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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업은 일상이 됐고, 고용은 사라졌다” 막 오른 실업급여 1조원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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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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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꼭 알아야 할 소식을 전합니다. 빠르게 전하되, 그 전에 천천히 읽겠습니다. 핵심만을 파고들되, 그 전에 넓게 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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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 지급 1조원 '정체’ 아닌 ‘고착’ 양상
비정규직 폭증 이면엔 제도 설계 오류
건설 불황·제조 위축→고용 한파 장기화

한국의 실업급여 지급액이 석 달 연속 1조원을 넘어서며 고용 시장에 경고등이 켜졌다. 경기 침체 외에도 비정규직 증가, 수급요건 완화 등 제도적 문제까지 겹치며 구조적 장기화 조짐을 보이고 있다. 특히 건설·제조업 중심의 고용 붕괴가 현실화하는 가운데, 고용보험의 지속 가능성에 대한 우려 또한 커지는 양상이다.

고용시장에서 터진 경고등

13일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지난 4월 국내 구직급여 지급액은 1조1,571억원으로 집계되며 전년 동월 대비 9.7%(1,025억원) 늘었다. 이는 4월 기준 코로나19 확산으로 고용시장이 얼어붙었던 2020년 4월(1조1,580억원) 이후 두 번째로 큰 규모다. 구직급여를 신청한 사람 역시 지난달 10만3,000명으로 2020년 4월(12만9,000명), 2021년 4월(10만3,000명)에 이어 세 번째로 많은 수준을 보였다.

구직급여는 올해 2월(1조728억원)과 3월(1조510억원)에 이어 4월까지 3개월 연속 1조원 이상이 지급됐다. 구직급여 지급액이 3개월 연속으로 1조원을 초과한 것은 2020년 5~9월(5개월), 2021년 2~8월(7개월) 이후 역대 세 번째로, 자신의 의사와 무관하게 직장을 떠난 사람이 그만큼 많아졌다는 의미다. 구직급여 적용 대상이 넓어졌다는 점을 감안해도 고용시장이 코로나19 팬데믹 당시에 버금가는 불황이라는 게 구직자들의 주된 시각이다.

이를 증명하듯 취업시장의 각종 지표도 악화일로다. 구직자 1인당 일자리 수를 뜻하는 구인배수는 지난달 0.43을 기록하며 4월 기준 2020년(0.34) 이후 역대 두 번째로 낮은 수치를 그렸다. 이는 수요(구인자 수) 급증에서 기인한 것으로, 올해 들어 4월까지 구직자는 전년 동기 대비 14만2,000명 증가한 반면 구인자는 21만2,000명 감소했다.

다만 고용시장은 개선의 조짐을 보이고 있다는 게 고용부의 설명이다. 천경기 고용부 미래고용분석과장은 “구직급여 인원 증가 폭이 올해 1월부터 둔화하는 등 고용 상황이 나아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며 “고용보험 가입자 규모 증가나 계약 종료 후 구직급여를 타는 사람들이 꾸준한 증가세에 있는 점을 고려할 때 고용 상황이 나쁘다고 판단할 수치는 아니다”라고 말했다.

구조적 허점 반영한 결과 속속

이런 가운데 2019년 실업급여 지급 기간 및 금액 확대를 기점으로 비정규직 근로자가 급증했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중소기업 전문 민간 연구기관 파이터치연구원에 의하면 실업급여 지급액이 실직 전 평균 임금보다 1%p 증가할 때마다 비정규직의 비중 또한 0.12%p 상승하는 것으로 분석됐다. 정부는 2019년 관련 제도를 개편하며 실업급여 지급 수준을 평균 임금의 50%에서 60%로 인상하고, 지급 기간도 90~140일에서 120~270일로 연장한 바 있다. 이를 바탕으로 추산한 비정규직 근로자 증가분은 24만1,000명에 달한다.

보고서는 실업급여 제도가 비정규직 근로자를 증가시키는 원인으로 반복 수급 가능성을 지목했다. 자발적 퇴직자는 실업급여를 받을 수 없지만, 계약기간이 정해진 비정규직 근로자는 실업급여 수급이 상대적으로 용이하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근로자가 고용 안정성이 낮은 비정규직 근로를 반복하면서 실업급여를 지속 수급하려는 유인으로 작용한다는 지적이다. 파이터치연구원은 “높은 수준의 실업급여가 반복 수급을 조장하고, 종국에는 노동시장 왜곡을 심화하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고 우려의 목소리를 냈다.

이에 대한 근거로는 실업급여가 최저임금을 웃도는 ‘역전 현상’을 들었다. 실제 지난해 최저임금인 시급 9,860원을 기준으로 월 209시간을 근무한 근로자의 월 실수령액은 184만3,463원이지만, 실업급여 수급자가 받는 월 최소액은 189만3,120원에 이른다. 일하는 것보다 실업 상태에서 더 많은 돈을 받을 수 있는 기형적 구조가 형성됐다는 비판에 힘이 실리는 이유다.

실업급여 수급 요건의 느슨함도 문제점으로 거론된다. 현행법에 따르면 구직자들은 실직 전 18개월 중 180일만 일하면 실업급여 수급이 가능하다. 이는 독일(30개월 중 12개월), 스위스(24개월 중 12개월), 스페인(6년 중 360일) 등 주요국들과 비교해 매우 완화된 기준이다. 이와 관련해 고용부 관계자는 “실업급여 지급 기준이 완화되면서 반복 수급 사례가 늘어난 것은 사실”이라며 “실업급여의 취지를 유지하면서도 도덕적 해이를 방지할 수 있는 제도 개선을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전 산업 장기적 수축 국면 진입

전문가들은 실업급여 지급의 증가 배경으로 단순히 제도 악용을 넘어 건설·제조업을 중심으로 한 전반적인 산업 위축이 자리하고 있다고 입을 모았다. 특히 건설업계는 수주 급감, 자재비 상승, 고금리 부담이 겹치며 ‘사실상 고용 붕괴’ 수준의 인력 구조조정을 진행 중이라는 지적이다. 실제 고용부가 발표한 ‘행정 통계로 본 노동시장 동향’에 의하면 올해 2월 기준 건설업 실업급여 신규 신청자는 약 1만9,200명으로 전체 신규 신청자의 40%가량을 차지했다.

제조업 역시 사정은 다르지 않다. 고정비 절감과 자동화 설비 확대 속에서 중소 제조업체들은 신규 인력 채용을 꺼리고 있으며, 기존 인력도 ‘퇴사-단기고용-퇴사’의 사이클을 반복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은 노동시장의 유효 수요를 감소시키고, 실업률 통계보다 더 깊은 구조적 침체를 시사한다. 특히 청년층과 중장년층 모두 구직 기간이 길어지고 있다는 점은 고용 사다리 전체가 삐걱대고 있다는 신호로 해석된다.

문제는 건설업과 제조업의 침체를 단순한 경기 순환적 현상으로 치부할 수 없다는 데 있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은 매달 발간하는 경제 동향 보고서에서 “최근 우리 경제는 건설업 부진과 수출 여건 악화로 경기 하방 위험이 커지는 모습”이라며 “미국을 중심으로 통상 갈등이 심화하면서 세계 무역 위축에 대한 우려도 확대되는 상황”이라고 경고했다. 실업률 증가세가 실업급여 수급자의 증가로 이어지고, 종국에는 제도의 지속 가능성을 위협하는 요소로 작용할 것이란 관측에도 힘이 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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