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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레스타인 옹호한 컬럼비아대, 연방 정부에 벌금 낸다 "살아남으려면 정부에 복종해야 하나" 흔들리는 학문의 자유 정치에 휘둘리는 美 대학, 경쟁력 약화 위기

컬럼비아대학교가 연방정부의 압박 앞에 무릎을 꿇은 가운데, 이 같은 결정이 미국 고등교육의 지형을 뒤흔들 수 있다는 분석이 제기됐다. 정부의 개입이 아이비리그를 넘어 중소·사립대학까지 확대되며 미국 고등교육의 정체성 자체가 시험대에 오를 것이라는 전망이다.
컬럼비아대, 보조금 앞에 무릎 꿇어
31일 학계에 따르면, 컬럼비아대는 지난 23일(현지시간)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와 협상을 통해 2억 달러(약 2,740억원)의 벌금을 내고 유대인 교직원에게 2,100만 달러(약 290억9,340만원)의 보상금을 지급하기로 결정했다. 캠퍼스 내 반이스라엘 분위기를 방치하고 충분한 조치를 하지 못했다는 이유에서다. 이에 더해 컬럼비아대는 앞으로 입학 및 채용 과정에서 인종을 고려하는 관행을 중단하고, 교내 유대인 혐오 행위를 근절하는 조치를 이행하기로 약속했다.
이는 연방 보조금 회복을 위한 행보로 읽힌다. 학내 반유대 시위 대응, 다양성 예산 집행, 교수 채용 문제 등을 둘러싸고 연방 정부로부터 불이익을 받아 온 컬럼비아대는 법적·재정적 압박을 감당하기보다, 정부의 지시에 순응하는 쪽을 택한 것이다. 트럼프 행정부는 이 합의를 ‘공정성과 학문적 중립성의 승리’로 포장했지만, 비판자들은 이를 ‘정치적 편의주의 앞의 항복’으로 본다. 컬럼비아대가 사실상 학문의 자유가 정치권력에 종속될 수 있다는 새로운 기준을 수용했으며, 이로 인해 대학교가 정치적 조건에 따라 생존을 협상하는 기관으로 전락했다는 평가다.
과도한 정부 개입의 후폭풍
일각에서는 컬럼비아대의 '타협'으로 인해 발생한 후폭풍이 아이비리그 바깥으로 확산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컬럼비아대처럼 전통적인 명문 대학은 비영리 기관으로서 늘 일정 수준의 정치적 독립성을 보장받았고, 정치적 압박에 저항할 때는 도덕적 정당성까지 인정받으며 위기를 돌파해 왔다. 하지만 그런 컬럼비아대조차 자율성보다 생존을 우선시했다면, 연방 정부의 ‘호의’에 기대야 하는 영리 기관들은 사실상 정부 정책에 반기를 들 수 없게 된다.
특히 영리 대학의 경우 연방 보조금이나 등록금이 생존의 전부다. 정부의 눈 밖에 나는 순간 지원금 중단, 인가 취소, 평판 악화 등 치명적 타격이 불가피하다. 정치적 순응이 곧 '생존 조건'이 되어 버린 셈이다. 이는 결국 고등교육에 대한 공공 신뢰를 무너뜨리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 대학이 국가의 이해관계를 대변하는 기관처럼 비친다면, 대학의 권위와 매력은 급속히 떨어질 수밖에 없다.
연방정부의 개입이 교수진 구성에도 영향을 줄 것이라는 관측도 존재한다. 소수자나 사회적 약자를 대변하는 학자들이 보조금 심사에서 불이익을 받을 수 있다는 우려가 현지 학계에서 빠르게 확산 중이라는 것이다. 향후 실제로 학문적 실력보다 정치적 적합성을 우선시하는 분위기가 형성될 경우, 연구의 질이 떨어지는 것은 물론 민주주의의 근간까지 훼손될 수 있다.

곤두박질치는 美 대학 위상
현지 학계는 연방 정부의 개입으로 인해 미국 대학의 위상 자체가 무너질 것이라는 비관적 예측을 내놓는다. 오랜 세월 미국 대학은 지식과 표현의 자유를 상징해 왔다. 세계 각국의 인재들이 미국의 대학에 모여 연구 기준을 세웠고, 졸업생들은 글로벌 리더로 성장했다.
하지만 지금, 오랜 기간 쌓아온 신뢰가 흔들리고 있다. 대학이 권력 앞에 굴복하는 모습이 공개되며 ‘지적 자유의 최후 보루’라는 미국 대학의 이미지가 희미해지기 시작한 것이다. 이 같은 인식은 단기간에 회복되기 어려우며, 유학생 유치, 교수 채용, 국제 연구 협력 등 대학의 핵심 역량 전반에 부정적 영향을 미친다.
미국 내에서도 ‘위축 효과(chilling effect)’가 나타날 가능성이 크다. 젊은 연구자들은 위험한 주제를 피하고, 학생들은 캠퍼스 내에서 목소리를 내는 데 소극적일 수밖에 없다. 열린 토론과 두려움 없는 탐구를 발판 삼아 작동하던 지식 생태계가 멈춰서고, 생존을 위한 침묵과 순응이 보편적 가치로 자리매김할 수 있다는 의미다. 고등교육 기관의 책임과 정체성이라는 개념 자체가 시험대에 오른 가운데, 미국 대학가는 숨을 죽이고 컬럼비아대의 '날갯짓'이 불러올 '폭풍'을 기다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