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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이란 군사 충돌 격화 이스라엘, 이란 정권 붕괴 노렸나 미국·러시아, 중재 필요성 언급하면서도 개입 자제

이스라엘과 이란의 군사 충돌 강도가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밤낮을 가리지 않고 이어지는 공습에 양국의 주요 시설이 줄줄이 타격을 입고, 곳곳에서 인명 피해가 속출하는 양상이다. 미국, 러시아 등 중재자 역할을 수행해야 할 주요국들은 휴전 합의의 필요성을 거론하면서도 양국 간 갈등에 직접적으로 개입하지는 않으며 관망세를 유지 중이다.
교전 이어가는 이스라엘-이란
15일(이하 현지시각) 이란 현지 언론에 따르면, 이날 정오 무렵 테헤란 도심 발리에아스르 광장 인근에서 폭발음이 울렸다. 오후 3시 30분쯤에는 테헤란 북부 지역에서도 연쇄 폭발이 발생했다. 테헤란 경찰청과 정보부 관련 건물이 이스라엘의 공습으로 인해 공격받은 것이다. 이후 약 1시간 뒤 이란 국영 IRNA통신은 이란이 이스라엘 텔아비브, 아슈켈론, 하이파 등에 대규모 미사일 공격을 개시했다고 알렸다. 이란이 이스라엘을 향해 대낮에 미사일 공격을 감행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날 저녁에도 충돌은 이어졌다. 이란 혁명수비대는 이스라엘을 향해 또다시 미사일을 발사했다고 발표했으며, 국영방송을 통해 이스라엘 시민들에게 중요 시설 주변에 접근하지 말 것을 경고했다. AFP와 로이터통신은 이스라엘 텔아비브와 예루살렘 등지에서 폭발음과 사이렌 소리가 들렸다고 전했으며, 이란 반관영 타스님통신은 이스라엘의 벤구리온 국제공항이 미사일 공격을 받았다고 보도했다. 이는 앞서 이스라엘군이 이란 마슈하드 공항을 공격한 것에 대한 보복으로 풀이된다.
하루 종일 이란의 공격이 지속되자 이스라엘은 이란 서부의 미사일 관련 시설 수십 곳을 목표로 한 일련의 공습을 시작했다고 발표, 본격적인 반격에 나섰다. 해당 공격으로 인해 이란 외무부 건물 등이 피해를 본 것으로 전해진다. 사이드 카티브자데 외무차관은 소셜미디어(SNS) X(구 트위터)를 통해 민간인과 외교관을 포함한 다수의 부상자가 발생했다고 전하며 “이스라엘이 외무부를 고의로 공격했다”고 비난했다.
격화하는 갈등 속 인명 피해는 눈에 띄게 급증하고 있다. 이스라엘 구호 당국은 사흘간의 공격으로 최소 13명이 사망하고 380명이 다쳤다고 발표했다. 이란 보건당국은 이스라엘의 공습으로 224명이 숨졌다고 전했으며, 미국 인권 단체를 인용한 AP통신은 이란 내 사망자가 406명에 달한다고 보도했다. 우크라이나 외무부는 이스라엘 남부 바트얌 공습으로 자국민 5명이 숨졌다고 밝혔다. 이 중엔 어린이 3명이 포함돼 있다.
"핵 개발 막아라" 이스라엘의 선제 타격
이란과 이스라엘의 군사적 충돌은 지난 13일 이스라엘의 선제 타격에서부터 시작됐다. 당시 이스라엘은 전투기 수십 대를 동원해 이란 핵시설과 군사 시설 수십 곳을 타격했다며 이란에 대한 공격 사실을 확인했다.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는 "이스라엘의 생존을 위협하는 이란을 격퇴하기 위해 '일어서는 사자(Rising Lion) 작전'을 개시했다"며 이어 "이란 핵물질 농축 계획의 심장부를 공격했고, 목표물 중에 이란의 군 지휘관과 미사일 계획도 포함돼 있다"고 설명했다.
'일어서는 사자 작전'의 개시 배경에는 이란의 핵무기 개발이 있다. 공격 감행 이후 네타냐후 총리는 이란이 핵폭탄 9개 분량의 고농축 우라늄을 생산했고, 이르면 수개월 내로 무기화에 성공할 가능성이 있다고 주장하면서 "이는 이스라엘의 생존에 대한 분명하고 즉각적인 위협"이라고 강조했다. 또 "80년 전 유대인은 나치 정권이 자행한 홀로코스트의 희생자였다"며 "오늘날, 유대 국가인 이스라엘은 이란 정권이 초래할 핵 홀로코스트의 희생자가 되길 거부한다"고 말했다.
이스라엘이 공습이라는 극단적인 방법을 채택한 것은 미국과 이란의 핵 협상이 수개월째 공회전하고 있기 때문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 행정부는 지난 4월부터 이란과 핵 협상에 돌입해 5차례 회담을 진행했지만, 지금까지 이렇다 할 성과를 내지 못했다. 이란의 우라늄 농축 능력 인정 여부를 두고 양국 간 이견이 좁혀지지 않은 탓이다. 미국은 이란의 우라늄 농축을 금지해야 한다고 보는 반면, 이란은 우라늄 농축 완전 금지 방안은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15일에 예정돼 있던 6차 핵 협상은 이스라엘의 선제공격으로 인해 취소됐다.

이란 '정권 교체' 가능성
일각에서는 이스라엘의 선제 공습이 이란의 '체제 붕괴'를 유도하기 위한 포석이었다는 분석도 나온다. 이란 현 체제와의 공존 가능성이 낮다고 판단한 이스라엘이 아예 이란 정권을 교체하기 위해 움직이고 있다는 시각이다. 실제 네타냐후 총리는 15일 폭스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이란 정권은 매우 약하며, 이스라엘의 군사 공격으로 정권이 교체될 가능성도 있다”고 발언한 바 있다.
현재 이란은 히잡 의무화 반대 시위를 비롯한 젠더·세대·소수민족 시위가 이어지면서 내부적 균열을 겪는 중이다. 여기에 전쟁으로 인한 경제 위기까지 본격화할 경우, 민심이 한층 악화하며 정권 교체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질 수 있다. 향후 이스라엘이 권부(權府) 주요 인사를 하나하나 정밀하게 제거하는 ‘참수 작전’을 단행한다면 정부가 기능 부전에 빠지며 체제 붕괴가 한층 가속화할 가능성도 존재한다.
이란의 정권 교체를 원하는 것은 미국과 러시아 등 주요국도 마찬가지다. 이들 국가는 수일간 지속된 교전 상황에 직접 개입하지 않고 관망세를 유지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15일 캐나다에서 열리는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 참석을 위해 출국하기 전 백악관에서 취재진과 만나 "나는 (이스라엘과 이란 사이에 휴전) 합의가 이뤄지길 바라며, 협상할 때가 왔다고 생각한다"면서도 "때로는 국가들이 먼저 싸워서 해결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스라엘에 이란에 대한 공습을 중단하라고 요구했나'라는 물음엔 "나는 그것에 대해서는 말하고 싶지 않다"고 즉답을 피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역시 이스라엘의 이란 공습 직후 양국 정상과 잇달아 통화를 진행하며 중재자 역할을 자처하고 있으나, 실질적인 군사 지원 등을 제공하지는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