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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미국, 상대 제품 ‘보이콧’ 유럽 소비자 44%, “미국 제품 사용 안 해” 감정적 대응, 관세만큼 ‘위험’
본 기사는 The Economy의 연구팀의 The Economy Research 기고를 번역한 기사입니다. 본 기고 시리즈는 글로벌 유수 연구 기관의 최근 연구 결과, 경제 분석, 정책 제안 등을 평범한 언어로 풀어내 일반 독자들에게 친근한 콘텐츠를 제공하는 데 목표를 두고 있습니다. 기고자의 해석과 논평이 추가된 만큼, 본 기사에 제시된 견해는 원문의 견해와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관세 전쟁과 지정학적 갈등의 영향이 전 세계로 확산하는 가운데, 대서양을 사이에 둔 유럽과 미국 소비자들의 분위기도 심상치 않다. 상대방 국가의 상품 구매를 거부하거나 피하는 ‘소비자 민족주의’(consumer nationalism)가 급격히 부상하고 있다. 수위가 2019년 일어났던 한국-일본 간 무역 분쟁 못지않은데, 규모를 감안할 때 글로벌 파급효과는 훨씬 클 것이다.

유럽-미국 간 ‘소비자 민족주의’
유럽통계청에 따르면 2023년 1월부터 작년 12월까지 유럽의 미국 상품 수입은 12.3% 줄었다. 한때 혁신과 지위의 상징이던 테슬라 수입은 올해 상반기에만 45% 감소했다. 미국 소비자들이 보르도 와인과 독일 화이트 와인, 프랑스산 치즈를 멀리하는 것도 가격이 아닌 ‘충동적 애국심’ 때문이다.
그러니까 관세가 아니라 ‘정체성’ 때문이다. 최근 유럽중앙은행 조사에 따르면 유로존 소비자의 44%가 가격에 상관없이 미국 제품을 사용하지 않겠다고 답했다. 1/4에 가까운 미국인들 역시 관세로 인한 가격 상승 전부터 유럽산 주류를 거를 예정이다.

주: 동기별, 관세율별 대체 의향(좌측), 가격(Price), 국가 선호(Preference), 관세율 5%(청색), 관세율 10%(노랑), 관세율 20%(주황) / 대체 동기 비중(우측), 기타, 대안 부재, 국가 선호, 가격(위부터)
글로벌 무역 ‘주요 변수’
숫자가 뒷받침한다. 지난 6월 미국의 프랑스산 치즈 수입은 전년 동기 대비 15% 줄었는데 이는 전체 유제품 소비 감소율의 세 배에 달한다. 독일 화이트 와인 역시 미국산 와인 가격이 오르는 상황에서 수입이 12%나 감소했다. 반대로 미국 전자제품의 유럽 수출은 작년에만 31억 유로(약 5조원) 하락했고 유럽 주류업계는 관세와 소비자 저항으로 인한 미국 수요 20% 감소에 대비하고 있다.
이 정도면 ‘소비자 민족주의’가 더 이상 주변부가 아닌 주류 정서로 자리 잡았다고 해도 무리가 없다. 소득 수준이 높을수록 민족주의가 더 강해지는 것도 흥미로운 현상이다. 저소득 계층의 63%가 외국 상품을 국산으로 대체하겠다고 한 반면, 고소득층은 87%가 그러겠다고 한 것이다. 어찌 됐든 전통 경제학이 상정한 합리적 소비자와는 사뭇 다른 모습이 아닐 수 없다.

주: 소득 수준 상위 20%부터 상위 80%까지(Q1~Q5), 재량 소비 상위 20%, 재량 소비 상위 80%(좌측부터)
거시경제 영향 ‘심각’
거시경제적 영향은 심각하다. 유럽중앙은행-국제통화기금(IMF) 공동 연구에 따르면 관세와 보이콧(boycott) 영향으로 올해 유로존 GDP의 0.6%가 깎여 나가고, 미국 역시 0.4%의 악영향을 받을 것으로 예상된다. 관세 하나만 생각했을 때보다 피해 규모가 두 배로 늘어나는 셈이다. 관세의 직접적 영향을 받지 않는 독일 정밀 기계 산업에서도 일자리가 줄어드는 것을 보면, 이제 국가적 감정은 전체 산업에 영향을 미치는 변수로 판단된다.
해당 현상이 벌어진 데는 교육기관도 책임을 면하기 어렵다. 15세 학생의 1/3만이 기본적인 금융 이해력을 가졌고, 글로벌 경제의 상호 의존성을 설명할 수 있는 교사가 전체의 1/3에도 미치지 못한다. 당연히 학생들은 감정과 민족주의를 앞세운 소셜미디어 담론에 취약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지금도 늦지는 않았다. 무역 관련 내용이 윤리학과 수학은 물론 외국어 과목에까지 과목 전반에 걸쳐 통합적으로 포함돼야 한다. 학생들은 데이터 분석을 통해 10% 관세가 어떻게 식료품 가격을 올리고 제조업 임금을 억누르는지 이해할 필요가 있다. 이러한 교과과정이 유럽연합(EU) 전체가 아니라 일부 국가에서만 실시되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그나마 시행 국가에서 보이는 결과는 희망적이다. 글로벌 무역을 배운 학생들은 경제적 지식만이 아니라 자국 역사에 대한 이해도까지 높아졌다. 국가 간 상호 의존성을 배우는 것은 정체성 약화가 아니라 강화로 이어진다.
비합리적 소비, “대가 치를 것”
지금 벌어지는 현상은 전통 경제학이 예측하지 못한 ‘상징’(symbols)의 중요성을 보여준다. 유럽 소비자가 미국 제품을 사지 않으려고 앱을 뒤지거나, 미국인들이 평소 마시던 유럽 와인을 거르는 이유가 가격이나 품질이 아닌 ‘국적’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민족주의가 거래에 개입하면 경제적 번영이 뒤로 밀릴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근본적인 문제 해결의 주체는 소비자들에게 있다. 충동에 의한 소비가 장기적으로 어떤 영향을 미칠지 당사자들이 합리적으로 판단해야 한다. 정책 당국은 경제적 이유가 아닌 상징적 관세(symbolic tariffs) 시행을 재고할 필요가 있고, 학교는 학생들이 경제 이슈를 이해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경제 활동에 비합리성이 개입하면, 소비자들이 최종적인 대가를 치를 수밖에 없다.
본 연구 기사의 원문은 Flags in the Shopping Cart: Why Transatlantic Consumer Nationalism Now Threatens Global Growth | The Economy를 참고해 주시기 바랍니다. 2차 저작물의 저작권은 The Economy Research를 운영 중인 The Gordon Institute of Artificial Intelligence에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