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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서방 자산 몰수에도 경기 침체 위기, '요새화된 경제'의 명과 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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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윤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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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 산업에서의 경험을 바탕으로 정확하고 이해하기 쉬운 기사를 쓰겠습니다. 경제 활력에 작은 보탬이 되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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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EU 등 서방국, 우크라 전쟁에 러시아 자산 압류
러, 서방 경제 제재 대응해 기업 자산 50조원 몰수
요새화된 경제 전략에도 경기 침체 리스크 뚜렷해
글랍프로둑트(Glavprodukt)가 생산한 통조림 제품/사진=글랍프로둑트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러시아 정부가 50조원 규모의 기업 자산을 몰수한 것으로 나타났다. 최근에는 러시아계 사업가가 설립한 미국 식품기업을 몰수해 북한, 중국, 중동 등으로의 수출에 활용하려는 움직임도 나타났다. 서방의 대러시아 제재가 장기화로 경기 침체 리스크가 심화하는 가운데 '요새화'를 통해 자급형 경제 체제로의 전환을 가속화하는 모양새다.

러, 기업 몰수 법제화한 대통령령 발효

10일(현지 시각) 로이터통신은 모스크바 로펌 NSP(Nektorov, Saveliev & Partners)의 조사 결과를 인용해 러시아 정부가 최근 3년간 3조9,000억 루블(약 50조2,100억원) 규모의 기업 자산을 몰수했다고 보도했다. 지난 2022년 러시아 정부는 대통령령을 통해 기업 자산을 정식으로 몰수할 수 있도록 법적 기반을 마련하고 이를 '국유화'로 규정했다. 몰수 대상에는 서방 기업뿐 아니라 러시아 자국 기업도 포함됐으며, 몰수 사유로는 전략 자원 확보, 부패 연루, 민영화 절차 위반, 부실 경영 등이 제시됐다.

이렇게 몰수된 기업들은 현재 러시아 정부의 통제 하에 전략적 용도로 운용되고 있다. 일례로 최근 국유화된 미국 식품회사 글랍프로둑트(Glavprodukt)는 국제사회의 제재 대상인 북한에 대한 수출을 추진 중이다. 글랍프로둑트는 러시아 내 최대 통조림 식품 생산업체로 미국 로스앤젤레스에 거주하던 러시아계 사업가 레오니드 스미르노프가 설립한 회사다. 지난해 10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글랍프로둑트가 러시아 내 식품 공급에 전략적으로 중요하다며 기업을 몰수하고 임시로 국가가 통제하도록 명령했다.

로이터가 입수한 문건과 소식통에 따르면 글랍프로둑트는 몰수 이후 생산량은 기존과 유사한 규모를 유지하고 있으나, 판매량이 급감하면서 잉여분을 처리할 새로운 시장을 모색해 왔다. 이와 관련해 지난달 국가가 임명한 새 경영진은 북한과 중동 등으로의 수출 방안을 제시했다. 지난해부터는 전체 판매량의 1%에 불과한 중국에서의 매출 확대 방안을 추진 중이다. 이에 대해 설립자인 스미르노프는 로이터에 "크렘린궁은 러시아의 식량 확보를 위해 내 회사를 가져간다고 주장했지만, 그 명분에 맞게 운영되지 않고 있다"고 비판했다.

美, 러 몰수 자산으로 우크라 지원 추진

이 같은 러시아의 기업 몰수 조치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서방의 대러시아 경제 제재에 대한 맞대응 성격이 강하다. 전쟁 발발한 이후 미국, 유럽연합(EU) 등 서방 국가들은 러시아 중앙은행의 자산 3,000억 달러를 동결하고, 러시아 기업과 개인에 대한 자산 압류와 금융·무역 제재를 단행했다. 이에 러시아 정부는 "서방이 우리의 자산을 몰수하면 그에 상응하는 조치를 취하겠다"고 경고하면서 서방 기업의 러시아 철수와 자산 유출을 막기 위해 기업 자산을 몰수하거나 국유화하는 법령을 제정했다.

2022년 국유화 법안 발효 직후, 맥도날드, 닛산, 메르세데스 벤츠 등 주요 글로벌 기업들이 러시아 내 자산을 현지 기업에 매각하거나 국유화하는 방식으로 철수했다. 같은 해 12월에는 비우호국 기업의 자산 매각 시 시장가치의 절반 이하로 낮춰 매각하거나 거래 대금의 10%를 정부에 기부하도록 강제하는 규제도 도입됐다. 또 이듬해 4월 러시아 정부는 독일계 발전기업 유니프로(Unipro)와 핀란드 전력기업 포르툼(Portum)의 지분을(각각 83.7%, 69.3%)을 연방자산관리청에 강제 위임하는 임시 국유화 조치를 시행했다.

지난해부터는 자산 몰수와 관련한 서방과의 갈등이 더욱 격화됐다. 2024년 4월 미 하원은 미국이 압류한 러시아 국가 자산을 몰수해 우크라이나 지원에 투입하는 '우크라이나 경제 번영과 기회 재건법(REPO)' 법안을 통과시켰다. 법안 통과 직후 푸틴 대통령은 ‘서방의 조치는 노골적인 도둑질’이라고 성토하면서 "러시아 내 다수의 기업 자산을 국가 소유로 반환하는 절차에 착수했다"고 밝혔다. 이어 같은 해 5월에는 미국의 비우호적 행동에 대한 보복 차원에서 러시아 내 미국 자산을 몰수·사용할 수 있도록 하는 대통령령에 서명했다.

경기 침체 리스크도 몰수 정책에 영향

일각에서는 러시아의 기업 몰수 정책에 러시아 경기 침체 리스크가 내생적 요인으로 작용했다는 분석도 제기된다. 우크라이나 전쟁과 그로 인한 서방의 제재가 장기화하면서 러시아는 외환보유고 감소, 루블화 가치 하락, 투자 위축, 실업률 상승 등 전방위적 위기에 직면했고 이러한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요새화된 경제(fortress economy)’ 전략으로 대응해 왔다. 외부 충격에 흔들리지 않도록 외환보유액을 늘리고 달러 의존도를 줄이는 동시에 금·위안화 등 대체 자산을 확보하는 등 자력갱생형 경제 구조를 구축하는 데 초점을 맞춘 것이다.

하지만 러시아 내부에서도 이러한 전략이 이제 한계에 봉착했다는 우려가 나온다. 지난달 막심 레셰트니코프 러시아 경제장관은 상트페테르부르크 국제경제포럼에 참석해 "러시아 경제가 침체 직전에 있다"고 경고했다. 이후 레셰트니코프 장관은 RBC 비즈니스 데일리와의 인터뷰에서 "기업들이 현재 느끼는 방식과 지표로 판단할 때 우리는 이미 경기침체로 들어가기 직전에 있는 것 같다"며 "나는 우리가 벼랑 끝에 있다고 말했다"고 위기감을 드러냈다. 실제로 올해 첫 4개월 동안 러시아 경제 성장률이 1.5%에 그쳤다.

현재 러시아는 21%의 하늘을 찌를 듯한 고금리에도 10%의 만연한 물가상승률을 억제하지 못하는 상황이다. 이로 인해 사업주들은 파산에 직면해 있으며 자본을 조달하거나 부채를 갚을 여유가 없어 투자 계획을 연기할 수밖에 없다고 워싱턴포스트는 전했다. 외국 자본의 유치도 사실상 막혀 있다. 러시아 지도부가 서방의 제재로부터 기업을 보호하기 위해 비공식 채널을 통해 복귀를 타진하고 있지만, 아직 러시아 재진출을 신청한 기업은 없다. 오히려 러시아를 떠나려는 기업으로부터 매달 수십 건의 철수 요청을 받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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