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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GPS 못 믿는다" 이란, 中 위성항법 체계 채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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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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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같이 달라지는 세상과 발을 맞춰 걸어가고 있습니다. 익숙함보다는 새로움에, 관성보다는 호기심에 마음을 쏟는 기자가 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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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란 정부 "GPS 대신 中 베이더우 적용 예정"
미국과는 단절, 중국과는 협력 강화 효과
'기술 냉전' 시대 막 오르나

이란 정부가 미국 주도의 글로벌 위성항법 시스템(Global Positioning System, GPS)을 뒤로 하고 중국의 ‘베이더우(Beidou)’ 시스템을 채택하기로 했다. 위성항법 체계 전환을 통해 중국과의 우호 관계를 강화하고, 서방국의 감시 체계에서 벗어나겠다는 의지를 표명한 것으로 풀이된다.

이란, GPS 교란으로 홍역 치러

30일 외신 등에 따르면, 에흐산 치차즈 이란 정보통신부 차관은 최근 이란 현지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GPS가 내부 요인으로 인해 때때로 중단되는 경우가 있는데, 이로 인해 베이더우와 같은 대안을 고려하게 된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정부가 조만간 교통, 농업, 인터넷 등의 분야에 베이더우를 적용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란 정부가 이 같은 결정을 내리게 된 배경에는 올해 초 벌어졌던 이스라엘과의 충돌 사태가 있다. 당시 이란에서는 대규모 GPS 교란으로 인해 수천 개의 군용 및 민간 시스템이 동시에 혼란에 빠졌다. 호르무즈 해협을 지나던 유조선들은 현재 위치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채 표류했고, 항공기는 줄줄이 경로를 수정해야 했다. GPS 의존도가 높은 물류망 역시 일제히 마비됐다. 당초 전자전(Electronic Warfare, EW)의 일환으로 진행된 이 교란은 유도 무기와 감시 드론을 혼란에 빠뜨리는 것이 목적이었지만, 그 여파가 군사 영역을 넘어 민간 전반으로 확산한 것이다.

중동 지역 내에서 GPS를 활용한 공격이 이뤄진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그러나 해당 사태는 규모와 정밀도 면에서 이전과는 차원이 다르다는 평을 받는다. 체계적이고 의도적인 전파 교란으로 인해 GPS가 보편적 공공 인프라라는 인식 자체가 무너지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설상가상으로 핵시설 위치가 GPS 메타데이터를 통해 외부에 노출됐다는 주장까지 제기되자, 이란 정부는 더는 ‘적국이 운영하는 시스템’에 의존할 수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베이더우 도입이 시사하는 바는?

이란 정부가 GPS의 대체재로 채택한 베이더우는 '중국판 GPS'로 불리며, 중국 주변 지역에서는 GPS를 뛰어넘는 센티미터(cm) 단위의 정밀도를 제공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지난해 베이더우의 서비스산업 생산 규모는 5,758억 위안(약 112조원)에 육박했으며, 베이더우가 탑재된 기기 수는 전 세계 기준 20억 개 이상이다.

향후 이란 정부가 군사 작전부터 민간 인프라까지 베이더우 기반 시스템을 대대적으로 도입할 경우 위성 통신, 전력망, 교통망 등 핵심 기반 시설을 미국 GPS에 의존하지 않고 운영될 수 있게 된다. 베이더우 시스템으로의 전환은 미국이 주도해 온 감시·통제 체계에서 이탈하겠다는 이란 정부의 상징적 선언인 셈이다.

이에 더해 이란은 베이더우 도입을 통해 베이징과 테헤란 간 경제·외교 협력을 강화하는 효과도 누릴 수 있다. 이란은 이미 중국의 일대일로(一帶一路, 중국-중앙아시아-유럽을 연결하는 육상·해상 실크로드) 구상에 참여하고 있으며 양국은 에너지, 사이버 안보, 인프라 등 분야에서 장기 협력 협정을 체결한 상태다.

위성, 더 이상 '중립적 기술' 아니다

일각에서는 이란의 위성항법 체계 전환이 ‘글로벌 기술 냉전’의 전조라는 평가가 나온다. 그간 위성항법 체계는 전 세계가 공유하던 공공 인프라로 인식돼 왔다. 하지만 최근 들어 각국은 자국 데이터와 인프라에 대한 통제권을 강화하기 위해 위성을 일종의 전략적 무기이자 외교 카드로 활용하고 있다. 위성이 더 이상 중립적이지 않다는 인식이 확산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미 베이더우 영향권에 들어선 동남아·남아시아·중동·아프리카 국가들은 이란의 결정을 ‘모범 사례’로 판단해 주시 중이며, 유럽에서도 위성 다중화를 통한 시스템 탄력성 확보 논의가 본격화하고 있다. 최근 들어서는 GPS 외에 러시아의 글로나스(GLONASS), 유럽의 갈릴레오(Galileo) 등 각종 위성항법 체계를 혼합해 쓰는 멀티 수신기도 개발되는 추세다.

이처럼 각국이 위성 패권 경쟁에 힘을 싣는 이유는 위성항법 체계가 지니는 경제적 영향력이 상당하기 때문이다. 위성항법 체계 장애는 선박 운항 지연, 항공편 차질, 투자 신뢰 하락 등 극심한 후폭풍을 몰고 온다. 농업, 자율주행, 통신 등 민간 산업 전반이 위성 신호에 의존하고 있어서다. 즉 위성 패권을 손에 쥐는 국가는 '신호 차단'이라는 강력한 억제 수단을 앞세워 외교적 우위를 점할 수 있게 되는 셈이다. ‘디지털 자율권’이 국가 주권 수호의 핵심 축으로 떠오른 가운데, 향후 GPS 체계 산하에서 이탈하는 국가는 점차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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