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출규제에 전세가격 오르고 매물은 줄어, 월세시대 더 빨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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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전세 매물, 5만5,000건→2만3,000건↓ 수요 급감 속 전세 대출 규제까지 더해 전세난 심화로 월세·반전세 확산

서울 아파트 전세 시장이 급속히 얼어붙고 있다. 불과 1년 전 5만5,000건에 달했던 전세 매물이 2만3,000건 수준으로 반토막 나면서 이사철에도 전세 품귀 현상이 심화되는 중이다. 공급 절벽에 더해 정부의 전세대출 한도 축소 정책까지 겹치면서 월세화를 더욱 가속하는 양상이다.
이사철인데 전세 매물 실종
15일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9월 둘째 주 서울 아파트 전셋값은 전주보다 0.07% 오르며 31주 연속 상승세를 이어갔다. 올해 1월 첫 주 한 차례(-0.01%) 하락했던 것을 제외하면 서울 아파트 전셋값은 사실상 2023년 5월 말부터 2년 넘게 고공행진을 거듭하고 있다. 수요가 몰리는 일부 지역에서는 전세 매물 품귀가 더욱 뚜렷하게 드러난다. 5,500가구 규모 매머드급 단지인 송파구 '리센츠'는 전용 59㎡ 전세 매물이 1건에 불과하다. 인근 대단지인 '트리지움'과 '장미'도 매물 수가 10여 건에 그친다. 1만 가구에 육박하는 '헬리오시티' 역시 수요가 많은 전용 59㎡ 전세 매물은 20여 건 수준이다.
매물 품귀 현상은 전셋값도 끌어올렸다. 올해 서울 아파트 전셋값은 누적으로 1.59% 올랐는데, 송파구는 4.85% 치솟으며 상승률이 평균의 3배를 넘겼다. 송파구 외에도 서울 전역에서 전세 매물 감소가 이어지고 있다. 부동산 플랫폼 아실에 따르면 14일 기준 서울 아파트 전세 매물은 2만3,349건에 그쳤다. 올해 초만 하더라도 3만1,000건 수준이었지만, 감소를 거듭하면서 2만2,000건대까지 쪼그라드는 경우도 발생하고 있다. 직전 전세 계약이 집중됐던 2023년에 전세 매물이 5만5,882건까지 늘었던 것과 비교하면 절반도 되지 않는 상황이다.
신규 물량도 기대할 수 없는 처지다. 부동산 종합 정보 플랫폼 직방에 의하면 이달 수도권 아파트 입주물량은 5,695가구로 전월 9,655가구 대비 41% 급감한다. 서울은 128가구에 불과한데, 10월에도 이러한 공급 감소 흐름이 이어질 전망이다. 여기에 규제까지 겹치면서 전세 물량은 점차 쪼그라드는 상황이다.
정부 "전세 대출이 집값 상승 불쏘시개", 전세대출 한도 빗장
이에 실수요자들은 월세나 반전세 거래로 눈을 돌리고 있다. 여기엔 6.27 공급대책에 따른 전세대출 한도 축소의 영향도 크다. 지난 8일부터 1주택자의 수도권과 규제지역 내 전세자금대출 한도도 최대 2억원으로 낮아졌다. 그간 1주택자의 전세자금대출 한도는 보증 3사인 서울보증(3억원)·주택금융공사(2억2,000만원)·주택도시보증공사(2억원)별로 제각각이었다. 금융당국은 이번 대책으로 전세자금대출을 받은 1주택자 중 약 30%가 평균 6,500만원 정도 한도가 줄 것으로 본다. 기존 임대차 계약을 연장하는 경우에는 원래 한도를 유지한다.
정부의 이 같은 대책은 ‘전세 대출이 집값 상승의 불쏘시개 역할을 했다’는 비판을 고려한 조치다. 금융위원회에 따르면 2015∼2024년 전체 가계대출 잔액은 연평균 5.8%씩 상승했는데, 같은 기간 전세대출 잔액의 연평균 상승률은 18.5%에 달했다. 신진창 금융위 금융정책국장은 이날 “지난 10년간 손쉽게 받을 수 있는 전세 대출이 전세가격을 밀어올렸고, 이것이 주택 가격을 상승시킨 요인”이라고 설명했다.
대책 시행 이후 아파트 시장에서 전세 대신 월세나 반전세 계약이 빠르게 확산했다. 전세금을 마련하기 어려운 세입자가 늘어난 가운데 임대인 역시 월세를 선호하는 분위기가 강해졌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전세 공급을 떠받쳐 온 ‘갭투자’가 어려워지면서 전세 물량은 더욱 줄어들 것이라는 게 업계의 전망이다. 또한 임차 수요가 월세로 빠르게 이동하면서 전세의 월세화가 가속화될 것이라는 분석도 이어지고 있다.
시장에서는 이미 전세의 월세화가 진행 중이다. 법원 등기정보광장에 따르면 올해 1∼8월 전국에서 확정일자를 받은 월세 계약은 120만952건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95만3,956건)보다 25.89% 급증했다. 반면에 같은 기간 전세 계약은 70만8,312건에서 72만3,072건으로 2.08% 증가하는 데 그쳤다.

“전월세가격 지속 상승 vs 시장 안정화”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정부의 고강도 부동산 대출 규제가 더해지면서 전세 품귀 현상과 전세의 월세화 현상이 심화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권대중 서강대 일반대학원 부동산학과 교수는 “6·27대책 이후 부동산 시장 매매 거래가 줄면서 전월세 매물이 빠르게 사라지고 있다”며 “올 가을에는 서울 아파트 전세와 월세가격이 모두 상승할 것”이라고 했다. 함영진 우리은행 부동산리서치랩장도 “서울 아파트 매매 시장이 숨을 고르면서 매매 수요자들이 임대차 시장에 머무를 수 있고, 올해 하반기 입주 물량도 줄기 때문에 전세가격은 올라갈 가능성이 크다”고 분석했다.
반면 정부가 전세 대출 한도를 축소하면서 서울 아파트 전세 시장이 안정을 찾을 것이라는 시각도 있다. 채상욱 커넥티드그라운드 대표는 “그동안 전세 보증금을 조달하기 위해 전세 대출을 저리에 받을 수 있었기 때문에 전셋값은 약 10년간 강세를 보였다”며 “전세 대출 한도를 줄이면 전세가격은 내려갈 것”이라고 전망했다.
최상돈 KB증권 TAX솔루션부 부동산연구소 전문위원도 “지난 6월 19일부터 주택도시보증공사(HUG)가 전세대출 보증 비율을 축소했고, 6월 28일부터 체결된 임대차계약부터 소유권 이전 조건부 전세도 금지했다”며 “전세금반환대출도 1억원으로 제한되기 때문에 올해 하반기 전세가격은 약세를 보일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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