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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제조 2025' 발표 후 10년, 中 제조업 경쟁력 급상승 美 견제 뚫고 자체 역량으로 기술 굴기 성공 中, 반도체 제조 장비 중심으로 차세대 계획 수립 중

중국이 2015년 5월 발표한 첨단 기술 확보 전략 ‘중국제조(中國制造) 2025’가 이달로 10주년을 맞았다. 지난 10년간 중국은 정부의 '지원사격'을 등에 업고 다양한 분야에서 글로벌 패권을 확보했다. 미국이 수출 통제 등 강력한 제재 조치를 쏟아내며 견제를 이어 왔음에도 불구, 자체 역량을 활용해 기술 자립에 성공한 것이다.
시장 호령하는 中 제조업
27일 제조업계에 따르면 중국은 지난 10년간 ‘중국제조 2025’ 전략을 발판 삼아 상당한 수준의 제조업 경쟁력을 손에 넣었다. 특히 △전기차(BYD) 및 전기차용 배터리(CATL) △태양광(론지솔라) △5G 통신(화웨이) △드론(DJI) △고속철도(CRRC) △전력 설비(국가전력망공사) △신소재(바오우스틸) 등 분야에서는 적어도 한 개 이상의 세계 1위 기업이 탄생했다.
중국의 제조업이 급성장한 배경에는 중국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이 있다. 시장조사업체 로디엄그룹에 따르면 중국 정부가 주요 산업체에 제공한 세제 혜택은 2018~2022년 연평균 29%씩 늘었다. 지난 2022년 중국 기업들이 누린 세제 혜택은 1,850억 달러(약 250조원)에 달한다. 국가 기금을 통한 직접 투자 규모도 2020년 기준 520억 달러(약 71조2,200억원)로 2015년 대비 5배 이상 증가했다.
중국 정부는 규제 혁신에도 힘을 쏟았다. 중국 자율주행·전기차 시장의 성장 과정을 살펴보면 중국 정부의 이 같은 노력이 여실히 드러난다. 중국 정부는 2021년 자율주행차 관련 법·제도를 대대적으로 개편해 수도 베이징과 상하이·광저우·우한 등 총 16개 지역을 ‘커넥티드카(스마트카) 및 스마트 도시 공동 개발 시범 도시’로 지정했다. 2022년엔 우한, 충칭, 베이징 등 지역에서 인간 관리자가 없는 ‘완전 무인(레벨 4) 자율 주행’ 택시 서비스 운행을 허가하기도 했다. 기술·가격 경쟁력을 갖춘 자율주행 기업들은 정부가 깔아준 ‘판’에 올라타 시장 경쟁력을 대폭 제고할 수 있었다.

미국의 '방해 공작'
시장은 중국이 미국의 견제 속에서도 기술 굴기를 이뤄냈다는 점에 주목하고 있다. 미국은 지난 수년간 중국의 제조업 육성 정책에 훼방을 놓아 왔다. 가장 대표적인 대응은 기술 수출 규제다. 미국은 자국 기업들이 중국 기업에 첨단 반도체, 장비, 소프트웨어 등을 수출하지 못하도록 제한했다. 특히 2020년 이후에는 화웨이, SMIC 등 주요 중국 기업을 블랙리스트에 올리고, 이들과의 기술 협력을 사실상 차단했다.
이에 더해 미국은 동맹국과의 공급망 협력 강화를 통해 중국을 고립시키려 했다. 한국, 대만, 일본 등 반도체 강국들과 긴밀한 협력 관계를 구축하고, 중국을 배제하는 기술 협의체 결성을 추진해 중국의 기술 자립을 막은 것이다. 중국의 해외 기술 인수에도 제한을 뒀다. 중국 국영 기업이나 투자 펀드가 미국이나 유럽의 첨단 기술 기업을 인수하려 할 경우, 미 외국인투자심의위원회(CFIUS)가 나서 선을 긋는 식이다. CFIUS는 미국 안보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외국인의 미국 기업 투자를 검토·제한·차단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진 정부 간 위원회다.
그러나 미국의 이 같은 제재 조치는 별다른 성과를 내지 못했다. 미국의 견제가 오히려 중국에 위기의식과 기술 자립 동기를 심어주는 계기가 됐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해 한 시장 관계자는 "미국의 제재를 맞닥뜨린 중국은 ‘자립자강(自立自强)’이라는 슬로건 아래 국산화 전략을 강화했다"며 "미국의 규제는 단기적으로 중국에 타격을 입혔을지 모르나, 중장기적으로는 중국의 기술 자립을 부추기는 역효과를 냈다"고 짚었다.
제2의 '중국제조 2025' 온다
중국제조 2025 전략을 성공적으로 마무리한 중국은 새로운 성장 계획을 준비하고 있다. 26일(현지시간) 블룸버그는 사안에 정통한 취재원 발언을 인용해 “중국 당국이 시진핑 국가주석의 핵심 정책인 ‘중국 제조 2025’의 차세대 버전을 준비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중국은 해당 정책을 통해 앞으로 10년 동안 반도체 제조 장비를 비롯한 핵심 기술 육성에 힘을 쏟을 예정이다. 중장기적으로 국내총생산(GDP) 대비 제조업 비중을 일정하게 유지한다는 목표도 수립했다.
시 주석은 제조업 경쟁력 강화의 필요성을 꾸준히 설파하고 있다. 그는 지난 19일 허난(河南)성 뤄양(洛陽)을 방문해 "제조업을 지속 강화해야 하고, 핵심 기술 분야에서 혁신을 이뤄내야 한다"고 발언했다. 지난달 개최된 15차 5개년 계획 좌담회에서도 "과학 기술 혁신과 전통 산업 업그레이드, 신흥 산업 발전, 미래 산업 육성, 현대화된 산업 시스템 구축 등을 목표로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15차 5개년 계획은 2026년부터 2030년까지 시행될 중국의 경제 계획이다.
블룸버그는 중국이 제조업 육성에 힘을 쏟으면 미국이 '중국 경제 재조정'에 난항을 겪을 수 있다고 분석했다. 미국은 대중 무역 적자 규모를 축소하기 위해 중국이 내수 소비를 진작하도록 설득 중인데, 정작 중국 당국은 수출이 필수적인 제조업 중심 경제 유지에 힘을 쏟고 있다는 것이다. 현재 중국의 소비는 GDP의 약 40%를 차지한다. 이는 선진국의 소비 비중이 50~70% 수준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상당히 낮은 수준이다. 반면 제조업을 포함한 투자 규모는 GDP의 약 40%로, 미국의 2배 수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