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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대중관세 145%→30%, 中 대미관세 125%→10% 이미 소비위축 조짐, 엔진 멈추면 여파 급속 확산 관세, 경제 성장 억제하고 무역 적자 해소에도 효과 無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중국산 제품에 부과했던 최고 145%의 고율 관세를 대폭 낮추기로 했다. 미국 기업들에 가해지는 부담으로 인해 고강도 관세 드라이브를 거는 데 한계를 드러낸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美·中 90일간 관세 115%p씩 인하 합의
12일(이하 현지시간) 트럼프 대통령은 백악관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그들은 중국을 개방하기로, 완전히 개방하기로 합의했다”며 “이것이 중국에 굉장히 좋은 일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이는 우리에게도 굉장히 좋을 것이며 통합과 평화에도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전했다. 아울러 트럼프 대통령은 “제네바에서의 협상은 매우 우호적이었고 양국 관계도 매우 좋다”고 평가했다. 그는 “우리는 중국을 해치려는 것이 아니다”라며 “중국은 심한 피해를 입고 있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트럼프 대통령은 이번 주 안에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통화할 수 있다고 밝혔다.
미국과 중국은 지난 10일부터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린 고위급 무역 협상에서 서로에 부과한 관세를 90일간 115%p 낮추는 데 합의했다. 이에 따라 오는 14일부터 미국은 중국에 대한 관세를 기존 145%에서 30%로 낮춘다. 펜타닐 관련 관세 20%, 기본관세 10%가 부과된다. 중국 역시 미국산 제품에 대한 관세를 125%에서 10%로 인하하기로 했다. 백악관에 따르면 중국은 4월 2일 이후 시행한 미국에 대한 비관세 보복 조치도 중단하거나 철회할 예정이다.
이번 유예 조치로 양국은 보다 포괄적인 무역 합의를 위해 협상을 진행할 시간을 벌게 됐다. 트럼프 대통령은 장기적인 무역 합의가 유예 기간 내에 도출되지 않더라도 대중국 관세를 다시 145%로 올리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그는 “대신 상당히 인상될 것”이며 30% 이상이 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이와 관련해 파이낸셜타임스(FT)는 “시장이 예상했던 것보다 더 일찍, 더 큰 폭으로 미·중 간 관세가 하향 조정됐다”고 전했다.
‘치킨게임’ 벌이던 美·中, 자국 경제 흔들리자 타협
세계 양대 강국의 격렬한 무역 전쟁으로 인한 경기 침체 공포가 만연했던 글로벌 시장은 이날 미·중의 극적인 합의에 일단 안도하는 모습이다. 중국 기업이 많이 상장된 홍콩 항셍지수는 미·중 관세 합의 발표 후 크게 올라 전일보다 3% 급등해 거래를 마쳤다. 다만 양국 간 관세 인하 시효가 일단은 90일로 정해져 추가 협상의 움직임에 따라 불확실성이 다시 커질 위험도 있다.
트럼프 대통령 재집권 이후 개시된 미·중 2차 무역 전쟁은 미국이 지난 2과 3월, 중국의 펜타닐 유통을 문제 삼아 20%의 추가 관세를 부과하면서 막을 올렸다. 이후 미국은 지난달 대중 무역 적자를 이유로 중국산 모든 제품에 총 125%의 상호 관세를 부과해, 누적 145%의 추가 관세를 매겼다. 중국은 미국산 제품에 125%에 달하는 보복관세를 매기고, 희토류 7종 수출을 제한하며 강경 대응했다. 이로 인해 양국은 사실상 ‘무역 절교’ 상태로 치달았으나 이날 극적인 합의가 나왔다. 트럼프 대통령은 앞서 지난 9일 “중국에 대한 관세율은 80% 수준이 적절하다”고 했는데 이날 발표된 관세 인하 폭은 예상보다 훨씬 컸다.
트럼프 대통령이 선공(先攻)을 날리고 중국이 역공(逆攻)해 온 미·중 관세전쟁은 트럼프 대통령과 시 주석의 자존심 싸움으로 확전됐다. 하지만 관세전쟁이 초래할 부작용에 대한 우려로 미국의 주식·채권·통화 가격이 동시에 하락하고, 중국도 미국으로의 수출 감소로 제조업 일자리 감소 우려가 대두되자 결국 양국이 휴전을 선언한 것으로 보인다.

“가장 큰 피해자는 美 소비자”, 미국 내에서도 ‘우려’
전문가들은 이번 타협이 특히 트럼프 대통령이 펼친 공격적 무역정책이 가진 한계를 보여주는 단면이라고 입을 모은다. 관세 인상이 중국에 타격을 준 것은 사실이지만 미국 내에서도 소비자 가격 상승과 공급망 불안으로 부작용이 커졌기 때문이다. 실제 미국 수입업체들은 비용 급등에 따른 사업 중단 위기에 직면했고, 미국 제조업체들은 희귀 광물과 자석 등 중국 의존도가 높은 자재의 공급 중단을 우려했다.
미국 수입품에 대한 관세 부과가 제품 인상으로 이어져 미 소비자들에 전가되고, 이는 소비 위축에 따른 경기 침체를 야기할 수도 있다는 우려도 갈수록 커졌다. 지난 2월 예일대 예산연구소(Budget Lab)는 미국이 다른 국가의 관세 및 부가가치세(VAT) 수준에 맞출 경우 미국의 실질 관세율은 13%포인트 상승하고 소비자 물가는 1.7∼2.1% 높아질 것으로 전망했다.
물가 상승은 신규 주택과 자동차뿐만 아니라 대중교통, 금융 등 소비자 서비스 전반에 확산할 수 있다. 이는 특히 저소득 계층에 더 큰 부담으로 작용한다. 미국진보센터(Center for American Progress)는 트럼프 대통령의 관세 정책이 미국 가구당 평균 연간 5,200달러(약 737만원)의 부담을 줄 것이라고 추정하기도 했다.
뿐만 아니라 관세는 트럼프 대통령이 궁극적 목표로 내세운 무역 적자 해소에도 기여하지 못할 것으로 분석된다. 경제학의 기본 법칙과 충돌하기 때문이다. 현재 미국은 연방정부의 천문학적 재정 적자와 만성적인 저축 부족으로 인해, 민간 투자 수요를 충족시키지 못하고 있다. 지난해 미국의 순수 저축 부족분은 9,710억 달러(약 1,376조원)에 달했으며, 1조2,000억 달러(약 1,700조원)의 상품 무역 적자에서 약 3,000억 달러(약 425조원)의 서비스 흑자를 뺀 것과 정확히 일치한다.
이런 상황에서 외국 자본은 이 격차를 메우며 미국 내 자산에 대규모로 투자하고 있고, 이는 기축통화국이자 세계 최대 자본시장을 보유한 미국의 구조적 특혜로 작용하고 있다. 존스홉킨스대학의 경제학자 스티브 행크(Steve Hanke)는 이를 '생산 이상의 소비를 가능케 하는 메커니즘'으로 평가하면서 트럼프 대통령이 무역 적자의 본질을 오해하고 있다고 비판한다. 요컨대 관세는 수입 억제에는 일시적 효과가 있을 수 있으나, 저축 증대나 투자 억제 없이는 무역 불균형 해소에 근본적 해결책이 될 수 없다는 지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