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산 에너지는 안녕" EU, 관세 협상 계기로 미국산 에너지 수입 확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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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U, 7,500억 달러 규모 미국산 에너지 구매 의사 표명 2022년 2월부터 러시아산 에너지 수입 꾸준히 줄여 와 2027년에 러시아산 가스 등 수입 완전 중단, 美 수혜 전망

유럽연합(EU)의 에너지 지도가 새롭게 그려지고 있다. 미국으로부터 대량의 액화천연가스(LNG), 석유, 핵연료 등을 수입하기로 합의하며 본격적으로 러시아산 에너지 수입을 최소화하는 양상이다.
EU, 미국산 에너지 대량 수입한다
지난달 30일(이하 현지시각) 미국의 에너지 전문 매체 오일프라이스는 EU가 러시아 에너지에 대한 의존도를 줄이기 위해 미국산 에너지 수입에 나섰다고 보도했다. 실제 지난달 21일 미국과 EU가 발표한 무역 합의 후속 조치 공동성명에는 “유럽연합은 2028년까지 미국산 LNG, 석유, 원자력 에너지 제품을 총 7,500억 달러(약 1,040조원) 규모로 구매할 의도(intend to procure)가 있으며, 미국산 인공지능(AI) 반도체도 최소 400억 달러(약 55조7,040억원) 규모로 구매할 계획(intend to purchase)”이라는 내용이 담겼다.
이에 따라 미국은 이달 1일부터 대부분의 유럽산 제품에 기본세율과 상호관세를 합해 최대 15%까지만 관세를 부과하기로 했다. 의약품·반도체·목재에 부과되는 관세도 기본세율과 품목관세를 합산한 최종 세율이 15%를 초과하지 않도록 조정한다. 트럼프 대통령은 당초 EU산 의약품에 250%, 반도체에 100% 관세를 매기겠다고 예고했었다. 다만 유럽산 차량의 경우 당분간 27.5%의 고율 관세가 유지된다.
시장에서는 이미 EU의 에너지 공급망에서 핵심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미국이 이번 관세 협상을 계기로 한층 현지 시장 영향력을 확대할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2025년 1분기 유로스탯(Eurostat) 데이터에 따르면, 미국은 EU 최대의 석유 공급국(수입액의 15% 점유)이자 LNG의 핵심 수입국(50.7% 점유)이다.
러시아 에너지 의존도 대폭 낮아져
관세 협상을 계기로 EU의 미국산 에너지 의존도가 대폭 높아지며 러시아산 에너지는 사실상 설 자리를 잃게 됐다. EU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2022년 2월) 이후 꾸준히 러시아산 에너지 의존도를 축소해 왔다. 전쟁이 발발한 이후 지난달까지 18차례에 걸쳐 러시아에 수출입 제한 등 각종 무역 제재를 가하기도 했다.
최근 양국 간 무역 수지를 살펴보면 이 같은 EU의 조치가 낳은 결과를 명확히 확인할 수 있다. 지난달 30일 유로뉴스는 유로스탯 자료를 인용, EU의 2분기 대러 수출액이 75억 유로(약 12조2,460억원), 수입액이 70억 유로(약 11조4,300억원)를 기록했다고 보도했다. EU가 대러 무역에서 흑자를 낸 것은 2002년 통계 집계가 시작된 이후 처음 있는 일이다.
특히 EU의 대러 에너지 무역 적자는 2022년 2분기 428억 유로(약 69조8,800억원)에서 올해 2분기 42억 유로(약 6조8,580억원)로 90% 감소했다. 같은 기간 전체 원유 수입에서 러시아산이 차지하는 비중은 29%에서 2%로 미끄러졌고, 러시아산 천연가스 의존도 역시 39%에서 13%로 떨어졌다.

美·EU의 '윈-윈 전략'
향후 EU는 지난 5월 발표한 ‘REPowerEU 로드맵’에 따라 러시아산 에너지 수입을 완전히 중단할 방침이다. 해당 로드맵에는 러시아산 가스의 신규 계약을 금지하고, 기존 단기계약을 2025년 말까지 종료한다는 계획이 담겼다. 이를 통해 2025년 말까지 러시아산 가스 수입을 추가로 1/3 감축하며, 2027년까지 모든 러시아산 가스 수입을 중단하겠다는 구상이다.
아울러 EU는 러시아산 농축 우라늄과 기타 핵연료의 신규 공급 계약 체결도 제한할 예정이다. 또한 의학용 방사성 동위원소의 자급률을 높이기 위해 ‘유럽 방사성동위원소 밸리 이니셔티브(European Radioisotopes Valley Initiative)’를 추진하고, 대체 에너지 확보를 위한 인프라 투자 및 수요 조절 전략에도 힘을 싣는다.
시장에서는 이 같은 EU의 전략이 미국과 EU 양국 모두에 호재가 될 것이라고 평가한다. 한 시장 전문가는 "EU는 지금껏 러시아산 저가 천연가스 수급이 불가능해지며 에너지 가격 폭등 등 부작용을 겪었다"며 "미국이 협상 과정에서 에너지 자원의 저가 공급을 어느 정도 약속해 줬다면, 러시아산 에너지 수입을 완전히 중단하고자 하는 EU 입장에서는 거절할 이유가 없다"고 짚었다. 이어 "양국의 거래량이 확대되면 EU는 에너지 공백을 해결할 수 있고, 미국은 우방국인 EU의 러시아 의존도를 낮출 수 있다"며 "결국 양국 모두 이득인 거래"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