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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관세는 미래 위한 기반 닦는 일" 단기적 경기침체 가능성 인정, ‘성장통’ 강조 전문가들 "무역흑자가 반드시 경제성장 이끌진 않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연일 전 세계를 상대로 관세 부과 정책을 발표하면서 글로벌 경제를 뒤흔들고 있다. 이는 MAGA(Make America Great Again·미국을 다시 위대하게)를 내세운 트럼프 대통령의 '관세 폭탄' 행보로 볼 수 있지만 미국에 반드시 큰 이득이 되지는 않을 것이라는 지적도 적지 않다. 전문가들은 트럼프 대통령이 관세 전쟁을 통해 의도했던 전리품을 얻기보다는 미국 경제에 심각한 내상을 입힐 가능성이 크다고 경고하고 있다.
경기침체 불사하고 관세 정책 밀어붙이겠다
9일(현지시각) 트럼프 대통령은 폭스뉴스 ‘선데이 모닝 퓨처스’ 인터뷰에서 ‘올해 경기침체(recession)를 예상하느냐’는 질문에 “나는 그런 예측을 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며 답을 피했다. 그러면서 자신의 경제 정책을 실현하는 과정에 ‘성장통’이 있을 거라고 설명했다. 그는 “우리가 추진하는 변화는 매우 크다. 미국으로 부를 되돌려 오고 있다”며 “항상 그런 (힘든) 기간이 있다. 시간이 좀 걸린다. 하지만 우리에게 굉장히 좋은 일이 될 거라고 생각한다. 결국에는 엄청나게 좋은 일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날 언급에 대해 월스트리트저널(WSJ)은 “트럼프 대통령이 경기침체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았다”고 평가하며 “트럼프 대통령의 관세정책으로 미국 경제 회복력이 시험대에 올랐다”고 짚었다. 소비 지출이 둔화하고 인플레이션에 대한 두려움이 높아지면서 기업에 부담을 주고 경제에 부정적인 초기 신호가 감지되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 트럼프 2기 행정부 초기, 긍정적이던 경제 전망은 최근 급격히 어두워지고 있다. 지난달 미국 실업률은 공공 부문 대규모 감원의 영향으로 4.1%로 상승했고, 소비자 신뢰 지수는 2021년 8월 이후 가장 큰 폭으로 하락했다. 다우존스 산업평균지수,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500, 나스닥 종합지수 모두 지난 7일 종가 기준으로 트럼프 대통령 취임 날보다 내려갔다.
스콧 베센트 재무장관도 미국 경제가 경제 전환기에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지난 7일 CNBC와의 인터뷰에서 “시장과 경제가 정부 지출에 중독된 상태”라며 “우리는 정부 지출에 의존하는 구조가 됐으며 이제 (이를 벗어나기 위한) 해독 기간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상황이 좋지는 않지만 관세정책은 밀고 나간다는 방침이다. 러트닉 장관은 9일 NBC 인터뷰에서 오는 12일부터 철강·알루미늄에 25% 관세가 시행되는지 ‘예나 아니오’로 답해 달라는 질문에 “예”라고 말했다.
美 싱크탱크 “결국 소비자와 기업에 피해”
전문가들은 트럼프 행정부의 이런 접근방식이 주요 교역국의 경기침체와 세계 경제 둔화를 초래할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있다. 미국 싱크탱크인 기업연구소(AEI)는 최근 ‘트럼프의 무역적자 미신’이라는 보고서에서 “미국의 경제 성장 동력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무역적자 개선보다 내실 있는 경제정책 마련이 우선”이라고 강조했다. AEI는 무역적자를 ‘해외 자본 유입과 미국 경제 성장의 결과물’로 봤다. 이 단체는 “외국인 투자 유입은 장기적으로 고용 창출, 기술혁신, 생산성 향상을 통해 미국 산업 경쟁력을 강화시킨다”며 “단기적 무역수지 개선이 아닌 장기 성장 전략과 미래 투자, 기술혁신 등을 통한 경제 성장에 집중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피터슨 국제경제연구소(PIIE) 역시 관세 정책이 장기적으로 기업 혁신을 저해하는 요소가 된다고 꼬집었다. PIIE는 “외부 경쟁 압력이 줄어들수록 기업의 기술 개발 및 생산성 향상 동기가 약화된다”며 “경제성장 둔화 및 노동시장 정체를 초래할 가능성이 크다”고 지적했다. 이런 상황은 △임금 정체 및 소비자 선택권 제한 △수입품 가격 상승으로 인한 물가 상승 △가처분 소득 감소로 인한 소비 위축 등을 유발해 결국 가계 생활수준이 하락할 우려가 있다는 분석이다.
싱크탱크들뿐 아니라 미국 무역대표부(USTR) 출신 인사들도 트럼프 대통령의 관세 정책을 비판하고 있다. 제니퍼 힐만 전 USTR 법률 고문은 “트럼프 행정부가 무역 수치를 선별적으로 꼽아 무역 불균형을 과장한다”며 “보호무역주의를 정당화하려는 수단으로 활용될 우려가 크다”고 주장했다. 존 베로노 전 USTR 부대표도 “상호관세 부과가 실질적으로 교역대상국 무역장벽 제거가 아닌 미국 경제를 보호하려는 성격이 강하다”며 “현 정책은 미국의 요새화, 즉 고립주의 접근법으로 이어질 위험이 있다”고 지적했다.

트럼프 1기, 관세 부과에도 무역적자 확대
현재까지 각종 글로벌 매체와 기관들의 분석을 종합해도 트럼프 대통령의 관세 부과 정책이 전반적으로 미국 경제에 큰 도움이 된다고 보기는 어려워 보인다. 우선 트럼프 대통령의 관세 부과 정책은 미국의 물가 상승을 초래할 것으로 예상된다. 미국 신용 평가 회사 S&P 글로벌 레이팅스의 분석에 따르면 관세가 올해 유지될 경우 미국 소비자 물가가 일시적으로 50~70bp(1bp=0.01%포인트) 상승할 것으로 추정된다. 이는 올해 4분기까지 물가 상승률이 3%에 근접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 아문디 리서치센터의 시뮬레이션에서도 관세로 인해 소비자 물가가 약 0.3% 상승할 것으로 예측됐다.
관세 부과는 미국의 국내총생산(GDP)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으로 전망된다. S&P 글로벌 레이팅스는 향후 12개월 동안 미국의 실질 GDP가 현재 예측보다 0.6% 낮아질 것으로 추정했다. 아문디 리서치센터의 분석에서는 관세로 인해 경제 성장률이 0.2-0.3% 감소할 것으로 예상됐다. 미국의 세금 정책 연구기관 세금 재단(Tax Foundation)의 추정에 따르면 20%의 보편적 관세와 60%의 중국 관세를 매긴다는 전제의 시나리오에서 장기적으로 미국의 GDP가 1.3% 감소할 것으로 예측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관세 부과 정책이 미국의 제조업과 산업에 미치는 영향은 복합적일 것으로 관측된다. 단기적으로는 보호받는 미국의 일부 제조업 분야에서 일자리가 창출될 수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다른 분야에서 일자리 손실을 초래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예컨대 자동차 산업의 경우 수입 차량에 대한 100% 관세는 미국 시장에서 전기차의 가격 경쟁력을 약화해 전기차 보급을 늦추고 운송 부문의 배출량 감소 노력을 저해할 수 있다.
앞서 트럼프 대통령은 1기 재임 시에도 관세를 무기로 MAGA 재건에 나섰지만, 전반적 평가는 부정적이다. 당시 트럼프 대통령의 관세 정책은 중국과의 무역적자를 일부 줄이는 데는 성공했지만, 미국 제조업 부흥이라는 목표 달성에는 실패했다는 평이 많다. 실제 당시 다른 국가들과의 무역적자가 증가하면서 전체 무역적자는 더욱 커졌다. 2017년과 비교해 2024년 미국의 대중국 무역적자는 약 20% 줄어든 2,954억 달러(약 433조원)를 기록했으나 중국을 제외한 다른 주요 교역국들과의 무역적자가 급증했다. 유럽연합(EU)과의 무역적자는 50%, 한국, 베트남, 대만과의 무역적자는 각각 3배가량 증가했다.
또한 트럼프의 관세 부과 정책으로 관세 수입은 늘었지만 무역 불균형은 해소되지 못했다. 2024년 미국 정부의 관세 수입은 2017년 대비 2.2배 증가한 829억 달러를 기록했으나 미국의 무역적자는 2016년 7,350억 달러에서 2020년 9,000억 달러로 23% 증가했다. 특히 중국과의 1단계 무역 협정은 양국 간 구조적 불균형을 해결하지 못했고, 미국의 중국 상품 수입을 제3국 중개자들에 전환하는 결과를 낳았다.