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수정
트럼프 경고 "이란 원유 사지 말라" 미-이란 핵 협상 교착에 압박 나선 듯 "이란 제재의 진짜 타깃은 중국" 분석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이란산 석유 및 석유화학 제품을 수입하는 국가나 개인에 대해 즉각적인 2차 제재(Secondary Sanctions)를 부과하겠다고 경고했다. 사실상 중국을 겨냥한 압박 조치로, 최근 미·중 간 무역 갈등 완화를 내세웠던 입장과 배치되는 행보다.
트럼프 “이란산 원유 구매국가 2차 제재”
1일(현지시간) 트럼프 대통령은 자신의 소셜미디어(SNS) 트루스소셜에 “경고, 이란산 원유 또는 석유화학 제품의 모든 구매를 즉시 중단하라”는 글을 게재했다. 그는 “이란산 원유 또는 석유화학 제품을 조금이라도 구매하는 국가나 개인은 즉시 2차 제재 대상이 되며, 이들은 미국과 어떤 형태로든 거래할 수 없게 된다”고 경고했다.
이번 발언은 이란과의 4차 핵 협상 일정이 연기된 직후 나왔다. 바드르 알-부사이디 오만 외무장관은 같은 날 X(옛 트위터)를 통해 “물류상의 이유로 오는 3일 예정됐던 미국-이란 협상 일정을 변경한다”며 “양측이 합의하면 새로운 날짜를 발표할 것”이라고 밝혔다. 지금까지 세 차례 회담을 중재해 온 알-부사이디 장관은 협상 연기의 구체적인 이유는 밝히지 않았다. 에스마일 바그하이 이란 외무부 대변인은 성명에서 “이번 회담은 오만 외무장관의 요청에 따라 연기됐다”고 전했다.
최대 수입국 중국 겨냥 해석도
미국의 2차 제재는 제재 대상 국가와 거래하는 제3국이나 개인에게도 미국과의 교역 및 금융 거래를 금지하는 조치다. 이번 조치는 이란 측을 압박하려는 미국의 전략으로 해석된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란이 핵 협상에 응하지 않을 경우 이란 핵시설에 대한 공습을 감행하겠다고 위협하고 있다. 반면 이란은 고농축 우라늄을 통해 핵무기 개발이 가능하다고 경고하며, 협상은 진전을 보지 못하고 있다.
일각에서는 이번 제재가 중국을 압박하기 위한 것이라는 해석도 나온다. 이란의 석유 수출로 인한 수십억 달러 규모의 수익원을 차단하려는 게 목적이지만 중국을 겨냥할 수밖에 없다는 분석이다. 악시오스는 "트럼프 대통령이 자신의 게시물에서 중국을 언급하지 않았지만, 미 국무부는 중국이 '단연' 이란산 석유의 최대 수입국이라고 밝혔다"고 짚었다. 실제 중국은 이란이 하루 평균 160만 배럴가량 수출하는 원유 및 초경질유 대부분을 구매하고 있다.

中 ‘이란산 원유 라벨갈이’ 꼼수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1기 집권 당시에도 같은 조처를 한 바 있다. 중국은 공식적으로 수입량을 줄였지만 실제로는 ‘유령 선단’, 제3국 경유 등 비공식 경로를 통해 이란산 원유를 구매했다. 뿐만 아니라 중국은 이란산 원유를 ‘라벨 갈이(relabeling)’해 온 것으로 드러났다. 미국 에너지정보청(EIA)은 지난 2월 펴낸 일간 보고서에서 “중국이 지난해 말레이시아에서 들여온 원유 수입량이 일평균 140만 배럴로 전년 대비 급증했다”며 “말레이시아 일평균 원유 생산량(60만 배럴)을 초과한다”고 의문을 제기했다. 중국이 말레이시아 원유 생산량의 두 배가 넘는 물량을 들여오고 있다는 얘기다.
EIA는 통계 불일치에 대해 “중국이 이란에서 생산한 원유를 국제 제재를 피하기 위해 말레이시아산으로 라벨 갈이하거나 넘겨받았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EIA 분석대로라면 중국은 이란산 원유를 라벨 갈이한 것으로 의심되는 말레이시아(일 140만 배럴)와 국제 제재를 받는 러시아(220만 배럴)로부터 일 360만 배럴 수준의 원유를 수입한다. 중국 원유 수입량의 32.4%(2024년 기준)를 차지한다.
미국이 라벨 갈이에 주목하는 건 중국이 국제유가를 쥐락펴락하는 세계 최대 원유 수입국이기 때문이다. 영국 에너지 연구기관 EI(Energy Institute)에 따르면 중국은 일평균 1,132만 배럴(2023년 기준)의 원유를 수입해 세계 1위를 기록했다. 이어 EU(유럽·876만 배럴), 미국(650만 배럴), 인도(464만 배럴), 일본(252만 배럴) 순이다. EIA는 물론 국제에너지기구(IEA)와 석유수출국기구(OPEC) 등 3대 석유 관련 기구가 올해 국제유가 하락세를 전망한 근거가 원유 공급 증가와 수요 둔화다.
문제는 트럼프 정부가 추진하는 미국의 이란 제재 강화가 현실화할 경우 원유 공급 감소로 국제유가가 반등할 수 있다는 점이다. 골드만삭스에 따르면 이란의 원유 생산이 10만 배럴 감소할 때마다 국제유가 전망치는 배럴당 1달러씩 오른다. 국제유가는 금리와 밀접한 ‘물가 화약고’로, 가뜩이나 트럼프 관세로 미국발 인플레이션을 우려하는 상황에서 국제유가마저 오를 경우 글로벌 경기 침체로 이어질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