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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딥폴리시] SEATO의 교훈, 동남아 주도의 해양 안보 체제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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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months 3 week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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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혜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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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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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양한 주제에 대해 사실에 근거한 분석으로 균형 잡힌 시각을 제공하고자 합니다. 정확하고 신뢰할 수 있는 정보 전달에 책임을 다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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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교역의 핵심 해상로 남중국해, 긴장이 지역 안보 불안을 증폭
국가별 이해관계로 범아시아 군사동맹 구상 구조적 한계 직면
동남아 주도의 국제법 기반 해양 안보 협력체 필요

본 기사는 스위스 인공지능연구소(SIAI)의 SIAI Business Review 시리즈 기고문을 한국 시장 상황에 맞춰 재구성한 글입니다. 본 시리즈는 최신 기술·경제·정책 이슈에 대해 연구자의 시각을 담아, 일반 독자들에게도 이해하기 쉽게 전달하는 것을 목표로 합니다. 기사에 담긴 견해는 집필자의 개인적 의견이며, SIAI 또는 그 소속 기관의 공식 입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인도·태평양 안보를 좌우하는 핵심 지표는 무기 성능이 아니라 무역 규모다. 전 세계 해상 교역의 약 3분의 1이 매년 남중국해를 통과하며, 그 가치는 2016년 기준 약 3조4,000억 달러(약 4,610조원)에 달했다. 2023년에는 개발도상국의 해상 물동량 비중이 54%로 늘면서 절대 규모가 더 커졌다. 남중국해는 세계 공급망의 안정성과 직결되는 전략 자산으로, 이 항로가 차질을 빚을 경우 국제 유가, 제조업 생산 일정, 식료품 가격이 즉각 영향을 받는다.

이 같은 경제적 취약성은 해상 충돌 위험과도 직결된다. 실제로 세컨드 토머스 암초와 스카버러 암초 등 분쟁 해역에서는 선박 충돌과 물대포 사용이 반복되며 회색지대 압박이 노골화되고 있다. 이러한 긴장은 지역 안보 불안을 심화시키고, 동남아가 실효적 공동안보 체제를 마련해야 할 필요성을 더 부각시킨다.

사진=ChatGPT

범아시아 동맹의 한계

나토(NATO)를 본뜬 범아시아 군사동맹 구상은 정치적 현실에 부합하지 않는다. 동남아 국가들의 안보 노선은 미국 동맹, 전략적 모호성, 중국과의 밀접한 관계 등으로 상이하여 군사동맹의 제도화를 어렵게 만든다. 실제로 남중국해에서 직접 압박을 받는 필리핀조차도, 이해관계가 얽힌 다자 군사동맹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고 선을 긋고 있다.

또한 인도·태평양에는 이미 양자 동맹과 소다자 협력이 다층적으로 존재한다. 미국·일본·호주·한국의 협력, 아세안 내부 협의체 등 다양한 틀이 중첩되면서 새로운 범아시아 동맹은 충돌과 중복을 피하기 어렵다. 이 같은 복잡성은 유럽의 나토와 같은 모델을 아시아에 적용하기 힘들게 만든다.

동남아 현실에 맞는 대안

갈등의 양상 역시 차별적이다. 동남아에서 나타나는 충돌은 전통적 무력 침공이 아니라 해양 경비대와 민병대가 주도하는 회색지대 전술이다. 선박 충돌과 물대포 사용이 대표적 사례다. 이런 상황에서는 집단방위 조항보다 해양 상황을 공동으로 파악하고, 법 집행 선박의 행동 규칙을 마련하며, 위기 대응 절차를 통일하는 것이 훨씬 효과적이다.

최근 미국과 필리핀이 방위협력확대협정(EDCA)을 통해 기지 접근권을 5곳에서 9곳으로 확대하고, 해상에서 조약 의무 적용 지침을 새로 마련한 것은 부분적 진전이다. 그러나 이는 동남아 전체를 하나의 군사동맹으로 묶는 체제와는 거리가 있다.

2016~2023년 필리핀 내 EDCA 접근 기지 수(단위: 개)
주: 연도(X축), EDCA 접근 기지 수(Y축)

SEATO의 실패가 남긴 교훈

동남아가 앞으로 어떤 협력 틀을 모색해야 하는지 이해하려면 과거 시도에서 교훈을 찾을 필요가 있다. 대표적 사례가 1954년 미국 주도로 창설된 동남아조약기구(SEATO)다. 이 기구는 공산주의 확산 억제를 목표로 했지만, 출범 당시부터 한계를 안고 있었다. 태국·파키스탄·필리핀 외 아시아 회원국이 거의 없었고, 미국·영국·프랑스·호주·뉴질랜드 같은 서방 국가들이 주도했다. 인도, 인도네시아, 베트남은 참여를 거부해 지역 대표성은 크게 부족했다.

더 큰 한계는 제도적 설계에 있었다. 나토의 제5조는 “한 회원국에 대한 공격은 전체에 대한 공격”으로 간주해 자동 공동 대응을 보장했지만, SEATO에는 이러한 집단방위 조항이 없었다. 회원국들이 공동 대응에 나설 의무도 분명히 규정되지 않았고, 억지력은 사실상 작동하지 않았다. 결국 SEATO는 동남아 안보를 보장하는 기구라기보다 미국의 인도차이나 개입을 정당화하는 외교적 틀로 활용됐으며, 1977년 해체됐다. 이 경험은 오늘날 범아시아 군사동맹 구상이 왜 성립하기 어려운지를 보여주는 역사적 사례다.

새로운 구상: 해양 중심 협력체

SEATO의 실패는 제도 설계의 교훈을 남겼다. 오늘날 필요한 것은 범아시아 동맹이 아니라 동남아 현실에 맞는 해양 안보 협력체다. ‘SEATO 2.0’은 전쟁 개입을 약속하는 동맹이 아니라, 위기 발생 시 공동 대응을 가능하게 하는 제도적 틀이다.

법적 기반은 유엔해양법협약(UNCLOS)과 2016년 중재판결에 있다. UNCLOS는 영해, 배타적경제수역(EEZ), 항행 자유, 법 집행 권한 등 해양 질서의 기본 규칙을 규정한 국제 협약으로, 회원국이 공유할 수 있는 공통 규범을 제공한다. 2016년 중재판결은 중국의 ‘9단선’ 권리 주장을 부정하고, 위험한 해상 법 집행을 불법으로 판시했다. 이 두 가지는 동남아 국가들이 사건 발생 시 외교적·법적 공동 대응을 정당화할 수 있는 근거가 된다.

따라서 새로운 협력체의 핵심은 세 가지다. 각국 해역 상황 정보를 통합해 공유하고, 해양 경비와 민병대의 행동 규칙을 표준화하며, 주권 침해가 발생했을 때 외교·법적 차원에서 공동 대응하는 것이다. 집단방위 조항이 없어도 회색지대 전술의 비용을 높여 억지 효과를 낼 수 있다.

실질적 작동을 위해서는 재원이 뒷받침돼야 한다. 2023년 세계 군사비는 2조4,400억 달러(약 3,310조원), 2024년 전망치는 2조7,200억 달러(약 3,680조원)다. 같은 해 아시아·오세아니아 지출은 6,290억 달러(약 851조원)로 2015년보다 46% 증가했다. 늘어난 재원을 군비 경쟁이 아닌 해상 감시, 신속 대응, 민·군 통신망, 법적 대응 역량 강화에 활용해야 한다. 바다는 국경으로 분리된 구역이 아니라 연속된 작전 공간이기 때문이다.

2024년 아시아·오세아니아 및 동남아시아의 해양 관련 군사 지출 규모(단위: 십억 달러)
주: 지역-아시아·오세아니아, 동남아시아(X축), 군사 지출 규모(Y축)

실행단계

SEATO 2.0이 개념에 머물지 않고 실제 작동하려면 구체적 실행 방안이 필요하다. 우선 해양 상황 인식 체제를 강화해야 한다. 쿼드(Quad)가 운영 중인 인도태평양 파트너십(IPMDA)을 동남아에 특화해 각국 해양센터의 데이터 형식을 표준화하고, 민병대 집결과 같은 특이 활동에 자동 경보를 설정하며, 회원국 배타적경제수역 내 이상 징후를 즉시 공유하는 구조를 마련할 수 있다.

또한 해양 경비와 국가 지원 민병대를 포괄하는 행동 강령을 제정해 교전 절차를 표준화하고, 사건 발생 즉시 공동 외교 대응과 법적 조치를 가동하는 단계별 대응 체계를 마련해야 한다. 광범위한 경제 제재가 아니라 문제 선박과 기관을 직접 겨냥하는 표적 제재 방식을 채택하는 것이 효과적이다.

재원 조달도 뚜렷해야 한다. 국방예산 증가분의 일부를 ‘해양 안보 기금’으로 전환해 연안 레이더 확충, 위성 정보 접근, 해양 법률 전문가 양성, 상호운용 통신망 구축 등에 투자할 수 있다. 일본, 인도, 호주, 미국은 정회원이 아니라 보조 파트너로 참여해 데이터, 훈련, 물류를 지원하되, 주도권은 동남아 국가들이 유지하는 방식이 바람직하다.

마지막으로 UNCLOS에 기반한 증거 중심 책임 규명, 비례적 대응, 직통 핫라인 등 제도적 안전장치를 포함해 불필요한 군사적 긴장을 예방해야 한다. 집단방위 조항이 배제되므로 주권 침해 우려도 줄일 수 있다.

해상로 안보 과제

남중국해의 안정은 교역 문제를 넘어선 안보 과제다. 범아시아 군사동맹 구상은 정치·제도적 제약으로 실현 가능성이 낮다. 현실적 해법은 동남아가 주도하는 해양 안보 협력체를 국제법에 기초해 제도화하는 것이다. 정보 공유, 행동 규범, 공동 대응이 정착될 때 군비 증액에만 의존하지 않는 지속 가능한 억지가 가능해진다.

본 연구 기사의 원문은 SEATO 2.0: A Southeast Asian Shield, Not an “Asian NATO”을 참고해 주시기 바랍니다. 본 기사의 저작권은 스위스 인공지능연구소(SIAI)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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