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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보 협정을 확대하는 호주의 전략 전환 공급망 다변화와 미니래터럴 협력을 통한 외교 자율성 확보 동맹 신뢰 약화로 중심국 지위 흔들리는 미국
본 기사는 The Economy 연구팀의 The Economy Research 기고를 번역한 기사입니다. 본 기고 시리즈는 글로벌 유수 연구 기관의 최근 연구 결과, 경제 분석, 정책 제안 등을 평범한 언어로 풀어내 일반 독자들에게 친근한 콘텐츠를 제공하는 데 목표를 두고 있습니다. 기고자의 해석과 논평이 추가된 만큼, 본 기사에 제시된 견해는 원문의 견해와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2025년 5월 22일, 호주 재무부가 발표한 추가 예산안에는 주목할 만한 항목이 포함돼 있었다. 호주 정부는 인도, 필리핀, 인도네시아와 공동 해군 인프라를 구축하는 데 37억 호주달러(약 3조3,000억원)를 투입하기로 했다. 이는 버지니아급 핵잠수함 두 척을 구매할 수 있는 규모다. 이 같은 예산 편성은 호주의 안보 전략이 전환점을 맞고 있음을 보여준다. 올 상반기 동안 호주는 미국이 참여하지 않는 양자 및 다자 안보 협정을 아홉 건 체결하거나 기존 협정을 격상했다. 이는 2010년부터 2018년까지 연평균 두 건에도 못 미쳤던 과거와는 확연히 다른 흐름이다.
이 같은 변화에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재집권이 영향을 미쳤다. 미국의 안보 보장을 당연시하던 동맹국들이 이제 워싱턴을 더 이상 안정적인 파트너로 보지 않기 시작했고, 인도·태평양 지역의 전략 구도도 분산되고 있다. 강대국의 일관성을 신뢰할 수 없는 상황에서, 중견국들은 외교·안보 리스크를 분산하고 자율성을 높이는 현실적 전략을 모색하고 있다.

새롭게 자리 잡은 안보 기조
헤징 전략(Hedging)은 특정 강대국에 대한 과도한 의존을 피하면서 다양한 협력 관계를 통해 외교적 유연성을 확보하는 방식으로 진화해 왔다. 최근 호주의 대응은 이 전략을 보다 구조적인 형태로 끌어올리고 있다. 미국 중심의 안보 체계에 기대기보다, 다양한 지역 협력망에 능동적으로 참여하며 충격을 흡수할 수 있는 다층적 구도를 구축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의 변덕스러운 리더십이 이 흐름에 속도를 붙이긴 했지만, 방향 자체는 이미 잡혀 있었다. 중국의 해양 진출, 미국 정치의 극단화, 그리고 팬데믹 이후 강화된 공급망 안정성 요구가 그 배경이다. 미국과의 동맹은 여전히 전략적으로 중요하지만, 더 이상 유일한 축은 아니다. 호주는 다자 협력 구조를 중심에 두고 전략적 무게중심을 재배치하고 있다.

주: 연도(X축), 안보 협정 체결 건수(Y축)
경제 연결망 강화로 주권 방어 나서
이 같은 전략은 군사 협력에만 머무르지 않는다. 외교·안보 전략의 핵심 기반은 점점 경제로 옮겨가고 있다. 2022년 기준 호주의 대중국 철광석 수출 비중은 전체 수출의 68%에 달했지만, 2025년 1분기 기준으로 57%까지 낮아졌다. 인도, 베트남, 유럽연합(EU) 등 새로운 수입국들이 그 비중을 나눠 가진 결과다.
자원 수출 다변화와 함께 일본·미국과 체결한 ‘핵심 광물 파트너십’은 최근 한국과 EU까지 포함하는 형태로 확대됐다. 특정 시장에 대한 과도한 의존을 줄이고, 수출 통제나 가격 압박에 대한 내성을 높이기 위한 전략이다.
해외직접투자(Foreign direct investment, FDI) 흐름도 유사한 방향을 보인다. 아세안 국가들의 호주 내 투자 비중은 2019년 4%에서 2024년 9%로 두 배 넘게 증가했다. 특히 싱가포르는 재생에너지, 인도네시아는 농업기술 분야에 집중적으로 투자하고 있다. 2025년 3월 국가안보위원회에 제출된 재무부 내부 보고서에도 “다중 시장 확보를 경제적 이익이 아닌 지정학적 자산으로 인식해야 한다”라는 내용이 포함돼 있다. 공급망은 이제 외교 전략을 지탱하는 핵심 수단으로 작용하고 있다.

주: 중국, 인도, 아세안, 유럽연합, 일본(X축), 수출 비중(Y축)/2019년 수출 비중(진한 파란 선), 2025년 예상 수출 비중(연한 파란 선)
소규모 협력체 중심으로 재편되는 안보 질서
호주의 전략 전환은 ‘미니래터럴(minilateral)’ 협력 구도에서 더욱 뚜렷하게 나타난다. 미니래터럴 협력체는 양자와 다자 협력의 중간 형태로, 소수 국가들이 명확한 공동 목표를 중심으로 협력하는 구조다.
2025년 2월 자카르타에서 출범한 인도–호주–인도네시아 해양 안보 대화체는 대표적 사례다. 이 협의체는 선언문에 장대한 수사를 담기보다, 선박자동식별시스템(AIS) 연동, 해양 감시 기준 통일, 티모르해 공동 어업 순찰 같은 실질적 과제를 중심에 두었다. 협정 규모는 작지만, 반복적으로 쌓이며, 유연하고 안정적인 규범 네트워크를 형성하고 있다.
운영 효율성도 강점이다. 일본과 체결한 ‘상호 접근 협정’은 AUKUS(미국·영국·호주 3국 안보 동맹체) 1단계 협상보다 절반의 시간 안에 법제화됐다. 호주 외교 당국은 점점 더 위계적 동맹 구조보다는, 기능 중심의 다층 협력망 구축에 주력하고 있다.
미국의 흔들림이 부른 대가
트럼프 대통령의 ‘아메리카 퍼스트’는 국내 유권자에게는 정치적 효과를 발휘할 수 있지만, 국제사회에서는 오히려 반작용을 초래하고 있다. 2025년 국정연설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만성적인 무역 사기국에 고율 관세를 부과하겠다”라고 밝히자, 동남아 국가들은 즉각 대응에 나섰다. 필리핀은 한국과의 방공 레이더 협력을 논의했고, 베트남은 인도와의 물류 협정을 서둘렀으며, 태국은 독일과의 잠수함 협상을 재개했다. 모두 미국의 정책 후퇴 가능성에 대비한 조치였다.
이처럼 동맹국들이 대응 방식을 바꾸면, 미국은 정책 결정권과 도덕적 권위라는 두 축을 동시에 잃게 된다. 미국에 대한 신뢰가 무너지면 동맹국들의 실질적인 행동도 변하고, 그 결과 미국의 국제적 입지는 점차 약화된다. 신뢰의 붕괴는 단순한 일시적 현상이 아니라, 피드백처럼 반복되는 악순환 구조를 만든다. 향후 미국이 동맹 회복을 시도하더라도, 단순한 자원 투입만으로는 부족하다. 그사이 누적된 회의와 불신을 해소하는 데 더 큰 노력이 필요하다.
중심에 남으려면
2025년 상반기 동안 호주가 미국을 배제한 안보 협정을 9건 체결하거나 격상한 것은 일회성 사례가 아니다. 이는 중견국들이 더 이상 강대국의 방향을 기다리지 않고, 자국의 안보를 능동적으로 설계하고 있다는 흐름을 보여준다. 호주는 외교·안보 자율성을 확보하기 위해 다층적인 협력망을 구축하며 변화를 주도하고 있다. 미국이 이 흐름에서 중심에 남고자 한다면, 일관되고 예측할 수 있는 파트너로서의 신뢰를 유지해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기존의 영향력은 점차 약화될 수밖에 없다. 인도·태평양 지역은 이미 이러한 변화 속에 있으며, 이 흐름은 다른 지역으로도 확산될 가능성이 크다.
본 연구 기사의 원문은 When Great Powers Waver, Middle Powers Hedge: How Australia’s Regional Realignment Signals a New Age of Contingency Alliances | The Economy를 참고해 주시기 바랍니다. 2차 저작물의 저작권은 The Economy Research를 운영 중인 The Gordon Institute of Artificial Intelligence에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