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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센티브·배송비 조정 및 가격 인상 수입차 중심 가격 인상 본격화 2021~2022년 카플레이션 재연되나

미국에서 자동차 ‘가격 인상 러시(rush)’ 현상이 생기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의 수입차 25% 관세 폭탄 여파로 글로벌 완성차들이 소비자에게 비용을 전가하기 시작한 것이다. 업계에선 중국과 더불어 양대 세계 자동차 시장인 미국에서 2021~2022년 차량용 반도체 공급난 때 닥친 ‘카플레이션(자동차+인플레이션)’이 재연돼 시장이 위축될 것이란 위기감이 커지고 있다.
평균 판매가 한달 만에 5만 달러 넘어
12일 시장조사업체 콕스 오토모티브에 따르면 5월 미국 신차 권장소비자 가격은 평균 5만968달러로 전년 동월 대비 2.1% 상승했다. 올해 들어 최고치다. 실제 이탈리아 페라리가 4월 미국 내 판매가격을 10% 올린 데 이어 독일 BMW는 지난달 고성능 스포카 'M2' 등 일부 모델의 가격을 4% 올렸다. 미국 완성차 중에선 포드가 멕시코 생산 3개 차종의 가격을 최대 2,000달러(약 280만원) 올리기로 했다. 일본 스바루는 지난 5월까지 전체 라인업 가격을 평균 4.2% 인상했다.
일부 브랜드는 소비자들에게 주던 각종 혜택을 축소하는 방식으로 우회 대응하고 있다. 콕스 오토모티브에 따르면 지난 4월 미국에서 신차 인센티브는 신차 가격의 6.7%로 지난해 7월(8.0%) 이후 가장 낮은 수준을 기록했다. 완성차업체와 현지 딜러가 할인을 비롯해 캐시백·저금리 금융 등을 모든 혜택을 줄인 것이다. 신차를 구입할 때 지불해야 하는 배송비를 40달러가량 인상하는 경우도 있다.
업계는 2026년형 모델이 출시되는 오는 7월 이후를 가격 인상의 분수령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 이미 스웨덴 볼보는 2026년형 모델의 미국 차량 판매 가격을 4% 올리기로 결정했다. 독일 메르세데스 벤츠도 2026년형 모델에 대해서 3~5%의 가격 인상을 예상하고 있다. 스바루 역시 자동차 가격을 1,000~2,000달러 인상할 것으로 알려졌다. 현대자동차는 미국에서 가격 인상을 발표하진 않았지만, 3년 무상 수리를 2026년형 모델부터 제공하지 않기로 했다.
트럼프 관세, 중고차 시장도 직격
자동차 가격 인상 압력이 고조되면서 현지 소비자 수요도 점차 신차에서 중고차로 이동하는 양상이다. 콕스 오토모티브에 의하면 5월 초 기준 자동차 딜러가 보유한 중고차 재고는 43일분으로, 같은 5월 초 기준으로 코로나19 팬데믹 시기인 2021년 이후 가장 낮았다. 중고차 시장 재고는 4월 중순 이후 늘어나는 게 일반적이다.
재고가 줄어들면서 중고차 가격도 오르고 있다. 콕스 오토모티브는 미국 내 50개 베스트셀러 모델을 기준으로 한 중고차 평균 가격이 최근 2개월 연속 상승해 2만9,000달러(약 4,000만원)에 달한다고 밝혔다. 자동차업계에서는 관세가 신차 가격을 올리기에 앞서 중고차 가격에 먼저 영향을 줬다고 본다. 신차 가격이 오르기 전 소비자들이 빠르게 자동차를 구매하기 위해 중고차 시장으로 몰리며 가격을 끌어올렸다는 것이다.
실제 지난 4월 맨하임 중고차 가격지수는 208.2(1997년 1월=100)로 1년 전보다 4.9% 상승했다. 5월에는 소폭 감소했지만 업계에서는 관세가 유지된다면 중고차 가격이 팬데믹 시절과 비슷한 수준까지도 오를 수 있을 것으로 전망한다. 트럼프 대통령이 전 세계 각국을 상대로 벌이는 관세 전쟁의 화살이 자국민 생활을 겨냥하는 모양새다.

車 수리비·보험료 줄줄이 인상 불가피
이에 업계에서는 가격 인상 러시로 올 하반기부턴 미국 시장이 쪼그라들 것이란 우려가 커지고 있다. 당장은 관세 부과 전 조금이라도 싸게 자동차를 구매하려는 이들이 몰리며 단기적으로 판매가 늘고 있지만 이 현상이 길게 가지 않을 것이란 지적이다. 게다가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달 3일부터 수입 자동차 부품에 25% 관세를 부과하면서 미국 내 자동차 가격과 수리비, 보험료 등도 줄줄이 인상될 것이란 관측이 짙은 상황이다. 이는 미국 내 생산 차량에도 영향을 줄 수 있는 만큼 자동차 가격의 추가 인상이 불가피하다. 미국에서 조립되는 자동차도 엔진, 변속기, 배터리 등 핵심 부품을 해외에서 조달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이에 자동차 제조업체들도 혼란에 빠졌다. 짐 팔리 포드 최고경영자(CEO)는 관세와 관련해 “와셔나 배선, 카펫 같은 단순 부품조차 미국 내에서 구매가 어렵다”고 밝혔다. 컨설팅업체 KPMG의 미국 자동차산업 담당 리더 레니 라로카는 “부품 공급업체들은 이미 수익성이 낮은 상태며 이번 관세는 감당하기 어려운 수준”이라고 우려했다.
GM은 이번 조치로 인해 올해 최대 50억 달러(약 6조7,000억원)의 손실이 발생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 GM은 관세 영향을 반영해 캐나다 온타리오주 오샤와에 위치한 픽업트럭 조립라인의 세 번째 교대조를 폐지하겠다고 밝힌 상태다. 이 조치로 조합원 700여 명이 감원되고 부품업체 근로자 약 1,200명이 추가로 일자리를 잃을 것으로 예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