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딥폴리시] 권력 이동의 장기 과정, 미·중 경쟁 속 교육 과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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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경제 부상과 미국의 군사 우위, 좁혀지는 연구 격차 권력 이동은 역량, 만족도, 위계가 함께 작용하는 구조 장기적 변화를 대비하는 교육 및 연구 전략 필요
본 기사는 스위스 인공지능연구소(SIAI)의 SIAI Business Review 시리즈 기고문을 한국 시장 상황에 맞춰 재구성한 글입니다. 본 시리즈는 최신 기술·경제·정책 이슈에 대해 연구자의 시각을 담아, 일반 독자들에게도 이해하기 쉽게 전달하는 것을 목표로 합니다. 기사에 담긴 견해는 집필자의 개인적 의견이며, SIAI 또는 그 소속 기관의 공식 입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2024년 세계 경제에서 중국은 구매력평가(PPP) 기준으로 19.7%를 차지했고, 미국은 14.8%에 머물렀다. 그러나 국방비에서는 미국이 9,970억 달러(약 1,360조원)를 지출해 중국의 3,140억 달러(약 430조원)를 크게 웃돌았다. 미국은 전 세계 군사비의 37%를 차지하며 압도적 우위를 유지하고 있다. 경제력은 아시아로 확대되고 있지만, 군사력은 여전히 미국과 그 동맹에 집중돼 있다는 점이 확인된다.
이러한 불균형은 교육정책에도 함의를 갖는다. 지식, 연구자금, 학생 이동, 제도적 위험은 단번에 변화하지 않고 점진적으로 조정된다. 따라서 국제 협력과 교류를 설계할 때 특정 시점에 급격한 전환이 일어난다고 가정하는 것은 현실과 맞지 않다. 권력 이동은 장기간에 걸쳐 분야별로 다른 속도로 진행되며, 이에 대한 대비는 교육 현장에서 축적되는 지식과 정책적 판단을 통해 가능하다.

세력전이 이론의 핵심
세력전이 이론(Power Transition Theory, PTT)은 미국 정치학자 오간스키(A.F.K. Organski)가 1958년 처음 제시했다. 국제질서는 패권국이 운영하며, 여기에 도전하는 부상국이 나타날 때 갈등 가능성이 커진다는 설명이다. 특히 두 나라의 힘이 비슷해지고 부상국이 질서를 불공정하다고 인식하면 충돌 위험이 커진다. 반대로 현 체제가 공정하다고 판단한다면 균형 속에서도 평화가 유지될 수 있다.
후속 연구는 힘의 크기만으로는 권력 이동을 설명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국제질서는 제도, 동맹, 규칙이 얽혀 있으며 이들이 갈등을 완화하거나 협력을 유도할 수 있다는 점이 강조됐다.
아시아는 이를 잘 보여준다. 현재 아시아는 PPP 기준 세계 생산의 약 40%를 차지하며,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RCEP)은 세계 GDP의 약 30%를 포괄한다. 이는 전략적 경쟁이 심화되는 가운데서도 무역과 제도를 통한 협력이 강화되고 있음을 의미한다.

주: 세계 GDP 점유율 및 국방 지출(X축), 수치(Y축)/미국(연한 빨간색), 중국(진한 빨간색)
권력 이동의 세 가지 축
권력 이동은 역량, 만족도, 제도와 동맹이라는 세 축이 함께 작용하면서 전개된다.
첫째, 역량 측면에서 중국은 경제 규모에서 미국을 추격했지만, 군사력과 첨단기술에서는 미국이 우위를 유지한다. 2024년 전 세계 군사비 지출은 2조7,200억 달러(약 3,700조원)에 달했으며, 이 중 미국이 37%를 차지해 중국보다 3.2배 많았다. 연구개발 격차는 좁혀지고 있다. 미국 국립과학재단(NSF)에 따르면 2022년 세계 연구개발 지출에서 미국은 30%, 중국은 27%를 차지했다. 2023년 미국의 연구개발비는 9,400억 달러(약 1,280조원)로 늘었지만, 중국의 성장 속도는 이를 상회한다. 인공지능 분야에서도 미국은 민간 투자액 1,000억 달러(약 140조원) 이상으로 앞서 있으나, 중국이 빠르게 격차를 좁히고 있다.

주: 연도(X축), 세계 R&D 지출 비율(Y축)/미국(연한 빨간색), 중국(중간 빨간색), 기타 국가(진한 빨간색)
둘째, 만족도 측면에서 국제질서에 대한 불만은 영역마다 다르게 나타난다. 한 국가는 해양 규범에는 동의하면서도 기술 규제에는 반대할 수 있다. 최근 미·중 양국은 반도체와 인공지능 하드웨어 같은 민감한 분야에서 선택적 분리를 강화했다. 미국의 수출 통제 확대와 동맹 협력이 그 사례다. 이는 질서 전체를 거부하는 것이 아니라 특정 분야에서 갈등이 집중되는 현상으로 볼 수 있다.
셋째, 제도와 동맹은 권력 이동의 완충 장치로 작동한다. 아시아의 무역·생산 네트워크는 10년 전보다 강화됐고,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RCEP)은 규칙 기반 협력을 제도화했다. 대서양 지역에서는 나토(NATO)가 세계 군사비의 55%를 차지하며 방위 능력을 확대하고 있다. 이러한 제도와 동맹은 권력 이동 과정에서 충격을 흡수하고 갈등을 억제하는 역할을 한다.
연구 협력의 방향
연구 협력 역시 세 가지 축을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한다.
미국의 생명과학과 소프트웨어 분야, 아시아의 공학과 신소재 분야는 서로 다른 강점을 지니고 있어 연결할 경우 역량 면에서 상호 보완 효과를 낼 수 있다.
동시에 연구 성과의 분배가 제로섬 경쟁으로 비치지 않도록 개방형 데이터베이스 구축, 공동 지식재산 관리, 데이터 공유 체계 같은 장치가 필요하다. 이러한 장치는 국제질서에 대한 만족도를 높이는 기반이 된다.
여기에 안정적인 국제 컨소시엄, 데이터 표준화 협력, 재현성 검증 연구소 같은 제도적 장치가 결합될 때 연구 네트워크는 정치적 충격에도 지속성을 유지할 수 있다. 실제로 중국은 일부 연구 지표에서 미국과 대등하거나 앞서고 있으나, 양국의 공동연구 논문 비중은 2019년 27%에서 2023년 23%로 줄었다. 협력이 필요한 분야는 개방적으로 유지하되, 갈등이 집중되는 영역에는 대안을 마련해야 한다.
비판과 대응 논리
일각에서는 권력 이동을 점진적으로 설명하는 것이 위험을 과소평가한다고 본다. 이에 따라 대학 간 협력을 축소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그러나 데이터는 아시아의 제도가 강화됐고, 연구 역량도 다변화됐으며, 미국은 여전히 중국보다 세 배 많은 국방비를 유지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는 권력 이동을 관리 가능한 경쟁으로 해석할 수 있는 근거다.
또 다른 비판은 위험을 논하는 것 자체가 위기를 자초한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위험 인식과 위기 과장은 구분돼야 한다. 역량·만족도·위계라는 세 축을 기준으로 분석하면 과장된 ‘함정론’을 피하고 균형 잡힌 시각을 유지할 수 있다.
향후 과제
중국은 경제 규모에서 미국을 추격하고 있으나 군사력과 동맹 체제는 서방이 우위다. 연구개발 격차는 줄고 있으며, 국제질서에 대한 만족도는 분야별로 상이하다. 아시아는 무역과 제도를 통해 영향력을 확대하고 있고, 미국은 국방비와 동맹을 바탕으로 기존 질서를 유지하고 있다.
따라서 권력 이동은 단일한 사건이 아니라 경제, 군사, 연구, 제도 등 여러 영역에서 속도와 양상이 다른 장기적 과정이다. 앞으로의 정책과 교육은 이 세 축을 중심으로 분석하고 대응해야 한다. 과장된 위기론보다 데이터와 제도적 기반에 근거한 균형 있는 해석이 필요하다.
본 연구 기사의 원문은 Not a Cliff, a Slope: Teaching Through a US-China Power Transition를 참고해 주시기 바랍니다. 본 기사의 저작권은 스위스 인공지능연구소(SIAI)에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