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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취임 직후, 교육부 직원 절반가량 해고 '취약계층 학생' 지원은 다른 부처로 이전 계획 의회 승인 피해 교육부의 자금·기능 축소 추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연방 교육부를 해체하는 행정명령에 서명했다. 교육부의 완전한 폐지를 위해서는 의회의 승인이 필요한 만큼 행정명령을 통해 예산과 인력을 축소시켜 전통적인 교육부의 기능을 약화하겠다는 취지다. 앞서 지난해 대선 기간 트럼프 대통령은 '교육부는 미국 교육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며 교육부 폐지를 대선 공약으로 내세운 바 있다.
트럼프 "교육부 폐지에 모든 합법적 조치 동원할 것"
20일(현지 시각) 트럼프 대통령이 백악관 이스트룸에서 교육부를 해체하는 내용의 행정명령에 서명했다. 이 행정명령에는 린다 맥마흔 교육부 장관에게 교육부의 핵심 기능을 축소하는 데 필요한 모든 조처를 이행하도록 지시하는 내용이 담겼다. 트럼프 대통령은 "행정부는 모든 합법적인 조치를 동원해 핵심 수요를 제외한 교육부의 기능을 전면 폐지할 계획"이라며 "가능한 한 빨리 이행하겠다"고 밝혔다. 이어 "교육부는 우리에게 아무 도움이 되지 않는다"며 "학생을 주정부로 돌려보낼 것이며, 일부 주지사는 이를 매우 기쁘게 생각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미 교육부는 1조6,000억 달러 규모의 연방 학자금 대출 프로그램을 관리하고 저소득층 등 취약계층 학생에게 재정적 지원을 제공하는 등 평등한 교육 기회 보장을 위한 업무를 담당해 왔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해 대선 기간 교육부 해체를 공약으로 내세웠다. 취임 이후 대규모 구조조정을 단행해 교육부 인력이 4,133명에서 2,183명으로 감소했고 일부 지역교육청이 폐쇄됐다. 다만 저소득층 학자금 지원 등에 이용되는 '펠 그랜트'와 '타이틀 원' 프로그램, 특수장애 아동 등 취약계층을 위한 자금은 전액 보존돼 다른 기관과 부처로 지원 기능을 재분배할 예정이다.

1979년 교육부 신설 이후 오랜 기간 보수·진보 대립
교육부 폐지는 공화당이 오랜 기간 주장해 온 숙원사업이다. 미국은 전통적으로 주정부를 중심으로 독자적인 교육 체계를 발전시켜 왔으나, 1965년 초·중등교육법(ESEA) 재정으로 저소득층 학생을 지원하는 타이틀 원 프로그램이 도입되면서 연방 정부의 기능이 확대됐다. 이후 1979년 지미 카터 대통령이 연방 정부 내 하급 기관으로 교육부를 신설하면서 연방 정부의 개입이 본격화했다. 이에 대해 보수 진영은 주정부의 기능을 빼앗는 '월권행위'라고 비판했으며, 1981년 취임한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은 교육 정책 집행의 권한을 주정부에 되돌려야 한다며 교육부 폐지 논의를 공식화했다.
그러나 2001년 조시 W. 부시 대통령 주도한 아동낙오방지법(No Child Left Behind, NCLB)법과 2009년 버락 오바마 정부의 교육 개혁 프로그램 '정상을 향한 레이스(Race to the Top)'는 연방 정부의 교육 통제를 더욱 강화했다. 특히 학생 학업 성취도를 학교의 성과로 간주하고 이를 연방 정부의 교부금 지원 조건과 연계한 조치는 교육 현장에 과도한 부담을 준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주정부는 교육 자율성을 침해하는 연방 정부의 개입에 강력히 반발했고 이후 트럼프 집권 1기 당시 교육부를 폐지하고 노동부와 통합하는 법안이 발의됐지만, 정치적 지지와 합의를 확보하지 못한 채 폐기됐다.
최근에는 LGBTQ+에 대한 문화적 논란이 교육부에 대한 논쟁을 가열시켰다. 트럼프 대통령과 공화당 지지층은 교육부가 진보적 이념을 강요하며 교육을 정치화한다고 비판하며 주정부 중심 교육시스템의 복원을 강조하고 있다. '자유를 위한 엄마들(Moms for Liberty)'과 같은 보수 단체들은 성정체정 교육 규제, 트랜스젠더 스포츠 참여 금지 등을 요구하며 연방 정부의 개입을 최소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집권 2기를 맞은 트럼프 대통령도 교육부를 '자유주의 이념에 오염된 기관'이라고 비판하며 "1979년 설립 이후 막대한 예산을 사용하고도 학생들의 학업 성취도는 오히려 저하됐다"고 주장했다.
의회 승인 불투명해, 행정명령 통한 기능 축소로 선회
다만, 교육부 폐지가 실제로 이루어질지는 미지수다. 교육부 폐지를 위해서는 의회 승인이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워싱턴포스트(WP)는 "관련 법안 통과를 위해서는 상원에서 찬성표 60명이 필요하고, 이는 민주당 의원 최소 7명이 이 계획을 지지해야 한다"며 "현재로서는 결과를 예측할 수 없다"고 전했다. CNN은 "행정명령에 서명한 트럼프 대통령이 조만간 교육부 장관에게 교육부에 대한 구조조정 계획을 수립하라는 지시를 내릴 것으로 보인다"며 "동시에 트럼프 대통령은 의회가 교육부를 폐지하는 법안을 통과시키도록 압박할 예정"이라고 했다.
민주당을 비롯한 진보 진영은 즉각 반발했다. 이번 조치가 연방 지원금에 의존하는 수백만 명의 저소득층 학생과 교사들에게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란 지적이다. 하킴 제프리스 민주당 하원 원내대표는 "교육부를 폐지하면 공립학교의 수백만 명 어린이, 그들의 가족, 그리고 헌신적인 교사들이 피해를 볼 것"이라며 "학급 규모가 커지고, 교사들은 해고되며, 특수교육 프로그램이 삭감되고, 대학 등록금은 더욱 오를 것"이라고 비판했다. 소비자 보호 단체들도 이번 조치가 학생과 학부모에게 심각한 피해를 초래할 것이라며 강하게 반발했다.
한편 일부 공화당 의원들은 교육 재정을 주정부로 돌리는 '블록 보조금' 방식을 지지하고 있다. 이는 특정 프로그램에 대한 예산을 지정하는 대신, 연방 정부가 재원을 교부하면 주정부가 저소득층 학생과 장애 학생을 위한 지원 방안을 자율적으로 결정할 수 있도록 하는 방식이다. 이는 주정부가 지역의 특수한 교육 문제를 더 잘 이해하고 대응할 수 있다는 점에서 행정 비용을 절감하면서 정책의 유연성을 높일 수 있다. 하지만 보조금 집행의 투명성과 책임성이 부족할 수 있고 주정부 간의 재정 차이로 인해 지역 간 불평등이 커질 수 있다는 비판도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