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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세 발 물가 상승 압박 공정 무역 논리의 맹점 장기 성장 모멘텀 훼손 가능성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의 관세 정책이 미국 내 물가 상승 압력을 높이고 있다. 미 정부는 관세를 ‘공정 무역의 회복’이라 포장하지만, 그 실질적 비용은 해외 정부가 아닌 미국 소비자에게 고스란히 전가되는 모양새다. 수입물가가 최대 30%까지 치솟을 것으로 전망되는 가운데, 복잡하게 얽힌 공급망과 고착된 소비 기대가 관세 충격을 증폭시킬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6월 물가 전년 대비 2.6%↑, 예상치 웃돌아
지난달 31일(현지시간) 뉴욕타임스(NYT)에 따르면 이날 미 상무부 경제분석국(BEA)이 발표한 6월 PCE 물가지수는 전월 대비 0.3%, 전년 동월 대비 2.6% 각각 상승했다. 변동성이 큰 식품·에너지를 제외한 근원 PCE 물가지수도 전월 대비 0.3%, 전년 동월 대비 2.8% 올랐다. 이는 시장 예상치를 소폭 웃돈 수치로, 5월 PCE 물가가 전월 대비 0.1%, 전년 동월 대비 2.3% 상승한 데 비춰볼 때 물가 상승에 속도가 붙는 모양새다.
특히 관세 영향을 많이 받는 품목을 중심으로 재화 가격이 올랐다. 가구와 기타 생활용품 가격은 6월에만 1.3% 상승했고, 전자제품 등을 포함한 여가용품 가격도 0.9% 상승했다. 반면 서비스 물가 상승률은 둔화했다. 지난해 서비스, 특히 주거비가 물가 상승을 견인하던 상황과는 대조적이다.
이렇듯 미국 내 인플레이션은 이미 가시화되고 있다. 이는 일시적 흐름이 아닌 관세로 인한 구조적 비용 증가에서 비롯된 결과로 분석된다. 특히 전자제품, 가공식품, 건축자재 등 소비자 접점이 큰 품목을 중심으로 가격 상승이 뚜렷하게 나타나고 있다. 수입업체들은 급등한 원가를 감당하지 못하고 유통망에 전가하고 있으며, 소매업체는 불가피하게 가격 인상에 나설 수밖에 없는 형국이다. 일부 품목에 대한 관세 적용이 아직 본격화되기 전임에도, 소비자는 벌써부터 조기 구매에 나서는 등 체감 물가 상승을 반영한 소비 행태 변화가 감지되고 있다.
전문가들은 인플레이션이 하반기에 더욱 본격화될 것으로 보고 있다. 이미 생필품 가격은 줄줄이 오르기 시작했다. 미국 최대 가정용품 기업인 프록터앤드갬블(P&G)은 다음주부터 공식 가격 인상에 나설 예정이다. 아마존도 저가 생필품 위주로 가격을 올려 왔는데, 월마트와 나이키도 추가 가격 인상을 예고하고 있다. 또한 미국이 지난달 멕시코산 토마토에 17%의 반덤핑 관세를 부과한 이후 토마토를 주로 사용하는 식당들도 잇따라 가격을 올리고 있다. 이 같은 인플레이션은 한번 고착되면 되돌리기 어렵다. 가격이 오르면 공급자는 이를 쉽게 내리지 않으려 하고, 이는 실질 소비 여력 저하로 이어져 경기 전반의 둔화로 귀결될 수 있다.

트럼프 관세, 미 소매가격 인상 촉발
트럼프 행정부는 관세를 통해 수십억 달러의 세수를 확보하고 이를 국내 산업 재투자나 재정적자 감축에 활용하겠다는 복안을 내세운다. 제조업 리쇼어링(Reshoring, 해외진출 기업의 자국 복귀)을 유도하고, 재정 측면에서는 일석이조의 효과를 노리는 셈이다. 그러나 이 같은 논리는 중대한 비용 요소를 간과하고 있다. 관세로 인한 소비재 가격 상승은 사실상 역진적 간접세로 기능하며, 저소득층일수록 그 부담은 비례 이상으로 커진다. 실제 의류, 식료품, 생필품 등 필수재를 중심으로 가격이 오르면서 가계 지출이 구조적으로 확대되고 있고, 이는 소비 심리를 위축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게다가 관세 수입이 증가하더라도 그에 상응하는 소비자 후생 손실과 경제 효율성 저하를 감안하면 장기적 손해를 초래할 수도 있다. 전문가들의 분석에 따르면 이번 조치로 미국 가계는 연간 수천 달러의 추가 지출을 감내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특히 수입재를 원자재로 사용하는 제조업체는 수익성 악화에 따라 고용 축소나 설비 투자 위축을 고려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더 큰 문제는 인플레이션이 파급시키는 경제 전반의 파장이다. 물가가 오르면 실질임금이 달라지고, 이는 기업의 비용 구조와 금리 결정, 투자 심리에도 직간접적 영향을 미친다. 미 정부가 단기적으로 관세 수입을 확보하더라도, 중장기적으로 소비 여력의 위축은 경제 전반의 활력을 떨어뜨리는 역습으로 돌아올 수 있다는 의미다.
글로벌 시장 불확실성 확대
관세 정책의 후폭풍은 미국 내부에만 머물지 않는다. 멕시코, 브라질은 농산물과 산업재의 핵심 수출국이지만, 미국 시장 접근성이 저하되면서 가격 경쟁력을 상실하고 있다. 캐나다 역시 미국의 전통적 우호국임에도 불구하고 자동차 부품, 목재, 식품 등 주력 수출 품목이 관세 적용 대상에 포함되며 타격을 받고 있다.
현재 이들 국가는 기로에 섰다. 미국의 요구를 수용해 양자 협상에 응할 것인지, 아니면 유럽연합(EU)이나 중국과의 경제 협력을 확대해 미국 중심의 공급망에서 이탈할 것인지 전략적 판단을 내려야 하는 상황이다. 실제로 일부 국가는 이미 EU 및 아시아 경제권과의 교역 강화에 나서고 있으며, 이는 결과적으로 미국 중심의 글로벌 무역 구조를 느슨하게 만드는 움직임으로 이어지고 있다.
이렇듯 코로나19 팬데믹과 지정학적 충격을 견디며 간신히 안정 궤도에 진입한 세계 경제는 또다시 불확실성의 소용돌이에 휘말리고 있다. 거시경제 관점에서 볼 때 이 같은 교역 재편은 글로벌 경기 회복 모멘텀의 발목을 잡을 수 있다. 미국의 보호주의적 정책이 단일 국가의 문제가 아닌 글로벌 공급망 전체를 흔들며 경제의 상호 의존성과 구조적 연계를 파괴하는 양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