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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동고속도로 서창-월곶 확장 사업’ 경제성 0.2점 정성지표 ‘정책성’ 만점이어도 타당성 인정 못 받아 불필요한 행정력 낭비 줄인다, 효율성 상승 전망

정부가 대규모 공공투자사업에 대한 타당성조사에서 사업의 경제성이 현저히 낮다고 판단될 경우, 조사를 조기에 종료할 수 있도록 규정을 바꿨다. 경제성 외 다른 평가 항목에서 만점을 받아도 타당성 확보가 어려운 경우, 불필요한 절차를 줄여 행정 효율성을 높이기 위한 조치다.
기재부, 예타 조사 운용지침 일부 개정
15일 정부에 따르면 기획재정부는 최근 예비타당성조사 운용지침을 일부 개정했다. 조사 착수 후 경제성 분석결과 등을 고려해 조사 지속의 실익이 없다고 판단하는 경우 실무조정위원회를 거쳐 분석을 더 실시하지 않고 ‘타당성 미확보’를 결과로 조사를 종료할 수 있다는 지침을 신설한 것이 골자다.
예타조사는 대규모 공공투자사업의 기술적 가능성과 경제·재무 측면의 평가를 통해 사업 진행 여부를 확정 짓는 절차다. 1~2년에 걸쳐 △경제성 △정책성 △지역균형발전 등을 차례로 분석해 각각 30%, 40%, 30% 배점으로 사업을 평가한다. 여기서 경제성은 사업의 비용 대비 편익(B/C)으로 계산되는 정량지표다. 정책성과 지역균형발전은 정성지표로 정책의 일관성·추진의지, 재원조달 가능성, 환경성 평가, 고용 유발 효과, 지역낙후도, 지역경제 파급효과 등을 고려해 점수를 낸다.
문제는 B/C 값이 너무 낮아 나머지 정성 지표에서 만점을 받아도 타당성을 받기 어려울 것으로 보이는 조사 건이다. 한국도로공사가 추진하는 ‘영동고속도로 서창-안산 확장(6차선→10차선) 공사’ 사업에 대한 타당성재조사가 대표적인 예다. 이 사업은 2012년 예타조사를 통과해 2016년 기본설계가 완료된 후, 2021년 공사에 착수했다. 하지만 공사가 무탈하게 진행된 2공구(군자-안산 구간)와 달리, 1공구(서창-월곶 구간)는 사업비 문제로 공사가 시작되지 못했다. 사업 추진 과정에서 논현지구 소음 저감 대책으로 설치하기로 했던 구조물이 ‘방음벽’에서 더 큰 비용이 드는 ‘방음터널’로 바뀐 데다, 공사비도 가파르게 상승했기 때문이다.
총사업비가 당초 계획보다 20% 이상 증가함에 따라 정부는 2023년 6월 타당성재조사를 실시했다. 도로공사에 따르면 조사에서 1공구의 B/C는 0.2점에 불과한 것으로 분석됐다. 해당 사업은 구역이 수도권인 만큼, 지역균형발전 분석 없이 평가위원별로 경제성 60~70%, 정책성 30~40%의 배점으로 평가가 이뤄질 예정이었다. 타당성조사는 종합평가 점수가 1점 만점에 0.5점을 넘어야 통과할 수 있다. 이 사업의 경우 모든 평가위원이 경제성 배점을 60%로 둔다고 해도, 정책성 점수가 0.95점을 넘어야 한다. 평균 경제성 배점이 65%라면 정책성 점수가 만점을 받아도 통과점을 넘을 수 없다.
기존 제도에서는 이런 경우에도 조사가 계속돼야 한다. 특히 이 사업의 경우 도로공사가 사업 필요성을 주장하며 정부와 협의를 이어가면서 2년 가까이 조사가 진행됐다. 결국 정부는 조사를 일찍 끝낼 수 있는 새 지침을 마련했고, 지난달 재정사업평가위원회를 열어 사업을 조기에 종료하기로 결정했다. 정부는 이와 더불어 광역교통개선대책부담금 등 총사업비 일부를 민간이 총사업비 일부를 민간이 부담하는 사업에 대해서는 평가 과정에서 우대하기로 했다. 이에 따라 신도시 교통망 확충 등 재원 부담이 수반되는 사업의 시행 여건이 획기적으로 개선될 것으로 기대된다.

감사원 “기술형입찰 예타 단계부터 적정공사비 반영해야” 지적
전문가들은 이번 개정으로 대규모 개발사업에서 재정 낭비를 사전에 차단할 수 있는 근거가 마련된 만큼 앞으로 예타를 악용하는 사례가 크게 줄 것으로 내다본다. 다만 여전히 풀어야 할 과제가 산적해 있다. 지난달 감사원은 국토교통부 정기감사 결과를 발표하면서, 기재부는 고물가 상황에도 기술형(턴키) 입찰 발주금액 산출 기준 단가를 현실화하지 않고 있고, 국토부 또한 기술형 입찰 유찰 방지 대책을 마련하면서도 단가 현실화 방안을 누락해 사회간접자본(SOC) 적기 공급 지연 등 사업추진의 비효율이 지속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감사원은 특히 국토부가 작년 3월 공공 발주공사에 적정 단가와 물가상승분을 반영해 기술형 입찰 유찰방지를 위한 대책을 수립하겠다고 밝혔으나, 예타 단계와 기본계획 수립 단계에서의 적정 공사비 확보 방안이 포함되지 않았다며 유찰방지 실효성에 의문을 제기했다. 통상 ‘기술형 입찰’은 설계 공사비가 아닌 추정 공사비로 발주 및 계약이 체결되고, 당초 계약금액 조정 없이 설계와 시공을 이행해야 하는 발주 방식의 특성상 적정 공사비 계약토록 하려면 예타조사와 기본계획 단계에서 산정하는 추정 공사비를 최대한 현실적인 수준으로 책정하는 것이 중요하다. 실제 ‘예비타당성조사 수행 총괄지침’에는 예타 조사 단계에서의 비용 추정은 가능한 가장 현실적으로 하도록 돼 있고, ‘총사업비 관리지침’에는 기본계획을 수립할 때 공사 수행상 필요한 공종·내역을 누락하거나 과소 계상하지 않도록 돼 있다.
그러나 감사원 감사 결과, 기재부는 2021년 ‘예비타당성조사 수행 세부지침’을 개정하면서 각 공종의 예타 단가(기준연도 2019년)를 산정할 때 개정된 국가계약법령 사항을 고려하지 않고 '2015년 예타 단가(기준연도 2013년)'에 국내총생산(GDP) 디플레이터에 의한 물가상승분만 반영했으며, 이는 현재까지 유지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감사원은 이로 인해 예타 단가가 물가상승분 외 추가로 5.96~9.05%p 높아지는 효과가 차단된 것으로 분석했다.
감사원은 기재부가 간접공사비 적용 요율 상승분을 반영하지 않고 예타 단가를 결정하는 것도 문제 삼았다. 간접공사비는 직접 투입되는 인력, 장비 외 간접노무비, 건강보험료 등 보조되거나 부수적인 경비와 비용 등의 합으로, 직접공사비에 일정 요율을 곱해 산정하고 건설공사 시행 시 의무적으로 반영해야 하는 비용이다. 그런데 기준 요율은 ‘간접공사비(제 비율) 적용기준’ 및 ‘사회보험의 보험료 적용기준’등 관련 규정의 개정으로 주기적으로 인상돼 왔고, 결국 간접공사비 요율 상승은 전체 공사비를 증가시키는 요인 중 하나로 작용했다.
한경협, '예타 기준 500억→1,000억' 등 건설규제 개선 건의
한국경제인협회(한경협)에서도 예타 조사 개선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크다. 이달 초 한경협은 총사업비 500억원 이상, 국가 재정지원 규모 300억원 이상인 사업에 대해 예타 조사를 의무화한 국가재정법을 지적했다. 이 기준은 1999년 제도 도입 이후 26년째 유지되고 있는데 예타 대상 사업이 과도하게 늘면서 사업 추진이 지연되고 적기 투자가 어려워지고 있다는 것이다. 이에 한경협은 예타 조사 기준을 총사업비 1,000억원, 국가 재정지원 규모 500억원으로 상향하고, 간소화된 '신속 예비타당성조사'(Fast-Track) 제도 활성화를 요구했다.
이어 한경협은 예타 소요 기간도 평균 17.6개월로 운용 지침상 기한(9개월)의 두 배에 달해 대형 인프라 사업의 착공이 지연되고 있다고 꼬집었다. 아울러 도심 재정비사업 절차를 간소화하고 규제를 완화하는 '재건축·재개발 촉진 특별법' 제정도 요구했다. 전국 노후주택 비율이 25.8%에 달하는 등 주택공급 부족은 심화하고 있지만, 복잡한 인허가 절차 등으로 인해 재건축·재개발 등 도심 재정비 사업은 평균 10년 이상이 걸린다는 지적이다.
정부 발주 장기계속공사의 공기 연장에 따른 간접비 추가 지급 근거도 마련해 달라고 요구했다. 이들 사업은 매년 예산 범위 내에서 순차 계약되는데, 계약 간 공백기에 발생하는 인건비·장비 유지비 등 간접비에 대한 법적 보전 근거가 부족해 민간사업자가 손실을 떠안는 사례가 반복되고 있어서다. 이상호 한경협 경제산업본부장은 "건설업은 생산 및 고용 창출 효과가 큰 대표적인 경기 견인 산업"이라며 "건설규제를 과감히 정비해 경제 전반에 활력을 불어넣어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