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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세계·신라, 법원에 '임대료 감면' 조정 신청 인천공항公, 2차 기일 불참 입장 견지 면세점 "협상 결렬 땐 철수 불가피"

인천국제공항 면세점 임대료 문제를 놓고 면세업계와 인천국제공항공사(이하 공사) 간 갈등이 장기화되고 있다. 법원이 회계법인에 감정촉탁까지 의뢰하며 적극적으로 중재에 나서고 있지만, 공사는 형평성 등을 이유로 임대료 조정 요청을 수용할 수 없다는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이에 매달 수백억원대 적자를 견뎌 온 면세점들은 ‘전면 철수’ 카드를 꺼내며 배수진을 치고 나섰다. 막대한 인천공항 임대료 감면 여부가 면세업계의 명운을 결정할 상황에 놓인 가운데, 이대로면 전례 없는 ‘인천공항 면세점 셧다운’이 현실화 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매달 60억 적자에 위약금 감수 선택
1일 면세업계에 따르면 신세계면세점과 신라면세점 법률대리인은 “양사가 계약한 인천공항 면세점 운영 기간이 앞으로 8년 남았지만, 임대료로 인해 막대한 적자를 보고 있기 때문에 현재 임대료 수준을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상황”이라며 “조정이 결렬되면 이들 면세점은 인천공항에서 철수할 것”이라고 밝혔다.
앞서 올해 1월 신세계면세점과 신라면세점은 공사에 임대료 인하를 요구했으나 거절당했다. 이에 양사는 지난 4월과 5월 인천지방법원에 민사조정 신청을 제기했다. 양사는 적자 누적 등을 이유로 인천공항 제1·2여객터미널 내 화장품·향수·주류·담배 매장 임대료를 40% 인하해 달라는 취지로 차임감액청구권을 행사했다.
이에 법원은 지난 6월 30일에 1차 조정기일을 열었고 이달 14일에 2차 조정기일을 지정했다. 아울러 법원은 삼일회계법인 등에 적정 임대료 관련 감정촉탁도 의뢰한 상태다. 감정촉탁은 법원이 구체적 판단을 내리기 위해 전문성을 지닌 외부기관에 사실 확인 등을 의뢰하는 절차다. 면세업계에서는 법원의 감정촉탁 결과를 놓고 법원이 중재로 방향을 잡은 것으로 보고 있다.
면세업계가 조정을 신청한 배경에는 지속적인 손실 누적이 있다. 본래 인천공항 면세점은 고정 임대료 방식이었으나 지난 2023년부터 1인당 여객 수수료에 공항 이용객 수를 곱해 산정하는 ‘여객 수 연동 임대료’ 방식으로 전환됐다. 매달 인천공항 이용객 수가 300만 명 안팎임을 고려할 때, 기업당 내야 하는 월 임대료는 300억원 수준인 셈이다. 이는 지난해 양사 연 매출의 18%(신세계·2조60억원), 11%(신라·3조2,819억원)에 달한다.
조정 당시만 해도 고정 임대료 대비 수요 변동에 유연하게 대응할 수 있다는 점에서 합리적인 모델로 평가받았지만, 코로나19 엔데믹 이후에도 면세점 소비가 회복되지 않으면서 여객 수 증가에 따른 임대료 부담만 커지는 부작용이 나타났다. 업계에 따르면 중국인 단체관광객(유커)의 유입 감소, 내외국인 개별 관광객의 소비패턴 변화, 고환율 등으로 면세점 구매자 수가 급격히 감소한 상태다.
이 때문에 면세점들의 적자 폭은 갈수록 늘어났다. 지난 1분기에도 신세계면세점과 신라면세점은 각각 17억원과 67억원의 영업 손실을 냈다. 최근 실적을 공시한 신라면세점은 2분기에도 시장 기대치를 밑도는 113억원의 적자를 기록했다. 신세계면세점도 상황이 크게 다르지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비슷한 수준의 손실이 이어진다고 가정하면 천문학적인 위약금을 감수하고서라도 차라리 철수하는 편이 낫다는 결정을 내린 것이다. 철수 위약금은 각 사업장당 2,000억원 안팎이 거론된다.

인천공항공사 “계약사항 변경은 배임 소지”
면세업계가 철수 가능성까지 내비친 건 공사 측이 임대료 인하 관련 조정신청에 불참을 선언한 것에 대한 대응 성격이 짙다. 앞서 공사 측은 1차 조정기일 전 법원에 조정안 수용이 불가하다는 의견서를 냈다. 2차 조정기일 역시 곧바로 공사 측은 불참하겠다는 의사를 나타냈다. 현행 임대료 체계는 국제 입찰까지 거쳐 확정한 계약사항인데, 업황이 악화했다고 해서 계약을 중도에 변경하는 것은 배임 소지가 있다는 이유에서다.
또 다른 이유는 인천공항을 떠받치는 수익 구조다. 인천공항의 전체 수익 중 면세점 임대료가 차지하는 비중은 40%에 육박하고 있다. 영국 히드로공항이나 네덜란드 암스테르담공항의 경우 항공수익이 60%에 달하지만 인천공항은 30%에 불과하다. 면세점 임대료가 인천공항 운영의 재정 버팀목인 셈이다. 한 업계 관계자는 “인천공항이 글로벌 경쟁력을 유지하고 고품질의 여객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면세점을 포함한 비항공 부문 수익이 크게 기여했다”고 강조했다.
이는 정부의 정책적 압박과도 연결돼 있다. 정부의 통제 속에 공사는 공항사용료를 20년째 1만7,000원으로 유지하고 있다. 영국 히드로공항 이용료는 9만3,000원으로 인천공항보다 5배 이상 높고 일본 나리타공항도 3만원이 넘는다. 공사가 면세점 임대료에 의존하고 있는 배경이다. 이러한 구조는 그나마 면세 산업 잘 나갈 때는 견딜만하지만, 지금처럼 생존 문제를 고민하는 상황에서는 다르다. 임대료가 면세업의 경쟁력을 떨어뜨리면 인천공항도 위태로울 수밖에 없다. 실제로 면세점이 망하면 공항 수익이 줄어 시설 투자나 서비스 개선도 더뎌지게 된다.
면세점 빠지면 공항도 타격, 상생 필요
신라·신세계면세점과의 입찰 경쟁에서 이들의 임대료 제안에 밀려 사업권을 따내지 못한 경쟁 업체들과의 형평성 문제도 제기될 수 있다. 앞서 롯데면세점 지난 2018년 사드(THAAD·고고도 미사일방어체계) 배치에 따른 중국 정부의 한국 관광 규제로 중국인 방문객이 줄자 임대료 감당이 어려워져 철수를 결정한 바 있다. 아울러 또 다른 공항 내 식음료·편의점·은행 등 여타 사업자와의 형평성 논란도 우려 대상이다.
한 공사 관계자는 “면세점 계약 제안요청서에도 현행 방식이 명시됐고, 두 면세점 모두 동의했다”며 “법원의 조정에 따르더라도 추후 법적인 시비가 생길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이어 “국가계약법과 임대차법 등에 따라 임대료를 감면할 수 있는 조건이 정해져 있는데, 면세업계가 주장하는 업황 악화는 이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이처럼 배임 가능성이나 형평성 문제로 임대료 조정이 불가하다는 공사의 입장은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이다. 하지만 조정 절차에서마저 발을 빼겠다는 것에 대해서는 비판의 목소리가 높다. 면세점들은 법원의 도움을 받아 어렵게 공사와의 협상 테이블에 앉았는데 공사 역시 최소한 조정 절차에 끝까지 임하는 것이 책임 있는 모습이라는 지적이다.
공사가 2차 조정기일에 끝끝내 불참한다면 협상은 결렬될 수밖에 없다. 이 경우 면세점들이 선택할 수 있는 건 현재 내건 철수와 더불어 본안소송이다. 현시점 면세점들이 높은 인지대 부담을 지고서라도 본안소송에 나설지는 확실하지 않다. 다만 면세점이 인천공항에서 철수하게 되면 공사 또한 피해가 불가피하다. 두 면세점이 철수해 재입찰까지 가게 될 경우 새로운 사업자의 임대료는 대폭 낮아질 공산이 큰 데다, 글로벌 허브 공항으로서의 위상이 약해질 가능성도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