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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건부 전세대출·퇴거자금 대출 제한 6·27 대책에 임대차 수급 불균형 세입자 전세 기피로 월세 수요 증가

정부가 집값을 잡기 위해 내놓은 정책에 전세자금 관련 대출 규제도 포함되면서 전세 물량은 줄어들고 월세 물량이 늘어나고 있다. 조건부 전세자금 대출 제한에 전세입자를 구하기 힘들어지면서 집주인들이 전세를 월세로 변경하는 데다, 전세금 반환용 주택담보대출 한도가 1억원으로 축소되면서 세입자들이 전세를 기피하고 있기 때문이다.
1억 이상 전세퇴거자금대출 한시 중단
17일 부동산 플랫폼 아실에 따르면 이날 기준 서울 아파트 월세 물량은 1만9,675건으로 집계됐다. 이는 대출 규제가 발표된 지난달 27일(1만8,796건)보다 879건(4.67%) 증가한 수치다. 반면 같은 기간 전세 매물은 2만4,855건에서 2만5,114건으로 259건(1.04%) 느는 데 그쳤다.
전세 시장은 이미 6·27 부동산 대책 이전에도 위축되는 모습을 보였지만, 정부의 초강력 대출 규제로 기피 현상이 뚜렷해졌다. 6·27 부동산 대책으로 전세대출 보증 비율도 기존 90%에서 80%로 낮아진 데다, 유주택자의 경우 전세퇴거자금대출 한도가 1억원으로 제한된 탓이다. 2주택 이상인 경우에는 대출이 아예 나오지 않는다. 이에 집주인은 내 집을 담보로 기존 세입자에게 반환할 보증금 마련이 어려워졌고, 세입자는 계약만료 시점에 집주인으로부터 돈을 돌려받지 못할 불안감이 커졌다.
특히 규제 시행 이전에 체결된 임대차 계약에 대해서도 전세퇴거자금대출이 한시적으로 중단되면서 집주인과 세입자들의 우려를 더욱 증폭시켰다. 대출 규제 이후 지금까지 대다수 은행은 규정 해석에 혼선을 겪으며 전세퇴거자금대출 한도를 1억원으로 제한해 왔다. 당초에는 해당 시점까지 계약이 이뤄졌다면 대출이 가능하다는 해석이 우세했지만 이후 당국이 내린 세부 지침에 '임대인이 자력으로 전세금을 반환할 수 없는 상황'이란 조건까지 추가해 제시한 탓이다. 일부 은행에서는 임대인의 대출 신청 자체를 '자력 반환이 어렵다'는 사실상의 입증으로 보고 별도 증빙 없이 대출을 실행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으나, 임대인이 지켜야 할 요건이 많아진 만큼 기존보다 대출 문턱은 크게 높아질 것이란 분석이다.
갭투자 사실상 차단
세입자 임차보증금 반환목적 대출은 갭투자로 집을 산 집주인들이 받는 대출이다. 주택 구입 자금의 일부를 세입자의 전세자금으로 충당했다가 나중에 본인이 실거주를 위해 세입자를 내보낼 때 받는다. 통상은 일반 주담대와 마찬가지로 DSR(총부채원리금상비율) 40%, LTV(담보인정비율) 70%(규제지역은 40%) 적용을 받는다. 소득이 많고, 고가 주택이라면 대출한도가 6억원 이상도 나온다.
중도금과 잔금을 전세보증금으로 충당한 집주인의 경우 임대차계약이 28일 이전 체결이 된 경우라면 종전 대로 대출을 모두 받을 수 있다. 일각에서 분양가 상한제가 적용된 아파트의 경우 실거주 의무로 세입자를 내보내고 본인이 들어가야 하는 상황에 이 대출이 나오지 않을까 우려하는 목소리도 있었지만 경과 규정에 따라 종전대로 한도가 나온다. 반면 28일 이후 신규계약을 체결하면 이때는 대출한도가 1억원으로 대폭 줄어든다. 금융당국은 수도권과 비규제지역의 주담대 한도를 6억원으로 묶었는데 임차보증금 반환목적 대출 한도는 이보다 더 강화된 1억원으로 대폭 줄어드는 셈이다.
이에 따라 향후에는 갭투자 목적으로 주택을 구매한 경우 본인이 실거주를 하려면 전세보증금의 대부분을 스스로 마련해야 한다. 소유권 이전 조건부 대출의 경우도 27일까지 임대차계약을 체결하면 종전 규정이 적용되지만 이후에는 아예 대출이 금지된다. 신규 입주 단지라면 입주자모집 공고일와 무관하게 역시 임대차계약일을 기준으로 한다.

전셋값 치솟자 갱신권 미루는 세입자들
이 같은 규제는 월세 가속화는 물론 주거 비용 부담 가중과 전셋값 폭등을 부추기는 형태로 진행되고 있다. 아실 자료에 따르면 향후 5년간 서울 아파트 공급은 적정 수요인 연간 4만6,628가구에 못 미친다. 2026∼2029년 4년간 입주 물량은 2만 가구가 채 되지 않는다. 대출 규제 강화와 주택 공급 부족이 전셋값을 밀어 올리는 양상은 이미 계약갱신청구권 사용을 미루는 등 형태로 나타나고 있다. 갱신권을 사용할 경우 임대료 인상률이 5% 이내로 제한되지만, 1회로 한정돼 추가적인 재계약이 어려워진다.
국토교통부 실거래가 공개시스템을 보면 지난달 27일부터 이달 4일까지 서울 아파트 전월세 계약은 총 2,577건이었다. 이 가운데 전세는 1,685건, 월세는 892건이었다. 갱신 계약은 1,148건이었으며 갱신요구권을 쓴 재계약은 600건으로 집계됐다. 나머지 548건은 갱신권을 사용하지 않고 재계약한 사례로, 대부분 임대료를 상당액 올린 것으로 추정된다.
실제 지난달 30일 서울 성동구 하왕십리동 ‘센트라스’ 전용 84.99㎡(18층)는 월세 조건을 ‘5억원·40만원’에서 ‘6억원·120만원’으로 변경해 재계약했다. 또 기존 전세 보증금이 9억4,500만원이던 중구 회현동1가 ‘SK리더스뷰남산’ 전용 137.53㎡(20층)는 이달 1일 13억원에 계약을 갱신했다. 집주인이 원하는 만큼 보증금을 올려주더라도 전세난에 계약기간을 최대한 늘리기 위한 고육지책으로 풀이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