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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시아포럼] ‘유럽은 태평양 신경 쓸 처지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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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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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영학 전공에 관리자로 일했고 재무, 투자, 전략, 경제 등이 관심 분야입니다. 글로벌 전문가들의 시선을 충분히 이해하고 되새김질해 그들의 글 너머에 있는 깊은 의도까지 전달하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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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인도-태평양 전략’은 “말 잔치”
개발 원조, 중국 규모 ‘감당 못 해’
태평양 포기하고 ‘유럽 집중’이 정답

본 기사는 VoxEU–CEPR(경제정책연구센터)의 칼럼을 The Economy 편집팀이 재작성한 것입니다. 원문 분석을 참조해 해석과 논평을 추가했으며 본 기사에 제시된 견해는 VoxEU 및 CEPR과 반드시 일치하지 않음을 밝힙니다.

태평양에서 미중 간 패권 다툼이 본격화하면서 유럽의 설 자리는 갈수록 줄고 있다. 말로는 거창한 ‘인도태평양 전략’(Indo-Pacific strategy)을 외치지만 유럽의 사정은 여의치 않다. 예산은 부족하고 시급한 역내 현안이 산적했다. 중국이 영향력 확대를 위해 태평양에 쏟아붓는 규모를 감당할 방법은 없다.

사진=ChatGPT

유럽의 ‘태평양 영향력’ 갈수록 “축소”

십 년 전만 해도 유럽연합(EU)은 글로벌 개발원조의 큰 손으로 자처하며 투발루(Tuvalu, 태평양 오세아니아 지역 섬나라)부터 사헬(Sahel, 아프리카의 지역)까지 두루두루 자금을 댔었다. 하지만 지금은 우크라이나 전쟁과 에너지 가격 폭등, 국방 예산 증가 등으로 여유가 아예 사라졌다. 태평양 지역 교육에 투자했던 돈들은 이제 동유럽 방위를 위한 자주포와 미사일 시스템을 사는 데 쓰이고 있다. 이제 태평양에서 유럽의 경제적 존재감은 상징적 제스처로만 남았다.

여기에 도널드 트럼프(Donald Trump) 미국 대통령이 미국 국제개발청(USAID) 지원 예산을 없애다시피 하며 미국의 태평양 원조도 곤두박질쳤다. 그 틈을 노린 중국이 빠르게 들어와 눈에 띄는 투자를 시전하고 있다. 미국의 예산 삭감 조치가 있은 지 몇 주도 지나지 않아 중국의 사절들이 피지와 솔로몬 제도를 방문해 별 제약조건 없이 후한 기반 시설 투자를 약속했다. 예산 부족과 개발 지연에 시달리는 지역 리더들에게 중국과 유럽의 태도는 매우 상반돼 보였을 것이다.

미국, 유럽 빠진 자리 중국이 ‘점령’

숫자를 보자. 중국의 태평양 지역 원조는 2021년 8천5백만 달러(약 1,153억원)에서 올해 2억6천만 달러(약 3,528억원)로 증가했다. 반면 유럽의 규모는 매년 1억~1억1천만 달러(1,357~1,493억원) 수준에서 나아질 줄을 모른다. 유럽이 태평양 도서국 주민 1인에게 4년마다 110유로(약 18만원)를 쓰고 있다면 중국은 7배에 해당하는 예산을 뿌리고 있는 셈이다. 이런 상황에서 EU가 태평양의 지정학적 중요성을 강조하는 것은 말 잔치에 불과하다.

태평양 도서 지역 공적개발원조 규모 추이(단위: 백만 달러)
주: 유럽연합(EU), 미국(US), 중국(China)(보기 좌측부터)

유럽의 인도-태평양에 대한 모호한 접근도 문제다. 역동적 경제를 자랑하는 남아시아 및 동남아시아와 원조에 의존하는 남태평양 도서국을 하나로 묶는 것 자체가 말이 되지 않는다. 실제 경제적 영향력도 미미하다. 자금 압박에 시달리는 유럽 국가들에 키리바시(Kiribati, 태평양 도서국)의 담수화 시설에 투자하는 것은 그야말로 생각 없는 짓이다.

우크라이나 전쟁, 이민 등 역내 상황 ‘열악’

역내 정치적, 재정적 상황도 관련성 없는 해외 투자를 용인하지 않는 분위기다. 작년 한해 유럽이 처리한 망명 신청자만 900,000명을 넘는다. 도시 곳곳이 주택난에 시달리고 학교는 수용인원을 넘으며 방위 예산은 하늘 높이 치솟고 있다. 이 상황에서 3억 달러(약 4천억원)짜리 사모아 항만 건설에 투자하는 것은 분별없는 짓으로 보일 게 분명하다.

EU 방위비 지출 및 태평양 지역 원조 규모 추이(2020~204년, 단위: 십억 유로)
주: 방위비 지출(청색), 태평양 원조(회색)

역사적 사실을 봐도 알 수 있다. 로메 협약 설탕 할당제(Lomé sugar quotas, 유럽이 아프리카, 카리브해, 태평양 국가들에 설탕 구매 우선권을 허용)나 코토누(Cotonou, 서아프리카 항구 도시) 투자 약속은 우선순위 변경과 책임자 교체 등으로 제대로 실행되지 못했다. 유럽 국가 중 유일하게 태평양 지역에 영토를 보유한 프랑스조차 경비정 몇 척 운용하는 것이 전부다.

위성 기술이나 산호 연구 등 틈새 전략(niche strategy)을 말하는 담당자도 있지만 이 역시 현실을 모르는 소리다. 우크라이나 전쟁과 발칸 반도 이민을 안정화하기도 바쁜 상황에 인근 지역도 아닌 태평양 도서국에 돈을 쓴다는 것은 설득력을 얻기 어렵다. 유럽 가까이 위치한 몰도바가 태평양 산호섬보다는 전략적 가치가 높다.

태평양 포기하고 유럽에 집중해야

그렇다면 현재로서는 역내 저항을 최소화하는 것이 가장 현명한 방법이다. 중국의 원조 외교 방식을 따라 하려다가는, 무너져가는 지역에 책임 못 질 융자를 약속하고 역내에서 역풍을 맞는 과거의 방식을 되풀이하게 된다. 도로 복구나 홍수 대비 시설도 못 갖추고 있는 유럽 국가들에 먼 이웃에 대한 원조가 곱게 들릴 리 없다.

태평양 원조가 기후 변화 및 향후 이민자 유입 문제를 완화할 수 있다는 주장도 있지만 설득력은 없다. 유럽 기후 위기의 대부분은 지중해 가뭄과 중부 유럽 홍수에 기인한다. 태평양의 태풍 때문이 아니다. 유럽 기후 및 이민 문제의 최전선은 북아프리카와 동남부 유럽이지 산호해가 아니다.

결론적으로 유럽이 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은 태평양에서 철수하는 것이다. 경제적 이익이나 전략적 가치가 별로 없고 기회비용은 너무 크다. 멀리 떨어진 태평양 열도에서 중국과 자금 경쟁을 벌이는 것은 유럽 납세자들을 위해서도 태평양 주민들을 위해서도 득 될 게 별로 없다. 대신 영향력과 중요성이 큰 이웃들에게 집중하는 것이 낫다. 자제하는 것이 최선의 전략이다.

원문의 저자는 니콜라스 로스 스미스(Nicholas Ross Smith) 캔터베리 대학교(University of Canterbury) 국립 유럽 연구 센터(National Centre for Research on Europe) 선임 연구원 외 1명입니다. 영어 원문 기사는 Europe’s faltering statecraft in the Pacific | EAST ASIA FORUM에 게재돼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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