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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보스포럼에서 약 40분 화상 연설
‘관세→자국 기업 보호→금리’ 언급
EU 불공정 거래 ‘적절한 조치’ 시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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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취임 이후 가진 첫 국제무대 연설에서 ‘미국 우선주의’라는 그간의 입장을 한층 공고히 했다. 글로벌 기업들의 미국 내 생산을 유도하기 위해서는 관세를 언급하며 회유책과 강경책을 동시에 내보였다. 또 자국 빅테크 기업들에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는 유럽연합(EU)에는 불편한 심경을 드러냈다. 다양한 주제로 전개된 연설은 금리 등 다소 민감한 사안으로도 이어졌지만, 시장에 별다른 영향을 미치지는 않았다.
미국 내 생산 기업 법인세율 21%→15%
트럼프 대통령은 23일(이하 현지시각) 스위스 다보스에서 열린 세계경제포럼(WEF)에 화상 연설자로 나서 약 40분간 발언했다. 그는 가장 먼저 관세 정책에 대해 설명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전 세계 모든 기업에 보내는 나의 메시지는 아주 간단하다”며 “미국에서 제품을 생산해 달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 경우, 지구상 그 어떤 나라보다 낮은 세율을 적용할 것”이라고 부연했다. 현재 21%인 법인세율을 15%로 낮추되, 미국에서 제품을 생산하는 경우에만 15%의 세율을 적용하겠다는 설명이다.
이어 수입품에 대해 날카로운 태도를 드러냈다.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에서 제품을 생산하지 않겠다는 것도 당신들의 권리”라며 “그렇다면 매우 간단하게 관세를 지불하면 된다”고 선을 그었다. 그는 “금액은 미정이지만, 많게는 수조 달러에 달하는 관세는 미국 경제를 강화하고 재무부의 부채 상환에 쓰일 것”이라고 덧붙였다.
트럼프 대통령은 향후 자국 경제에 대해서는 장밋빛 전망을 제시했다. 그는 “미국인들은 그동안 전혀 보지 못했던 경제에 대한 자신감을 갖고 있다”며 최근 잇따라 유치한 글로벌 투자 프로젝트를 열거했다. 소프트뱅크가 미국 인공지능(AI) 산업에 1,000억 달러(약 145조원) 투자를 약속한 것과 사우디아라비아의 6,000억 달러(약 869조원) 투자, 오픈AI·오라클·소프트뱅크 합작 법인이 AI 인프라 구축에 5,000억 달러를 투자하는 스타게이트 프로젝트 등이다.
연설 후 패널들과 가진 좌담에서는 미국의 무역 적자가 화두로 떠올랐다. 이 과정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과의 교역에서 흑자를 내는 국가들과 불공정 무역에 대한 불편한 심기를 감추지 않았다. 주요 비판 대상은 EU였다. 그는 “EU는 우리를 매우 불공정하고 나쁘게 대우한다”며 “그들은 우리의 농산물과 자동차를 사지 않으면서 수백만 대의 자동차를 내보내기만 한다”고 힘줘 말했다. 그러면서 “(이 관계에서는) 누구도 행복하지 않다”며 “적절한 조치가 있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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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빅테크에 막대한 과징금 부과, “일종의 세금” 불만 토로
트럼프 대통령의 불만은 빅테크 기업에 대한 EU의 강도 높은 제재로 이어졌다. EU는 전 세계적으로 빅테크 기업에 대한 가장 엄격한 규제를 적용하는 것으로 정평이 나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해 9월 일명 ‘아일랜드 체납 과징금’ 불복 소송에서 EU 집행위에 패소해 막대한 과징금을 토해낸 애플의 사례를 언급하며 “특정 기업을 좋아하는 것을 떠나 이들은 미국 기업이고, EU가 그렇게 해서는 안 된다”고 잘라 말했다. 이어 “(EU가 부과하는 과징금은) 일종의 세금”이라면서 “EU의 부당한 처사에 매우 불만”이라고 거듭 강조했다.
문제의 사건은 애플이 아일랜드 정부로부터 불공정 조세 혜택을 받았다며 EU 집행위원회가 체납 세금 130억 유로(약 19조원)를 납부하라는 명령에 불복하면서 불거진 사건이다. 애플의 소 제기로 시작된 법정 공방은 8년 가까이 이어졌고, 결국 유럽사법재판소(ECJ)는 EU 집행위의 손을 들어줬다. 애플은 해당 사건 패소로 체납 세금에 이자를 합친 143억 유로(약 21조원)를 토해내야 했다.
이처럼 미국 빅테크를 겨냥한 EU의 무자비한 과징금 결정은 올해 그 수위를 높일 전망이다.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EU 집행위원장이 2019년 취임한 이후 기존 반독점법에 더해 온라인 플랫폼을 효과적으로 규제하기 위해 제정한 법들이 줄줄이 시행에 나섰기 때문이다. 기업 규모가 클수록 더 엄격한 의무가 부여되는 디지털시장법(DMA)과 디지털서비스법(DSA)이 대표적이다.
이 가운데 거대 플랫폼 사업자의 시장 지배력 남용을 방지하고자 만들어진 DMA는 위반 시 전 세계 매출의 최대 10%에 해당하는 과징금이 부과될 수 있어 '빅테크 때리기'라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DMA는 애플, 메타, 알파벳 등 7개 플랫폼 사업자를 ‘게이트 키퍼’로 지정하는 등 특별 규제 대상으로 명시했다. 게이트 키퍼에 지정된 7개 기업 중 5개 기업이 미국에 본사를 두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의 이번 발언을 계기로 유럽 내 빅테크 사업 영위를 둘러싼 미국과 EU의 갈등이 본격화할 것이란 평가가 나오는 배경이다.
‘금기’ 깨고 금리 관련 발언, 시장 영향은 미미
한편 이날 트럼프 대통령은 금리 향방에 대해서도 말을 아끼지 않으면서 중앙은행의 독립성을 보장한다는 관례를 깼다. 그는 “사우디아라비아와 석유수출국기구(OPEC)에 유가 인하를 요청할 것”이라며 “이에 따라 유가가 내려오면, (중앙은행에) 즉시 금리를 내리라고 요구하겠다”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여기서 그치지 않고 “전 세계 각국도 우리를 따라 금리를 내려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같은 날 집무실에서 개최한 행정명령 서명식에도 금리와 관련한 발언을 이어 갔다. 그는 금리를 낮추기 위해 제롬 파월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의장과 대화할 것이냐는 기자의 질문에 “적절한 시기를 검토 중”이라며 긍정했다. 유가가 안정되면 물가 또한 안정되고, 인플레이션이 없으면 금리를 높은 수준으로 유지할 필요가 없다는 게 트럼프 대통령의 논조다. 연준이 대화 및 금리 인하 요구에 응할 것으로 생각하냐는 질문에는 “그렇다”고 단언하며 “그렇지 않다고 해도 강력한 입장을 낼 것”이라고 자신감을 보였다.
다만 이 같은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에도 시장은 별다른 동요를 보이지 않았다. 글로벌 채권의 가늠자인 미 국채(10년물) 수익률은 이날 뉴욕증시 마감을 앞두고 4.65%로 전일 동시간 대비 0.04%p 오르는 데 그쳤다. 금리 선물시장에서도 오는 29일 연준이 기준금리를 동결할 확률을 99.5%로 반영했다. 이는 전날보다 0.6%p 오른 수치다.
월가 역시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이 연준의 향후 통화정책에 미치는 영향은 제한적일 것이라는 데 시장과 의견이 일치했다. 투자전문지 배런스는 “강도 높은 압박성 발언도 금리를 낮추는 데는 뚜렷한 효과가 없을 전망”이라고 진단하며 “대통령이 연준 인사들을 압박하거나 교체할 수 있는 권한은 제한적이기 때문”이라고 평가했다.
실제로 파월 의장은 트럼프 대통령 당선 직후인 지난해 11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기자회견에서 트럼프 당시 당선인이 사퇴를 요구할 경우 물러날 것이냐는 기자의 물음에 “아니”라고 짧게 답한 바 있다. 나아가 대통령이 자신을 포함한 연준 이사진을 해임할 법적 권한이 있느냐는 질문에도 “법적으로 허용되지 않는다”며 연준의 독립성을 강조했다. 2018년 2월 재임한 파월 의장의 임기는 오는 2026년 5월까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