 최고 신용등급(AAA)을 보유한 호주와 싱가포르 국채를 담고 있다. 세계 3대 신용평가사로부터 최상위 신용등급을 유지하고 있는 국가는 호주와 싱가포르를 포함해 덴마크·독일·룩셈부르크·네덜란드·노르웨이·스위스 등이 있다. 미 국채의 신뢰도 하락에 의한 리스크를 피하고자 하는 큰손 투자자 입장에서 미 국채 대신 선택할 수 있는 대안이 충분히 존재하는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