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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남아시아, 중국 주도 지역 질서 반대 ‘공감대’ ‘아세안’에 의한 질서와 민주주의 원해 남중국해 도발 및 경제적 강압이 가장 큰 문제
[동아시아포럼] 섹션은 EAST ASIA FORUM에서 전하는 동아시아 정책 동향을 담았습니다. EAST ASIA FORUM은 오스트레일리아 국립대학교(Australia National University) 크로퍼드 공공정책대학(Crawford School of Public Policy) 산하의 공공정책과 관련된 정치, 경제, 비즈니스, 법률, 안보, 국제관계에 대한 연구·분석 플랫폼입니다. 저희 폴리시 이코노미(Policy Economy)와 영어 원문 공개 조건으로 콘텐츠 제휴가 진행 중입니다.
2023년 5월 실시된 동남아시아 정치 및 관료 엘리트 500명에 대한 설문 조사는 해당 지역에 중국 주도 지역 질서에 대한 반감이 폭넓게 형성돼 있음을 보여준다. 중국의 경제적 영향력이 크게 확장됐음에도 동남아 엘리트들은 중국의 수직적 통치 구조보다 아세안(ASEAN, 동남아시아 국가 연합)에 의한 질서와 민주주의 원칙을 지지함을 보여준 것이다. 무엇보다 남중국해에서의 공격적 행동과 강압적 경제 조치가 중국의 매력도와 권위를 떨어뜨리는 주요 원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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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남아 엘리트, 중국 중심 지역 질서 ‘원하지 않아’
중국은 동남아시아를 자연스러운 영향권이라고 보고 중국 중심의 질서를 심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일대일로 이니셔티브(Belt and Road Initiative)나 글로벌 개발 이니셔티브(Global Development Initiative), 글로벌 안보 이니셔티브(Global Security Initiative), 글로벌 문명화 이니셔티브(Global Civilization Initiative)가 모두 지역 내 주도권을 강화하기 위한 시도다. 즉 중국의 선호에 맞춰 동남아시아의 정치 및 경제 환경을 수립하겠다는 전략적 목표를 드러낸다.
하지만 설문 조사는 중국의 야심과 지역 엘리트 간 단절을 잘 보여준다. 응답자 대부분이 중국의 정당성과 권위, 의도를 부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아세안’이 지역 이끌어야
또한 설문 결과는 동남아인들이 지역을 이끌어갈 주체로 중국이나 미국이 아닌 아세안을 꼽고 있음도 확인해 준다. 포용성과 다양성, 다자간 협력을 중시하는 아세안이 지역 엘리트들에게 더 큰 공감을 얻고 있다는 얘기다. 대부분의 응답자가 아세안이 두 강대국보다 영향력 있고 효과적이며 지역 사안을 해결하는 중심적 역할을 수행한다고 생각한다.
단 태국 응답자들만이 중국을 가장 영향력 있는 주체로 선정해 지역 내 중국 중심 질서에 대한 수용이 제한적으로 존재함을 보여준다. 아세안에 대한 지지는 엘리트들이 수십 년 간의 협력과 통치 구조에 대한 공감대를 통해 강력한 ‘집단적 정체성’을 가지고 있음도 입증한다.
한편 응답자의 2/3는 동남아시아가 미국보다는 중국에 문화적으로 연결돼 있다고 답해 동남아와 중국 간 친밀감을 인정하기는 한다. 하지만 친밀감이 정치적 지지로 연결되지는 않았다. 90% 가까운 응답자가 중국의 위계적이고 중앙집권화된 정치 체제보다는 민주적 가치가 그들의 통치 구조에 적합하다고 답했기 때문이다.
마음에 안 들면 거리낌 없이 “힘 사용”
중국이 동남아 국가들의 염원에 부합하는 정치적 가치와 규범을 제시하지 못하는 점은 중국의 지역 주도권 확보에 치명적이다. 동남아인들이 지역 통치 체제의 핵심으로 꼽는 민주적 가치와 포용성, 다원주의는 지금까지 보여 온 중국의 모습과 정반대이기 때문이다. 그중에서도 가장 심각한 문제는 중국의 거리낌 없는 힘의 사용으로 전랑 외교(wolf warrior diplomacy, 중국의 공격적 외교 정책), 강압적 경제 조치, 내정 간섭 등이 대표적으로 거론된다.
그리고 남중국해는 이 모든 것들이 동원되는 충돌의 현장으로 중국의 ‘이론의 여지 없는’ 통치권 주장이 필리핀을 비롯한 동남아 국가들과 갈등을 빚고 있다. 2012년 중국이 스카버러 샬(Scarborough Shoal, 남중국해 섬) 점령을 비판한 필리핀에 대해 바나나를 포함한 농산물 수입 중단 조치를 내린 것이 대표적 사례다. 싱가포르 역시 필리핀 손을 들어준 상설 중재 재판소(Permanent Court of Arbitration) 판결을 지지한 것으로 중국의 경제 제재 위협을 받았다.
이웃도 포용 못 하면서 어떻게 전 세계를?
중국이 주장하는 내정 불간섭 원칙도 본인들이 앞장서 해당 지역에서 유리한 여론을 조성하려는 시도로 볼 때 미사여구에 지나지 않는다. 특히 중국공산당 통일전선공작부(United Front Work Department)가 다양한 대리 기관들을 동원해 화교들까지 포섭하려 하는 것은 우려를 자아내기에 충분하다.
설문 결과는 중국의 주도권 야심에 엄청난 시사점을 전해 주고 있다. 가장 가까운 이웃들조차 수용하지 못하는데 어떻게 글로벌 영향력을 확대할 수 있겠는가? 관대함을 보이고 신뢰를 조성하며 지역의 가치를 지지하지 않는다면 동남아는 물론 글로벌을 향한 중국의 야심도 충족되기 어려울 것이다.
원문의 저자는 테렌스 리(Terence Lee) 난양 공과대학교(Nanyang Technological University) 선임 연구원 외 1명입니다. 영어 원문 기사는 Southeast Asian elites resist a China-led regional order | EAST ASIA FORUM에 게재돼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