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수정
美 소액면세제도 개편 가능성↑ 중국 이커머스, 한국 공세 전망 한국 우회 경로로 미 접근할 수도

알리익스프레스·테무·쉬인 등 중국 이커머스 업체들의 한국 시장 진출이 더욱 확대될 전망이다. 미국 도널드 트럼프 2기 행정부가 중국·캐나다·멕시코 등의 수입품에 대한 '소액면세제도(de minimis)' 개편에 나설 움직임을 보이고 있어서다. 미국 시장에 직접 접근이 어려워진 중국이 우회수출 경로로 한국을 활용할 경우, 한국 역시 미국의 수입 제재 대상에 포함될 수 있다는 우려와 함께 한국발 대미 직접 판매마저 위축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트럼프 2기 행정부, 소액면세제도 개편 움직임
24일 유통업계와 외신 등에 따르면 미국 백악관은 지난달 중국·캐나다·멕시코 수입품에 대한 면세 조치를 뜻하는 소액면세제도를 폐지하기로 발표했지만 일단 유지한다는 방침을 내놨다. 이 제도는 개인이 사용하기 위해 수입하는 800달러(약 117만원) 이하 제품의 경우 관세를 부과하지 않는 것이 골자다. 이를 통해 미국으로 유입되는 소포는 미국 관세국경보호청(CBP) 기준 연간 646억 달러(약 95조원)에 이른다. 이 중 중국산 제품이 차지하는 비중은 60% 이상이다.
트럼프 행정부는 아직 소액 수입품에 대한 새로운 관세 부과 시스템이 마련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제도 폐지를 일단 유예했지만, 임기 내 제도 개편이 이뤄질 가능성은 여전히 큰 상황이다. 현재 미국 의회에는 2023년부터 이달까지 공화당과 민주당 소속 상·하원 의원들이 발의한 소액면세제도 개편 관련 법안만 총 5건이 계류 중이다. 올해 들어 발의된 2건은 대(對)중국 소액면세제도를 즉각 폐지하거나 나머지 국가에 대해서도 점진적으로 폐지하는 내용이 포함됐다.
중국 저가 상품 수출 수단으로 악용
미국이 소액면세제도 손질에 나선 건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소액 국제 소포와 마약 밀수가 급증하고, 중국발 이커머스 플랫폼이 빠르게 성장하면서 공급망의 투명성 문제가 지속적으로 제기되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 미·중 간 무역적자가 심화하면서 소액면세제도를 손봐야 한다는 목소리가 미국 내에서 초당적으로 확산하고 있다.
미국이 이 기준을 처음 제정한 때는 1938년으로, "국민이 작은 선물을 수입하고자 하는 경우 최소한의 부담으로 그렇게 할 수 있어야 한다"는 취지에서 시작됐다. ‘de minimis’라는 말의 라틴어는 ‘너무 사소해서 고려할 필요가 없는 것’이라는 뜻으로, 초기 기준점은 선물은 5달러, 기타는 1달러였으나 1994년에 200달러로 인상됐다. 그러다 2016년 ‘무역 촉진 및 무역 집행법’을 통해 800달러로 기준이 확대돼 현재 800달러 이하 물품에 대해서는 면세하고 있다.
그러나 전 세계적으로 중국 사이트를 통한 저가 온라인 구매가 증가하면서 이러한 소액면세제도가 중국 저가 상품 수입의 수단으로 악용되고 있다는 지적이 커지고 있는 실정이다. 실제 중국 패션 기업인 쉬인은 미국 오프라인 매장이나 브랜드를 통해 제품을 판매하지 않고도 이 소액면세제도를 활용해 미국 패스트패션 시장의 30%를 점유하는 기업으로 성장했다.
중국 이커머스 기업의 공습에 오프라인 매장이 흔들리고 섬유·의류· 장난감 등 제조업 일자리가 줄어들고, 세관 공무원의 부담이 커지자, 백악관은 지난해 9월, 1974년 무역법 제301조나 제201조, 1962년 무역확장법 제232조에 따른 관세를 적용받는 수입품의 경우 소액면세기준제도를 적용하지 않고 과세하겠다는 규정안 제정 계획을 발표했다. 백악관 발표문을 통해 조 바이든 정부는 소액면세제도를 활용해 수입되는 물품 건수가 10년 전에는 연간 1억4,000만 건 정도였지만 작년에는 10억 건 이상이었다며, 중국 기반 이커머스 플랫폼이 이 제도를 남용하고 있어 미국 내 제조 업체가 피해를 보고 있다고 밝혔다.

中의 韓 우회 수출, 국내기업에 불똥 튈수도
이런 가운데 국내 이커머스업계는 미국이 소액면세제도를 폐지할 경우 중국 기업들이 미국 시장을 대체하기 위해 한국을 더욱 적극적으로 공략할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있다. 뿐만 아니라 일각에서는 C커머스가 대미 수출을 위한 우회 경로로 한국을 택한다면 한국 역시 미국의 수입 제재 대상에 포함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저가 중국산 제품에 대한 미국 소비자의 수요를 충족하기 위해 중국이 한국을 대미 수출 전진 기지로 활용할 수 있다는 점에서다. 한국무역협회 국제무역통상연구원은 "미국은 중국의 우회 수출 조사를 강화할 필요성을 이미 인지하고 있다"며 "한국발 제품 조사가 엄격해지면 배송 지연, 규제 준수 비용, 무역 갈등 등 문제에 노출될 수 있다"고 밝혔다.
나아가 중국뿐 아니라 한국도 소액면세제도의 축소 또는 폐지 대상국에 포함될 우려도 있다. 최근 린다 산체스 하원 의원(민주당)은 대중국 소액면세제도의 즉각 폐지 및 이외 국가에 대해서도 점진적인 폐지가 필요하다는 내용의 개편안을 발의했다. 지난해 한국의 대미 해외직접판매액은 3,448억원으로, 5년 전보다 76%가량 상승했다. 제도가 개편된다면 국내 소액 수출 사업자들의 타격이 불가피하다.
전문가들은 미국의 통관·관세 정책 변화에 대비하는 한편, 미국 시장에서 중국의 대체 공급자 역할을 수행할 수 있는 분야를 검토해야 한다고 제언한다. 전윤식 한국무역협회 국제무역통상연구원 수석연구원 "디지털 활용 능력이 높고 동일 연령대 중 세계에서 가장 높은 구매력을 보이는 미국 60대 이상 인구를 공략하는 등 소비시장을 세분화하고 계층별 마케팅 전략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어 "국내 소비자와 플랫폼을 강화하고 중국의 우회 수출과 투자로 인한 위험 요소를 사전에 차단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주요국 사례를 참고해 소액면세제도를 개편하는 등 해외직구 증가에 따른 소비자 안전 강화와 국내 기업 경쟁력 제고 방안을 논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