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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2기 행정부 첫 연방의원 중국 방문 리창 총리 "양국 갈등하면 전 세계가 손해" 데인스 의원 "펜타닐 문제, 우선 해결해야"

리창 중국 국무원 총리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측근으로 알려진 스티브 데인스 공화당 상원의원을 비롯해 미국의 주요 인사들을 만나 회담을 가졌다.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 이후 연방의원이 중국을 방문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특히 오는 4월 2일 트럼프 대통령의 상호 관세 발표 등을 앞두고 양국 간 긴장이 고조되는 가운데 이번 방중이 미·중 정상회담으로 이어질 수 있을지 주목된다.
CDF 참석 위해 데인스 의원 등 美 주요 인사 방중
24일 인민일보, 신화통신 등 중국 관영 매체들은 전날 리 총리가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트럼프 대통령의 측근인 데인스 의원을 만나 양국 간 대화와 협력의 필요성을 강조했다고 보도했다. 지난 23일 데인스 의원을 비롯해 팀 쿡 애플 최고경영자(CEO), 크리스티아누 아몽 퀄컴 CEO 등 미국 경제계 인사들이 중국발전포럼(CDF) 개막식 참석을 위해 중국을 찾았다. 인민일보 등에 따르면 리 총리는 데인스 의원을 만나 "양국 관계가 중대한 전환점에 도달했다"며 "그동안의 역사가 보여주듯 두 나라가 협력하면 전 세계에 이익이 되고, 대결하면 모두에게 손해가 된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지난 1월 시진핑 중국 국가 주석은 트럼프 대통령과의 전화 통화에서 양국 간 광범위한 공동 이익과 협력의 여지가 있으며 파트너가 돼 서로 성취하고 공동 번영하면 양국은 물론 세계에 혜택을 줄 수 있다고 강조한 바 있다"며 "대립보다는 대화를, 제로섬 게임보다는 상생과 협력을 선택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지난 수십 년간 양국 관계의 주요한 기반이 된 경제·무역 협력을 소중히 여겨야 한다"며 "어떠한 나라도 관세를 부과함으로써 발전과 번영을 이룰 순 없다"고 덧붙였다. 이는 트럼프 정부가 촉발한 관세 전쟁을 에둘러 비판한 것으로 풀이된다.
중국 언론들은 이날 데인스 의원의 반응에 대해서는 다루지 않았으나, 미국 언론에 따르면 양측의 입장 차가 상당했던 것으로 보인다. 데인스 의원은 회담 직후 블룸버그통신과의 전화 인터뷰에서 "중국이 펜타닐 원료의 미국 유입을 막기 위한 조치를 취해야만 관세 관련 협상이 가능하다"며 "미국의 요구는 펜타닐 원료 수출을 단순히 늦추는 게 아니라 완전히 차단하라는 것이며, 중국은 미국의 요청 내용을 정확히 이해하고 있었다"고 전했다. 이와 함께 그는 주중 미국대사가 공식 임명되면 상원 차원의 초당적 대표단의 중국 방문을 추진하고 싶다는 의사를 전한 것으로 알려졌다.
미·중 정상회담 성사 위한 막후 협상 가능성 제기
이번 데인스 의원의 방중은 양국이 관세와 보복 조치를 주고받는 상황에서 당국자들이 정상회담 성사를 위한 대화를 진전시키지 못하는 가운데 이뤄졌다는 점에서 국제사회의 관심을 모았다. 프랑스 투자은행 나티식스의 아시아태평양 담당 수석이코노미스트 알리시아 가르시아 헤레로는 "데인스 의원의 방중은 막후에서 협상할 수 있는 방법"이라며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을 다시 공업화하는 동안 시간을 벌기 위해 중국과의 합의를 바라고, 중국은 미국의 관세 부과가 수출에 미치는 영향이 중국 경제에 큰 충격을 주는 것을 막기 위해 합의를 원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다만 데인스 의원은 미·중 정상회담 막후 협상과 관련해 구체적인 언급을 피했다. 중국 외교부도 그가 시 주석이나 다른 고위층 인사를 만날 예정인지를 묻는 질문에 "현재 제공할 수 있는 정보가 없다"며 말을 아꼈다. 백악관은 "데인스 의원은 미 행정부의 대표가 아니다"라며 "그는 독자적으로 활동하고 있다"고 밝혔다. 앞서 지난 22일 데인스 의원은 중국 출발을 하루 앞두고 진행된 뉴욕타임스(NYT)와의 인터뷰에서 "이번 방문은 트럼프 대통령과 시 주석 간 매우 중요한 회담이 될 다음 단계를 마련하기 첫 번째 단계"라고 전한 바 있다.
일각에서는 데인스 의원이 미·중 정상회담 논의 진전에 힘을 보태게 되더라도 트럼프 대통령과 시 주석이 만나기까지는 시간이 더 필요하다는 분석도 나온다. 미국 싱크탱크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의 중국 전문가 스콧 케네디는 "양국의 긴장 관계가 단기간에 해소되기 어려운 데다 양국의 핵심 관료들이 매파적 견해를 가지고 있어 정상회담과 관련한 협상과 타협을 더욱 어렵게 만들고 있다"며 "상호 관세와 보복 조치 등으로 미·중 간 상황이 추가로 악화할 경우, 심각한 피해가 예상될 정도로 나빠져야 양국 정상이 만날 만한 동기를 얻을 것"이라고 말했다.

美 트럼프, 상호 관세 부과에도 대화 가능성 시사
이러한 상황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21일 백악관에서 기자들과 만나 오는 4월 2일 발표 예정인 상호 관세를 비롯해 미·중 정상회담의 성사 가능성에 대해 언급했다. 그는 '중국이 미국과의 무역 전쟁을 피하기 위해 할 수 있는 게 있냐'는 질문에 "나는 시 주석과 대화할 것"이라며 "난 그와 관계가 매우 좋고 우리는 매우 좋은 관계를 유지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중국은 미국을 상대로 엄청난 무역 흑자를 내고 있다"며 "우리는 그것을 원하지 않으며 바로 잡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다음 달 2일부터 발표되는 상호 관세에 대해선 특정 국가에 예외를 허용하기 쉽지 않으나 유연하게 대응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은 '관세 예외를 고려하느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많은 사람이 예외를 적용받을 수 있는지 물어보는데 한 명에게 해주면 모두에게 해줘야 한다"면서도 "유연성이라는 단어는 매우 중요하며 때때로 유연성이 있을 것"이라고 말해 예외 가능성을 시사했다. 이는 상호주의를 원칙으로 하되 경제 상황이나 협상 내용에 따라 조정할 여지를 열어둔 것으로 해석된다.
중국도 미국의 관세 정책을 비판하면서도 미국과의 대화 가능성은 열어뒀다. 23일 리 총리는 CDF 개막 연설에서 미국을 겨냥해 "불안정성과 불확실성이 확대되는 때일수록 각국이 시장을 더 개방하고, 모든 기업이 자원을 더 많이 공유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중국은 예상치 못한 외부의 충격 가능성에 이미 대비하고 있으며 필요시 추가 부양책으로 중국 경제의 안정적 성장을 보장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미국발 관세 전쟁으로 인한 경제 충격 우려에도 올해 성장률 목표인 5% 달성에 자신감을 드러낸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