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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권 2기 첫 의회 연설한 트럼프, 반도체지원법 폐지 시사 삼성전자·SK하이닉스, 전임 바이든 행정부와 보조금 계약 최악의 경우 보조금 축소하거나 전면 무효화 될 수도 있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전임 조 바이든 행정부가 제정한 '반도체 지원법(CHIPs ACT)' 폐지 방침을 밝혔다. 이에 따라 이 법에 근거해 보조금을 받기로 한 삼성전자, SK하이닉스의 피해가 우려된다. 트럼프 행정부가 보조금 지급을 전면 무효화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만큼 최악의 경우 국내 기업이 보조금 없이 미국 투자만 더 늘려야 하는 상황이 될 수도 있다.
트럼프 "반도체법 끔찍, 보조금은 무의미"
4일(현지시각) 트럼프 대통령은 집권 2기 첫 상·하원 합동 연설에서 "반도체법은 끔찍하다"며 "보조금을 받는 기업들은 수천억 달러의 보조금을 받으면서도 정작 미국을 위해 쓰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이어 "그들에게 주는 보조금은 우리에게 아무런 의미가 없다"며 "그 돈으로 부채를 줄이거나 더 필요한 곳에 사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는 전임 행정부를 겨냥한 발언으로 바이든 대통령은 반도체법에 따라 미국 인텔·마이크론, 대만 TSMC, 한국 삼성전자·SK하이닉스 등에 527억 달러(약 76조원)의 보조금을 지급하기로 했다.
트럼프 행정부는 관세 부과가 보조금 효과를 대신할 것으로 보고 있다. 고율의 관세를 부과하면 외국 기업이 관세를 피하기 위해 미국에 공장을 지을 수밖에 없다는 논리다. 이날에도 트럼프 대통령은 "다른 나라 기업이 미국에 공장을 지어 반도체를 생산하면 관세를 내지 않아도 된다"며 "미국 우선주의(America First) 전략을 통해 1조7,000억 달러(약 2,457조원)의 투자를 유치할 수 있었던 것은 내가 대선에서 승리한 결과"라고 강조했다. 앞서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으로 수입되는 반도체에 최소 25%의 관세를 물리겠다고 예고한 바 있다.
미국 내 투자 확대도 거듭 강조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오직 관세"라며 "이미 많은 기업이 미국에 공장을 짓고 있다"고 말했다. 이는 전날 대만의 파운드리 기업 TSMC가 미국 내 반도체 생산 확대를 위해 1,000억 달러(약 145조원)를 투자하겠다고 발표한 점을 의식한 발언으로 풀이된다. 업계에서는 TSMC가 트럼프 행정부의 반도체 정책을 피하기 위해 선제적으로 대규모 대미 투자를 결정했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TSMC는 향후 미국에 총 1,650억 달러(약 238조원)를 들여 반도체 공장 5곳을 신설할 계획이다.

25% 관세 부과에 보조금 폐지까지 리스크 확대
이날 발언대로 트럼프 대통령이 반도체법을 폐지할 경우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직접적인 영향을 피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삼성전자는 370억 달러(약 53조원)를 투입해 텍사스주 테일러에 반도체 파운드리 공장을 건설 중이며, 이와 관련해 47억4,500만 달러(약 6조8,000억원)의 보조금을 받기로 했다. SK하이닉스는 인디애나주 웨스트 라파예트에 AI 메모리 반도체용 패키징 공장을 설립하면서 최대 4억5,800만 달러의 직접 보조금과 5억 달러 대출을 확정한 상태다. 두 기업은 트럼프 대통령 발언에 별도 공식 입장을 내지 않았지만 향후 미 정부의 정책 방향을 면밀히 주시하고 있다.
그동안 업계에서는 보조금 지급이 미 정부와 각 기업 간 계약을 기반으로 하는 만큼, 전면 무효화는 어려울 것이란 전망이 많았다. 바이든 행정부는 트럼프 대통령이 반도체법을 무력화할 가능성을 우려해 임기 막바지에 보조금 지급 확정 계약을 연이어 체결하기도 했다.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이 직접 반도체법 폐지를 언급하면서, 계약이 백지화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게 됐다. 만약 미국 정부가 구상하는 관세 정책이 반도체 기업에 치명타가 되는 수준이라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미국 투자를 늘리면서도 보조금은 당초보다 적게 받거나 아예 받지 못할 가능성도 있다.
다만 미 정부가 자국 기업인 인텔과 마이크론을 비롯해 1,000억 달러 추가 투자를 약속한 TSMC에도 보조금을 주지 않는 것인지는 아직 불확실하다. 25% 관세 부과에 대한 구체적인 계획이나 세부 수치도 내놓지 않고 있다. 일각에서는 설령 반도체 관세가 부과되더라도 트럼프 대통령이 기대하는 만큼의 효과를 거두기는 어려울 것이란 분석도 나온다. 관세 정책이 효과를 내려면 현지에 수출기업을 대체할 생산 업체가 필요하지만, 메모리 반도체 분야에서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를, 파운드리 부문에서는 TSMC를 대체할 미국 기업이 사실상 없기 때문이다.
美 공급망 강화 기조 속 현명한 해법 모색해야
미 정부의 반도체 정책이 관세 부과나 보조금 폐지에 그치지 않고, 보다 공격적인 조치로 이어질 가능성도 있다. 미국은 코로나19 팬데믹 당시 극심한 반도체 공급 부족 사태를 겪으며 군사·우주항공용 반도체 등 국가 안보와 직결되는 첨단 반도체 공정을 자국에서 수행할 수 없다는 위기감을 느꼈다. 이에 2022년 바이든 행정부는 시스템 반도체의 90%, 메모리 반도체의 77%가 동아시아에서 생산되는 현실을 감안해 한국·대만·일본과 함께하는 '칩4 동맹'을 결성하고, 미국 내 반도체 생산 역량 확대하는 방식으로 글로벌 공급망 재편에 나섰다.
나아가 미 정부는 중국의 반도체 자립을 최대한 늦추고, 강력한 무역 통제와 동맹국 압박을 통해 중국의 반도체 생태계를 무력화하는 전략을 취하고 있다. 이와 관련해 한국에는 중국 반도체가 제3국을 우회해 들어오는 것을 차단하고, 칩4 동맹을 중심으로 대중국 수출 규제에 동참할 것을 강력히 요구하고 있다. 특히 칩4 동맹은 단순한 경제 협력을 넘어 안보 동맹의 성격을 띠고 있어 한국이 미국의 요구를 거부하기 어려운 구조다. 그러나 한국 반도체 산업은 여전히 미국보다 중국 시장 의존도가 훨씬 높아 향후 신중한 정책적 판단이 요구된다.
미국이 '팀 아메리카' 기조 아래 마이크론에 유리한 경쟁 구도를 조성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현재 D램과 낸드플래시 시장의 선두 주자인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를 대체할 미국 기업은 마이크론이 유일하다. 이와 관련해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달 13일 상호관세에 관한 행정명령에 서명하며 "대만 등 아시아 국가들이 우리 반도체 사업을 빼앗아 갔으나 우리는 그 사업을 되찾을 것"이라고 강조한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