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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평양 심해까지 번진 미·중 패권 다툼, 자원 전쟁의 전장이 달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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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현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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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물 주도권 심해로 전선 확장
중국의 자원 통제가 낳은 위기감
서방은 ‘자원 확보-가치’ 딜레마

태평양 심해저에 매장된 대규모 광물 자원을 둘러싸고 미국과 중국 간 패권 경쟁이 격화하는 모습이다. 중국은 일찌감치 해저 채굴에 나서면서 기술력과 속도 면에서 우위를 점하고 있으며, 희토류 공급을 무기화해 미국을 압박하고 있다. 이에 미국도 심해저 자원을 대체 공급원으로 삼아 대응에 나섰지만, 환경 규제와 기술 부족 등으로 속도 내기에 한계를 보이는 상황이다. 이처럼 양국의 공급망 경쟁이 해저까지 번지면서 자원 안보를 둘러싼 갈등 또한 심화하는 양상이다.

트럼프 행정명령, 해저 채굴 공식 진입 선언

14일(이하 현지시각) 국제 컨설팅업체 아서 D. 리틀(Arthur D. Little)의 보고서에 따르면 심해 채굴 시장은 향후 수년 내 20조 달러(약 2경7,500조원) 규모에 달할 전망이다. 보고서는 “기존 지상 광산은 광석 등급이 떨어지거나 환경 규제가 강화되는 등 생산 비용이 올라 점점 제약을 받고 있다”면서 “해저 광물은 매장량이 풍부한 데다, 품질도 우수해 그 가치가 매우 높다”고 설명했다.

보고서는 태평양과 인도양의 예를 들었다. 태평양과 인도양 해저 4~6㎞에는 망간을 비롯한 각종 희귀 금속이 뭉쳐진 망간 단괴가 자리 잡고 있다는 분석이다. 그중에서도 가장 주목받는 해역은 태평양 하와이섬 남동쪽 바다에 형성된 ‘클라리온-클리퍼턴 균열대(CCZ)’다. 면적이 450만㎢에 이르는 해당 지역에는 망간 단괴 5억6,000만 톤(t) 정도가 매장된 것으로 추정돼 전 세계에서 가장 상업적 가치가 큰 것으로 평가된다.

이에 한국과 중국, 영국, 프랑스 등 여러 나라가 그동안 국제해저기구로부터 심해 탐사권을 확보해 조사 활동을 벌여왔다. 특히 중국은 올해 상반기 국제연합(UN) 산하 국제해저기구(ISA)에서 태평양 해저 특정 지정 구역에서 심해 채굴 차량을 시험할 수 있는 허가를 받고 5건의 탐사 계약을 맺는 등 심해 탐사에 가장 적극적인 행보를 보이고 있다. 오랜 시간 지켜 온 자국의 핵심광물 주도권을 잃지 않겠다는 의도로 해석된다.

미국은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 4월 24일 해양 자원 전략의 대전환을 알리는 행정명령에 서명하며 중국의 행보를 견제하고 나섰다. 해당 조치는 미국 내 기업들이 심해저에서 핵심 광물을 신속히 채굴할 수 있도록 허가·지도를 간소화하고, 국가관할을 넘는 해역에서도 미국의 상업적 채굴을 가능케 하는 내용을 포함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행정명령에서 “심해저 광물은 첨단 에너지 시스템과 국방, 제조업의 핵심”이라며 “중국의 공급망 지배를 견제하고 자국 자원을 확보하기 위한 전략적 대응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이 같은 흐름에 유럽 주요국들도 가세하고 있다. 프랑스와 독일은 이미 수년 전부터 심해저 자원 탐사에 대규모 투자를 단행해 왔고, ISA로부터 채굴 권한을 확보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 또 유럽연합(EU)은 ‘지속 가능한 핵심광물 공급 전략’의 일환으로 심해저 자원을 미래 에너지 전략에 포함했으며, 중국 독점 체제에서 벗어나려는 움직임의 일환으로 본격적인 기술 투자에 착수한 상태다. 글로벌 차원의 ‘바닷속 골드러시’가 시작된 셈이다.

‘희토류 전쟁’으로 변질된 미·중 무역 전쟁

심해저 자원 전쟁의 시작점은 단연 희토류에 대한 중국의 압도적인 지배력이다. 전기차, 반도체, 첨단무기 등 핵심 산업에 필수적인 희토류는 미국과 유럽이 중국에 가장 크게 의존하는 분야 중 하나다. 중국은 2020년대 들어 수출 허가를 보류하거나 제한했다가 해제하는 등 방식으로 공급망을 흔들어 왔다. 지난 6월 기준 중국의 희토류 수출은 전월 대비 60% 급증했지만, 시장에서는 이를 ‘전략적 계산이 깔린 제한적 개방’으로 보는 시각이 우세하다.

미국을 비롯한 서방에서도 중국의 이러한 시도를 경제 무기화의 전조로 받아들이는 분위기다. 이에 미국은 희토류 공급망을 강화하기 위해 자국 최대 희토류 채굴업체 MP머티리얼스에 4억 달러(약 5,500억원)를 투자하는 등 대체 수입처 확보와 기술 개발에 총력을 기울이는 모습이다. 2017년 설립된 MP는 캘리포니아주 마운틴패스에 미국 내 유일한 희토류 광산을 보유하고 있으며, 텍사스주 포트워스에는 희토류 금속과 자석을 생산하는 공장을 운영 중이다. 미 국방부는 MP 지분 약 15%를 확보하면서 최대 주주의 지위를 갖게 됐다.

이처럼 이례적인 미 정부의 민간 기업 지배력 확보는 중국 의존도를 줄이기 위한 대응책이자, 향후 희토류를 중심으로 한 자원 패권전쟁에서 주도권을 탈환하려는 시도로 읽힌다. 나아가 희토류 확보 문제가 단순한 무역 문제를 넘어 국가 안보 차원의 문제로 격상된 점도 주목할 만하다. 실제로 미중 무역전쟁은 시간이 갈수록 통상 분쟁이라기보다 ‘핵심 자원을 둘러싼 지정학적 전쟁’의 성격을 강하게 띠고 있다.

미국이 태평양 심해저로 시선을 돌린 이유도 여기에 있다. 지상 희토류 개발은 비용과 환경 규제로 한계가 크고, 대체 수입처 확보도 단기간 내 성과를 내기 어려운 분야로 평가받는다. 이에 따라 해저 광물자원이 희토류의 대체 공급원으로 주목받기 시작한 것이다. 특히 심해에는 희토류 외에도 망간, 니켈, 코발트 등 첨단 산업에 필요한 전략 광물들이 다량 매장돼 있어 미국 입장에서는 ‘중국 견제와 자원 확보’라는 두 가지 목적을 동시에 달성할 수 있는 선택지로 간주된다.

환경·인권 기준 무시한 중국, 패권 유지 불투명

희토류와 심해저 광물 확보를 둘러싼 경쟁이 격화하는 가운데, 기술력과 환경 리스크는 국가 간 격차를 더욱 벌리는 요인이 되고 있다. 중국은 오랜 기간 자원 채굴 분야에 막대한 인적·물적 자원을 투입한 결과, 광물 탐사 및 채굴에 필요한 기술력과 경험치 면에서 글로벌 초격차를 유지 중이다. 심해저 자원 추출의 효율성과 상업화 수준에서 미국과 유럽이 걸음마 단계에 머물러 있는 반면, 중국은 이미 실전 단계로 진입한 셈이다. 이는 공급망 다변화를 추구하는 서방 국가들의 대응이 실제로는 실행력 부족이라는 현실의 벽에 부딪혔음을 의미한다.

기술뿐 아니라 환경 규제에서도 국가 간 태도 차이는 뚜렷하다. 중국은 광물 채굴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자연 생태계 파괴, 탄소 배출 등 환경 문제를 상대적으로 무시한 채 빠르게 진입하는 반면, 미국과 유럽은 자국 내 환경보호 기준, 국제 협약, 인권 등 복합적인 요소에 얽매여 신중한 입장을 보인다. 특히 EU는 ISA의 규정을 따르는 동시에 내부적으로 ‘심해저 개발 일시 중단’을 주장하는 회원국과의 정치적 합의에 이르지 못해 자원 전략의 속도를 제한하는 요인으로 작용하는 양상이다.

다만 최근 들어서는 중국의 거침없는 행보에도 일부 제동이 걸렸다. 지속가능성 없는 채굴이 시장 신뢰 저하로 이어지면서다. 세계 각국은 중국이 제공하는 자원의 환경 기준과 사회적 책임 문제를 주요 무역 협상 조건으로 내세우고 있으며, EU는 역외 보조금 조사 등을 통해 중국 기업들의 행태를 견제하려 하고 있다. 중국의 광물 패권 전략이 당장은 앞서나가는 것처럼 보이지만, 국제사회와의 충돌이 심화할 경우 자원외교에서의 입지를 잃을 가능성이 농후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일관된 평가다. 미국 지질조사국에 의하면 2012년 세계 희토류 수출의 중국 비중은 90%에 달했으나, 2022년엔 70% 수준으로 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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