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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U, 파트너십 체결국 무기만 구매 허용 加, 군사장비 공동조달 등 유럽 방위협력 체계 합류 논의 美 록히드마틴 전투기 구매도 재검토, 스웨덴산 대안으로

캐나다가 전통 우방국인 미국 대신 유럽연합(EU)과의 방위산업 협력을 추진한다. EU가 5년간 총 8,000억 유로(약 1,270조원) 규모를 투자하는 방산 시장에 진입하기 위한 시도로 풀이된다.
加, 伊에 "재무장 참여 위해 도움 필요"
19일(이하 현지시간)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앨리사 골버그 주이탈리아 캐나다대사는 17일 이탈리아 재무·외교·국방·기업부 장관들에게 이탈리아 및 EU와 국방산업 협력을 강화하고자 한다는 메시지를 긴급 사안으로 전달했다. 캐나다가 EU의 재무장 계획에 협력하기 위해 이탈리아의 도움이 필요하다는 내용이 골자다.
같은 날 EU 집행위원회가 발표한 장기 방위전략 '대비태세2030'에는 1,500억 유로(약 238조원)의 대출금 지원을 제3국 무기 구매에 제한적으로 허용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다만 EU는 EU 가입 신청국 또는 후보국, 혹은 EU와 안보·방위 파트너십을 체결한 국가의 무기만을 구매할 수 있다. 한국·일본·노르웨이·알바니아·북마케도니아·몰도바·우크라이나·튀르키예 8개국이 이 조건에 해당한다. 이 중 튀르키예는 무기구매 대출 허용국에서 제외됐다.
이에 캐나다는 EU와 안보·방위 파트너십을 체결해 시장에 진입하겠다는 의사를 EU 회원국인 이탈리아에 드러낸 것이다. 골버그 대사는 "드론, 위성통신, 로봇공학, 인공지능(AI), 사이버보안 등 첨단 방위 기술과 니켈, 코발트, 리튬 등 재생에너지 시스템에 필요한 캐나다의 대규모 중요 광물 등을 제공할 수 있다"고 언급했다.
그 대가로 캐나다는 EU산 무기 구매를 늘릴 수 있다는 뜻을 내비쳤다. 골버그 대사는 "유럽 공급업체로부터 조달할 가능성이 있는 잠수함 12척, 추가 전투기, 전차 등을 포함해 단기 조달을 통해 여러 핵심 역량을 구매할 계획"이라고 강조했다. 지난 17일 영국을 방문한 마크 카니 캐나다 신임 총리도 유럽의 방위비 증액에 대해 "캐나다에 잠재적인 대체 공급업체가 생길 수 있다"며 관심을 드러냈다.

"F-35 구매 재검토, 대안 찾아라"
캐나다가 유럽과의 국방산업 협력에 나서는 건 미국에 대한 방위 의존도를 낮추기 위함이다. 최근 캐나다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취임한 이후 미국과의 관계가 전례 없는 수준으로 악화한 상황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캐나다에 고율 관세를 부과하고 캐나다를 미국의 51번째 주로 병합하겠다고 밝혀 캐나다 국민들의 공분을 사고 있다.
이 때문에 양국 간 방산 협력에도 차질을 빚어지고 있다. 이에 캐나다는 2023년 미국 록히드마틴사와 체결한 190억 캐나다달러(약 19조3,000억원) 규모의 F-35 전투기 88대 도입 계약을 재검토하고 있다. F-35 전투기의 대안으로는 2023년 전투기 입찰에서 2위에 오른 스웨덴 사브의 그리펜 전투기 등이 거론된다. 사브는 판매 제안서를 통해 그리펜 전투기의 조립과 정비를 캐나다 안에서 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캐나다·EU, 경제협력 강화도
캐나다와 EU는 방산 협력에 앞서 경제 협력 강화도 약속한 상태다. 지난달 EU의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집행위원장과 안토니우 코스타 정상회의 상임의장 벨기에 브뤼셀을 방문한 쥐스탱 트뤼도 전 캐나다 총리와 회동했다. 트뤼도 전 총리는 회동 전 기자들과 만나 “친구는 서로의 등을 지켜준다”며 트럼프 대통령의 관세 조치가 논의 주제 중 하나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폰데어라이엔 위원장도 “예측할 수 없는 세상에서 신뢰가 더욱 필요하다”면서 EU와 캐나다를 “좋은 동맹이자 신뢰할 수 있는 친구”라고 화답했다.
이들의 만남은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달 10일 미국으로 수입되는 모든 철강과 알루미늄에 25%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발표한 지 이틀 만에 이뤄졌다. 대미 철강·알루미늄 수출 규모로 보면 캐나다와 EU는 각각 1, 3위로 직격탄이 예상되는 처지다. 양측은 이런 상황에 대응해 EU와 캐나다 간 자유무역협정(FTA)에 해당하는 포괄적경제무역협정(CETA)의 중요성을 확인하고, 무역 확대 및 다각화에 노력을 기울이기로 했다.
캐나다와 EU는 CETA를 맺은 2017년 이후 상품 무역을 60% 늘린 것으로 평가받는다. EU는 현재 미국에 이어 캐나다에서 두 번째로 큰 수출 대상국으로, 2023년 양측의 무역은 1,573억 캐나다달러(약 159조7,000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집계됐다. 이와 관련해 한 EU 고위 관계자는 "EU로선 미국을 상대로 불리한 처지에 놓인 다른 국가들과 관계 강화를 꾀하는 게 상식적이며, 이를 미국과의 협상에서 ‘레버리지’로 활용할 수 있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