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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덜란드 신규 원전 수주전 철수 스웨덴·슬로베니아 이어 3번째 유럽 시장 포기 '유럽 철수', 지재권 분쟁 합의 조건이었나

한국수력원자력이 네덜란드 정부가 추진 중인 신규 원자력발전소 건설 프로젝트에서 철수하기로 했다. 한수원은 앞서 스웨덴, 슬로베니아 원전 수주전도 포기하는 등 유럽 시장에서 아예 발을 빼는 모습이다. 이에 업계에서는 올해 1월 이뤄진 미국 웨스팅하우스와의 지식재산권 분쟁 협상에서 유럽시장 진출 포기를 약속한 것이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된다.
한수원, 네덜란드 원전 수출 수주전 참여 포기
20일 원전업계에 따르면 한수원은 네덜란드 신규 원전 건설과 관련한 2차 기술 타당성 조사에 참여하지 않기로 했다. 한수원이 빠지면서 네덜란드 원전 수주전은 웨스팅하우스와 프랑스 전력공사(EDF·Électricité de France S.A.)의 2파전이 됐다. 네덜란드는 현재 원전 1기를 운영하고 있으며, 2035년 상업 운전을 목표로 제일란트주 보르셀러 지역에 신규 원전 2기를 지을 계획이다.
그간 한수원은 네덜란드 원전 프로젝트에 공을 들여왔다. 지난 2023년 산업통상자원부는 네덜란드 경제기후정책부와 원전 협력 양해각서(MOU)를 체결하며 신규 원전 수주 의사를 피력했다. 이후 지난해 1차 기술 타당성 조사에 착수했고 수주 절차에 참여하기로 했지만, 돌연 2차 기술 타당성 조사에는 참여하지 않기로 한 것이다.
이와 관련해 한수원 측은 “체코 원전과 소형모듈원전(SMR·Small Modular Reactor) 사업 등에 집중하기 위해 사업 불참을 결정했다”고 말했다. 한수원은 이르면 이달 체코전력공사의 자회사와 원전 수주 관련 협상을 마무리하고, 내달 본계약을 체결할 것으로 보인다.
美 웨스팅하우스 분쟁 여파 가능성
한수원은 작년 말에도 스웨덴 원전 수출을 포기했다. 체코를 시작으로 유럽 원전 시장 공략에 나설 것으로 예상했지만, 아예 철수하는 방향으로 틀었다는 해석이 많다. 현재 웨스팅하우스가 자사 개발 3세대 가압경수로형 원자로 기술인 AP1000을 기반으로 한국 현대건설과 스웨덴 원전 사업 협력을 위한 협약을 체결한 상태다. 아울러 한수원은 슬로베니아 전력회사 젠에너지가 추진하는 최대 2,400㎿(메가와트) 규모의 원전 프로젝트 타당성 조사에도 불참하기로 지난 2월 결정했다.
원자력업계에서는 한수원이 웨스팅하우스와의 지식재산권 합의 과정에서 유럽 시장 진출 기회를 웨스팅하우스에 넘겨준 것으로 추측한다. 한수원이 당초 체코 원전 수주를 발판 삼아 유럽 시장에 본격 진출하려 했다가, 지식재산권 협상 종료 전후로 유럽 내 3개국 원전 수주전에서 연달아 물러났기 때문이다.
지난 1월 16일 한수원과 한전, 웨스팅하우스는 웨스팅하우스의 지분을 가진 캐나다 핵연료 회사 카메코와 함께 미국 현지에서 지재권 분쟁 협상을 타결했다. 당시 한수원·한전과 웨스팅하우스 측은 이번 지재권 협상 타결 내용의 구체적인 내용은 상호 비밀 유지 약속에 따라 공개하지 않기로 했다.

유럽은 웨스팅하우스 단독, 중동은 공동?
이에 당시 업계 안팎에서는 한수원이 체코 원전 수출과 관련해 웨스팅하우스에 조 단위 로열티 혹은 일감을 주고, 향후 다른 제3국 원전 수출도 공동 추진하는 것처럼 상당 수준의 양보를 했을 것이라는 견해가 나왔다. 웨스팅하우스의 전통 시장인 유럽에서는 양사 공동 진출을, 신흥 시장인 중동은 한국이 단독 진출하는 등 특정 지역 원전 수출 문제를 놓고 '상호 조정'이 있었다는 관측도 있었다.
그간 웨스팅하우스는 한수원이 체코에 공급하려는 최신 한국형 원전 APR1400이 자사의 원천 기술에 기반한 것이라며 한수원의 독자적인 수출에 제동을 걸어왔다. 반면 한수원은 APR1400의 국산화에 성공했기 때문에 독자 수출에는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었다. 그러나 한수원과 한전으로서는 불확실한 분쟁을 이어가기보다는 이번 협상 타결을 통해 '팀 코러스'(Team Korea+US)로 글로벌 수출 시장을 넓히는 전략을 택한 것으로 풀이된다.
세계원자력협회(WNA)에 따르면 중국과 러시아를 제외하고 지난해 말 기준 전 세계에서 추진 중인 원전 사업은 총 186개다. 이 중 70기(38%)가 폴란드·우크라이나·루마니아 등 유럽에 몰려있다. 유럽은 한국이 노릴 수 있는 최대 원전 수출 시장임에도 한수원은 최근 연달아 수주 포기를 선언하고 있는 상황이다. 한수원과 웨스팅하우스 측은 지식재산권 협상의 구체적인 내용에 대해선 함구하고 있지만 체코 원전 계약이 마무리되면 유럽 수주는 웨스팅하우스가 주도하고, 한국은 웨스팅하우스와 함께 중동·동남아 등에 집중하는 식으로 합의했다는 분석에 힘이 실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