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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U ‘바이 유러피안’ 재무장 전략 발표, 현실화 가능성은 ‘글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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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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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꼭 알아야 할 소식을 전합니다. 빠르게 전하되, 그 전에 천천히 읽겠습니다. 핵심만을 파고들되, 그 전에 넓게 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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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U 집행위 국방백서 윤곽 드러나
범유럽 군사장비 시장 구축 선언
유럽 방위산업 ‘잃어버린 50년’

유럽연합(EU)이 역내에서 생산된 무기들을 중심으로 오는 2030년까지 재무장을 마치겠다는 청사진을 밝혔다. 미국에 대한 전략적 의존도를 낮추겠다는 구상이다. 다만 유럽의 방위 산업이 악화할 대로 악화한 만큼 이 같은 계획을 현실화하기에는 역부족이라는 진단이 나온다.

역내 방위산업 기반 강화에 방점

18일(이하 현지시각)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EU 집행위원장은 메테 프레데릭센 덴마크 총리와 함께 덴마크 왕립 육군사관학교를 찾아 한 연설에서 “전쟁을 피하기 위해서는 우선 전쟁에 대비해야 한다”고 강조하며 “내일(19일) ‘대비태세2030(Readiness2030)’ 로드맵을 발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해당 로드맵은 지난해 12월 출범한 폰데어라이엔 2기 집행부가 방위력 강화를 위해 취임 100일 이내에 발표한다고 공약한 국방백서다.

폰데어라이엔 집행위원장은 재무장을 통해 EU 회원국들이 역내 공급망에 완전히 의존할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를 위해서는 역내 방위산업 기반을 강화하는 것이 중요한 과제라는 설명이다. 그는 “범유럽 군사장비 시장 구축, 다년간 계약 촉진, 무기 공동조달 등을 가능하게 하도록 ‘유럽 무기판매 메커니즘’을 마련할 계획”이라면서 “현재 대부분의 국방 부문 투자가 유럽 밖으로 빠져나가고 있는데, 이 흐름을 바꿔놔야 한다”고 힘줘 말했다.

연설 후 진행된 기자간담회에서도 폰데어라이엔 집행위원장 ‘바이 유러피안(Buy European·유럽산 구매)’ 전략에 대한 설명을 이어 갔다. 그는 “유럽산 부품이 65% 이상이어야 하고, 유럽 소유 회사가 아니더라도 유럽 내에 생산시설이 있어야 할 것”이라고 그 기준을 제시했다. 다만 영국이나 노르웨이 등 EU에 참여하지 않은 유럽 국가들과의 협력 가능성에 대해서는 문을 열어뒀다.

발표를 앞둔 로드맵에는 유럽 내 방위산업 신규 사업에 대한 허가 절차를 간소화하기 위한 ‘옴니버스법’ 시행, 역내 업계와의 전략대화 출범 등이 포함될 것이라는 게 폰데어라이엔 집행위원장의 설명이다. 함께 있던 프레데릭센 총리 또한 “우리는 미국, 한국과 같은 유럽 밖의 파트너국들과 계속 방산 협력을 이어갈 것”이라면서도 “다만 이른 시일 내에 유럽 전체를 재무장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역내 생산 역량을 끌어올리는 게 필수”라고 거들었다.

대(對) 미국 안보 의존도 축소가 목표

폰데어라이엔 집행위원장은 지난 5일에도 기자회견을 열고 총액 8,000억 유로(약 1,258조원) 규모의 유럽 재무장 계획을 밝힌 바 있다. 이 중 1,500억유로(약 236조원)를 자체 예산으로 마련해 유럽산 무기 구매에 활용한다는 설명이다. 이를 통해 유럽 방위 산업의 부활을 지원하고, 미국산 무기 의존도를 축소하겠단 구상이다. 현재 유럽 국가들이 보유한 핵심 무기의 약 55~60%가 미국산으로 추정된다.

EU 예산으로 지원되는 1,500억 유로를 뺀 나머지 6,500억 유로는 각국이 자체적으로 마련한다. EU는 군사력 강화로 인해 회원국의 재정 적자가 확대되더라도 이를 예외적 상황으로 인정하기로 했다. 그간 EU는 경제·금융 안정을 위해 각국의 재정 적자를 국내총생산(GDP)의 3% 이내로 규제해 왔지만, 당장은 군비 확대가 더 중요하다는 판단을 내렸다. 27개 EU 회원국 정상들도 공동 성명을 내고 “미국에 대한 전략적 의존성을 줄이는 한편, 유럽 전역의 방위 산업 기반을 강화해야 한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2022년 2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논의되기 시작한 유럽의 재무장 움직임은 지난해 11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당선 이후 급격하게 빨라지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유럽에 대한 자국의 안보 지원에 노골적으로 불만을 제기해 왔기 때문이다. 유럽이 자국 안보에 무임승차 하고 있으며, 그 과정에서 미국이 모든 손해를 떠안고 있다는 게 트럼프 대통령의 주장이다.

이런 가운데 이달 4일에는 트럼프 대통령이 우크라이나에 대한 군사 지원을 잠정 중단하면서 유럽의 불안감도 최고조에 달했다. 유럽 내 한 고위 외교관은 “우크라이나와 똑같이 유럽이 당할 수 있다는 우려, 트럼프 대통령이 이끄는 미국은 동맹이 아닌 위험한 존재로 변모했다는 평가가 확산하고 있다”면서 “미국과의 ‘안보 디리스킹’이 언급되기 시작했다”고 전했다. 디리스킹(de-risking·위험 제거)은 과거 유럽이 중국에 대한 경제 의존도를 낮추는 정책을 설명할 때 사용했던 표현이다.

낮은 생산성에 대규모 예산도 무용

문제는 지난 30여 년간 쇠퇴의 길을 걸어온 유럽 방위산업이 몰려드는 무기 주문을 소화할 여력이 없다는 점이다. 과거 유럽은 냉전이 끝난 후 대규모 군축에 돌입했고, 이에 따라 신규 무기 발주 또한 대부분 사라졌다. 심지어 기존 장비마저 중동이나 아프리카, 아시아 국가에 대거 매각됐다. 노후 무기를 대체할 때 들어가는 비용 부담을 줄이고자 추진한 공동개발·구매 확대도 산업의 몰락을 부추겼다. 그 과정에서 소위 ‘밥그릇 싸움’이 벌어져 유럽 방산의 효율성이 끝 모르고 추락한 것이다.

사회 구조적 문제도 한몫을 했다. 독일을 비롯해 프랑스, 영국, 이탈리아 등 유럽 각국 정부는 무기체계를 구매할 때 성능보다 일자리 창출 등 사회적 기여도를 더 중점에 뒀다. 이 때문에 일감을 쪼개 만든 수많은 하청·협력업체가 유럽 전역에 흩어져 있다. 이 가운데 영세한 업체 한두 곳만 도산해도 무기체계 조립 공정 전체가 멈춰버리는 구조다. 행정비용과 물류·인건비 폭등으로 인한 무기 가격 상승은 덤이다.

전문가들은 유럽 방산이 냉전 때와 같은 수준으로 무기를 대량 생산하려면 이처럼 복잡하고 비효율적인 산업 생태계부터 바꿔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이일우 자주국방네트워크 사무국장은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했을 때부터 유럽 각국은 무기 증산을 선언했지만, 3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생산 효율이 크게 개선되지 못했다”고 꼬집으며 “비싼 가격은 차치하고라도 무기의 성능이나 생산 속도 등을 단기간 끌어올리기는 현실적으로 매우 힘들 것”이라고 진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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